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새로운 작업실 공사가 끝났다. 웹사이트와 주소를 넣은 명함도 새로 만들었다. 시인성이 좋도록 배열도 손봤다. 아직 할 일은 남아 있다. 퇴근 전 선반 브라켓과 책상 파티션을 설치하고, 화장실 못 구멍을 메우고 청소도 해야 한다. 장비와 서랍장의 자리도 다시 정하고 제자리를 주어야 한다. 오늘 이토록 분주한 것은 내일 처음으로 손님들이 오기 때문이다. 집들이라고 해도 좋고, 개업식라 해도 좋겠다.
여유 있게 맞이할 줄 알았는데 결국 또 벼락치기가 되었다. 스피커 거치대는 벽에 달아두었지만 케이블이 짧아 내일은 바닥에 둘 수밖에 없다. 이 점이 가장 아쉽다. 내일 나와 모호가 함께 만든 다큐멘터리를 상영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비로소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마음 속 알박혀 있던 케케묵은 숙제를 긁어내버린 것 같아 후련하다.
1. 금주의 다큐멘터리
<책 종이 가위> by 모순
2. 금주의 음악 앨범
<loveless>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타임포스트는 잊지 말아요> by 모호
금주의 다큐멘터리
책 종이 가위
by 모순
제목 책 종이 가위
감독 히로세 나나코
공개 2019
길이 93분
관람 왓챠
전자기기 하나 없는 책상에 앉아 종이를 잘라 글자를 붙이는 기쿠치 노부요시. 그는 일본의 북 디자이너다. 70대지만 여전히 현업에 있다. 오직 검정 텍스트와 하얀 종이만으로 책의 내용과 포개지는 디자인을 해야 하는 그는 검은 옷만 입고 다닌다. 그의 집에도 디지털은 없다. 손으로 원두를 갈아 핸드드립으로 내린 커피를 마시며 전축으로 음악을 듣는다.
책은 텍스트의 몸이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성과 형태를 지닌다. 그는 종이를 손으로 오려 직접 책에 붙이며 디자인하기 때문에 매번 결과물을 보면서 작업해나간다. 실제 결과물도 예상한 모습대로 나온다. 그에겐 제자가 있다. 그 제자는 컴퓨터로 디자인한다. 그런 그를 보며 기쿠치는 디자인에 '수의'를 입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제자는 생각한다. "자신이 만들어온 디자인의 스타일과 과정을 자신이 키운 제자가 죽이게 하는 거니까, 결국 자신이 낳고 자신이 죽이는 셈이에요. 결론은 이 모든 게 기쿠치 씨의 계획인 거죠."
요즘은 이상하게 인물 다큐멘터리에 손이 간다. 중심 인물에 대해 많은 사람이 저마다 이야기하는 방식보다, 그 사람이 직접 하는 말과 행동을 오래 바라보는 편이 그 인물을 마주하기에는 더 적합한 것 같다. 괴팍하든 자애롭든, 오만하든 너그럽든 그것을 묵묵히 지켜보는 투박한 카메라가 그 사람을 조금 더 드러낸다. 그래서 영화가 노부요시를 조금 더 오래 바라보길 바랐다.
금주의 음악 앨범
Loveless
by 모호
트랙리스트
1. only shallow
2. loomer
3. touched
4. to here knows when
5. when you sleep
6. i only said
7. come in alone
8. sometimes
9. blown a wish
10. what you want
11. soon
앨범 loveless
아티스트 my bloody valentine
발매 1991
길이 48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드디어 내일이다.
지금이야 아무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취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어려웠다. 음악과 영화 감상은 너무 뻔하고 재미가 없어 보인다고. 그냥 취미가 없는 거 아니냐며. 상당히 억울했지만 나는 그냥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다.
어쩌다가 음악 감상이 취미가 됐을까. 최근 발견한 흥미로운 점은 내 나이 또래, 음악 감상이 취미인 사람들은 초~중딩 때에 들은 '넬쏜못(밴드 넬, 쏜애플, 못)'이 그 시작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넬쏜못으로부터 시작해 멋대로 뻗어나가다가 마주치는 아이코닉한 앨범들. 앨범들과 사랑에 빠지고 다시 또 사랑에 빠질 앨범들을 찾아 떠나고. 여행담 같은 그 여정에서 과연 loveless를 마주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loveless 앞에서 잠시라도 발길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까.
부끄럽지만 중학생 무렵 나는 이 앨범을 포쉐어드로 구했다. (저작권 인식이 바닥이었다. 지금은 속죄하는 마음을 항상 품으며 음악을 정당하게 소비하고 있다.) 당시 네이버 지식인을 통해 슈게이징이라는 장르를 알게 됐고, 내공을 받아간 성실한 답변자의 조언대로 슈게이징 3대 앨범(;;) loveless, souvlaki, nowhere을 포쉐어드에 검색해 통째로 다운받았다. 어린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쨍한 분홍빛 앨범의 loveless였다. 슈게이징이 뭔지도 제대로 모른채 대뜸 1번 트랙부터 재생했다. 4번의 드럼 연타로 시작해 들이치는 노이즈. 싸구려 삼성 커널형 이어폰을 끼고 있었음에도 나는 이 앨범의 에너지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슈게이징과 노이즈, 그중에서도 loveless는 그렇게 다가와 나의 10대와 20대를 함께 했다. 앨범은 변하지 않지만 듣는 내가 계속 변했다. 첫 알바 월급으로 산 13만원짜리 이어폰으로 들은 loveless는 중학생 때 싸구려 이어폰으로 들은 소리와 많이 달랐다. 정말 정말 귀가 아팠던 예전과 달리 노이즈가 커튼 같았다. 대전으로 가는 고속 버스 안이었다. loveless를 반복 재생해두고 잠에 들었다. 얕은 잠에서 계속 울렸던 비 같은 노이즈와 눈부신 분홍빛 화면. loveless는 그렇게 몇 번이나 기억의 대표곡이 되곤 했다.
언젠가 my bloody valentine의 공연을 보러 여행이라도 떠나고 말겠다는 내 소망을 하늘이 알아주기라도 한걸까. 한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my bloody valentine이 이름을 올렸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 이제 하루 앞으로 다가온 공연. 내 취미는 음악 감상이 맞다! 당당히 외치듯 노이즈를 즐길 내일을 기다리고 있다.
금주의 사진
타임포스트는 잊지 말아요
by 모호
작업실의 뒤쪽 창문에서 밖을 내려다보면 아랫층 식당들의 뒷문과 그 위를 덮고 있는 지붕들이 보인다. 지붕은 고양이들의 영역이다. 항상 보이는 낯익은 고양이들이 따뜻한 햇빛을 즐기며 누워있다. 장마가 오고 난 뒤로는 고양이들이 통 보이지 않는다. 어디서 비를 피하고 있으련지.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스웨터의 음악을 들으며 빈 지붕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