작업실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내려마시고 있다. 드립커피는 급할 때 내려마시는 커피는 역시 아닌 것 같다. 커피머신을 하나 들일 생각이지만, 적당한 매물을 당근에서 아직 찾지 못했다. 너무 저렴한 브랜드는 원두 고유의 맛 손실이 커서 결국 중복 구매를 유발할테니 더 기다려보기로 한다. 당분간 여유로울 때만 필터로 내려마시자.
물은 잘 마시지 않으면서 마실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커피 섭취량이 지난 10년 간 꽤, 아니 많이 늘었다. 하루에 평균 두 잔은 마신다. 이제 커피는 하루에 한 잔만 마시고, 나머지는 차를 내려 마실까 한다. 과정도 훨씬 간편하다. 차갑게 마셔도 참 맛좋다. 처음에는 블렌더까지 가져다 놓을까했지만 역시 관두자. 우선 물통 정수기부터 주문해야겠다.
작업실에 마실 것을 갖춰두는데 유난을 떠는 이유는 작업자들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여러가지 액티비티를 진행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AI 영상제작 워크플로우 워크숍’을 연다. 아는 동생이 진행하는데 이번은 베타테스트로 지인만 불러서 시연을 하고, 피드백을 종합해 빠른 시일내에 정식으로 오픈할 예정이다. 작업실을 더 넓은 곳으로 옮긴 꿍꿍이 중 하나다. 영상에 국한하지 않고 관심가는 주제로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현재 모호와 나는 서울의 도시개발을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으니 도시개발에 대한 강의나 워크숍도 열어볼 계획이다. 소규모라도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생기니 몽상병이 더 심해지고 있다.
P.S. 피드백을 통해 강의나 워크숍 아이디어를 받습니다. 다큐멘터리에 대해서도 좋고 전혀 아닌 것도 좋습니다.
by 모순
1. 금주의 다큐멘터리
<베나지르를 위한 세 개의 노래> by 모순
2. 금주의 음악 앨범
<신중현과 엽전들 1집>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짜장면> by 모호
금주의 다큐멘터리
베나지르를 위한 세 개의 노래
by 모순
제목 베나지르를 위한 세 개의 노래
감독 엘리자베스 미르자이, 굴리스탄 미르자이
공개 2021
길이 22분
관람 넷플릭스
새장 속의 이야기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피난 캠프에서 갓 결혼한 청년 샤이스타는 아내 베나자르를 사랑한다. 그는 세상에 나가고 싶다. 교육받고 싶고, 제대로 된 직업도 갖고 싶다. 하지만 피난 캠프에는 학교도 없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양귀비 농장에서 일하라고 한다.
그는 군 입대를 꿈꾼다. 제대로된 직업을 가질 수 있고 교육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홀로 지원한다. 캠프로 돌아온 그를 친구들은 축하하지만 가족은 샤이스타의 입대 보증 서명에 반대한다. 그가 잘못되면 탈레반의 위협이 가족에게 향할 수 있고, 무엇보다 베나자르를 책임질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아이가 태어나고, 그는 양귀비 농장에서 일한다. 4년 뒤 그는 중독치료센터에 있다.
영화 속에서 샤이스타는 하늘에 떠 있는 정체 모를 비행체를 자주 올려다본다. 그는 그것이 미국과 외국인들이 피난 캠프를 감시하기 위해 띄운 것이라고 믿는다. 새장 안에 갇힌 사람은 땅뿐 아니라 하늘마저 자유롭게 바라볼 수 없다.
살아갈 나라와 모국어를 우리는 고를 수 없다. 태어난 환경도 문화도 주어진다. 그냥 우연이다. 사랑하고, 책임지고, 성장하려는 마음은 그 우연의 어항에서 숨쉬는 어떤 규범들과 충돌한다. 어쩌면 삶이란 우연 속에서 자신만의 필연을 점절해나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만으로도 나날은 충분히 복잡하고, 때로는 충분히 행복하다.
영화의 제목은 <베나자르를 위한 세 개의 노래>다. 베나자르는 영화에서 두 번 노래를 부른다. 마지막 한 번은 샤이스타를 대신해 영화가 부른다.
금주의 음악 앨범
신중현과 엽전들 1집
by 모호
트랙리스트
1. 미인
2. 생각해
3. 그 누가 있었나봐
4. 긴긴 밤
5. 나는 너를 사랑해
6. 저 여인
7. 설레임
8. 할 말도 없지만
9. 나는 몰라
10. 떠오르는 태양 (경음악)
앨범 신중현과 엽전들 1집
아티스트 신중현과 엽전들
발매 1974
길이 32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여름의 싸이키델릭이다.
1960~70년대를 주요 배경으로 하는 작업을 하면서 당시의 사진과 영상 아카이브를 보곤 한다. 필름으로 남은 그때의 사람들과 도시의 모습은 낯설다. 내가 수십 번은 지나다녀 본 거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고, 사람들의 옷도 표정도 사는 방식도 다르다. 그때부터 살아온 이들은 어떻게 과거를 기억할까. 필름톤이 아닌 기억을 잠시 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음악은 그런 면에서 이미지보다 조금 낫다. 신중현과 엽전들의 1집을 처음 들은 건 수원의 한 중고 LP 가게에서였다.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LP 수집을 취미로 삼을지 말지의 기로에 놓여있었다. 조금씩 사모으다 보니 어느새 수중에 10장이 넘어갔고, 우연히 LP 플레이어까지 선물 받아 꼼짝 없이 LP를 모을 운명에 처할 뻔 했다. 이제부터는 의식적으로라도 절대 LP를 사모으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만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LP 가게를 구경하는 것까지 참을 수는 없었다. 한참 중고 LP들을 뒤적거리다가 Yes의 앨범을 골라 주인 할아버지에게 청음을 부탁하고, 가게에 울려퍼지는 음악을 들으며 담소나 나누고 있었다. 주인 할아버지는 한국 LP를 모아놓은 박스를 조금 뒤적거리더니 신중현과 엽전들 1집을 꺼내들었다. 가게를 떠나지 못하고 꼼짝없이 1번 트랙 미인부터 5번 트랙까지 듣고 있었다. 당시에는 꽤나 충격이었어서, 수집욕이 발동해 가격을 확인했지만 그때의 내가 엄두를 낼 수 없는 가격이라 바로 포기했다. 그러곤 한동안 신중현의 음악에 빠져있었다.
이제 더는 LP를 사지 않는다. LP 가게가 있으면 쉽게 지나치지 못하긴 하지만 구경에서 멈춘다. 그때 이 앨범을 샀다면, 혹은 주인 할아버지와 앉아서 더 음악 얘길 나눴다면 달랐을까. 주인 할아버지의 기억을 음악으로 잠시 빌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금주의 사진
짜장면
by 모호
문경 촬영을 가기로 할 때부터 점 찍어둔 중국집이었다. 시멘트 공장이 처음 문을 열 때부터 역사를 함께 했다고 들었다. 아마 60년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가게는 낯선 구조였다. 한쪽에는 좌식룸이 서너개쯤 있었고 홀은 에메랄드색 식탁과 의자로 채워져있어 가게 전체가 푸른 빛을 띄었다. 간짜장을 주문하자 창으로 나뉘어진 안쪽 주방에서 나이가 지긋하신 주방장이 요리를 시작했다. 틀어둔 TV 소리가 느긋하게 흐르고 옆 자리의 가족 손님은 식사를 마치고 떠났다. 내내 쫓기다 안식처에 도착한 것처럼 시간이 천천히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