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사계절 중 최애 계절 부동의 꼴지를 달리고 있는 여름과 화해해야 할 것 같다. 매번 이번 여름이 제일 괴롭다고, 언제 여름이 끝나는지 손 꼽아 기다리는 일은 지쳤다. 어째서인지 설레는 야외촬영은 여름에 많고 신나는 기억은 끈적한 목덜미랑 팔과 함께다. 주말에 다녀온 페스티벌의 마이블러디발렌타인 무대는 넋을 놓을 정도로 최고였다. 모순과 다녀온 문경 지방 촬영은 내것으로 만들고 싶은 이미지들로 넘쳤다. 저주 같던 여름의 햇살과 습기가 실은 그 전조가 아니었을까.
드니 빌뇌브의 영화 '컨택트'에선 어느 날 지구에 나타난 외계인들에게 지구인 주인공이 지구의 언어를 가르치고 소통하려 한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주인공은 그들과 끝내 소통할 수 있게 되고 외계인들의 언어를 이해하면서 외계인의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미래를 보게 되었던가.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고 한동안 말과 생각을 하기 전 한 단계 덜커덕거리는 기분에 시달렸다. 나는 한국어로 생각하는구나, 한국어로 생각하지 말아보자, 아 안되네, 하는 과정이 순식간에 지나가느라 그랬다.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이 일인 통역사들도 아마 마더텅으로 주로 생각을 할테다. 뭐 가끔은 두 번째 언어로 꿈을 꿀지도. 다만 한국어만으로 꿈을 꾸고 생각을 하는 나보다 더 괴로울지도 모르겠다. 언어가 다른 언어로 멋대로 왔다갔다하며 한번이면 족할 생각도 두번씩 해야할지도 모르니까. 차라리 옮기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조차 복제되어버릴테니.
다큐멘터리 '말의 흐름'은 언어를 옮기는 이들의 이야기다. 이 통역사들의 일은 유고슬라비아 국제 형사 재판소에서 있었던 재판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말을 옮기는 것이었다. 공감도 대변도 변호도 아닌 오로지 말을 옮기는 일이었다. 하지만 말을 옮기는 일은 그렇게 기능적인 일이 아니었다. 언어는 영혼처럼 몸을 드나들고 통역사들은 들어갔다가 나온 말을 소화해내느라 오래 고통받았고 고통받고 있다.
금주의 음악 앨범
BRAT
by 모호
트랙리스트
1. 360
2. Club classics
3. Sympathy is a knife
4. I might say something stupid
5. Talk talk
6. Von dutch
7. Everything is romantic
8. Rewind
9. So I
10. Girl, so confusing
11. Apple
12. B2b
13. Mean girls
14. I think about it all the time
15. 365
앨범 BRAT
아티스트 Charli xcx
발매 2024
길이 42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여름 노래를 골랐다.
2024년 여름을 강타한 네온색의 앨범 BRAT을 기억하지 못하는 음악 애호가는 없을 것이다. 온 세상이 BRAT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한동안 나의 음악 알고리즘은 네온색이 차지했다. Charli xcx의 디스코그래피를 남몰래 추종해오던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그해 여름, 길을 걸을 때면 항상 BRAT을 재생해놓고 더위를 견디곤 했다.
새 앨범 Music, Fashion, Film을 듣고 지난 앨범 BRAT을 떠올린건 정말 미안하지만 지난 주의 더위는 제정신으로는 버틸 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잔뜩 달궈져있는 빈 작업실에 들어와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에어컨을 가동한 뒤 스피커의 음량을 최고로 올려 BRAT을 재생했다. 360의 멋진 인트로가 스피커가 찢어질듯이 시작됐다. 계절에 맞는 옷을 입은 것만 같았다.
금주의 사진
바탕화면
by 모순
한 달 넘게 노트북 바탕화면 두고 있는 사진이다. 부모님 집에 살고 있는 강아지 ‘쌀’이다. 어제 엄마는 우연히 내 바탕화면을 보고는 쌀이 날씬해보인다고 했다. 뒤늦게 당신의 발을 발견하고는 저렇게 추레하게 입고 있는 걸 보이게 했냐며 작은 볼멘소리를 했다. 엄마의 발은 얼마든지 크롭할 수 있었지만 나는 그게 좋아 그대로 설정했다. 엄마는 모를 것이다. 막 산책에서 돌아와 외출복을 입고 있는 쌀과 엄마의 후줄근한 복장 그 대조가 좋았다. 그리고 그렇게 질서가 느슨해지는 수더분한 집이라는 공간이 좋았다. 원칙과 질서는 집밖에서 피곤할 정도로 신경쓰고 산다. 집은 수더분해야 한다. 바탕화면에서라도 그 따뜻한 감정을 가둬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