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사람의 사정을 헤아리지 않는다. 아부가 통하지 않는 통치자. 결국 우리는 그날그날의 여름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오늘은 비가 내렸다. 바람은 더위 풀어놓았다.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창문을 조금 열어두니 빗소리가 들락거렸다. 그 소리만 듣고 있자니, 과연 여름이구나 싶다.
변덕은 여름의 성격이다. 하루 안에서도 비는 몇 번이나 내렸다가 그쳤고, 늦은 오후에는 햇빛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작업실 안을 밝혔다. 그러더니 먼지 없는 깨끗한 바람은 새 작업실로 숭숭 들어와 마음껏 구경해댔다. 나도 창문을 활짝 열고 대놓고 맞이했다. 오늘 하루 내 마음도 이리저리 휩쓸렸다. 사람은 시간의 흐름을 사건의 수로 감각한다는데, 그래서인지 오늘 하루가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비가 내리고, 그치고, 다시 햇빛이 들고, 바람이 지나가는 동안 내 안에서도 몇 번의 계절이 스쳐 간 듯하다. 오늘의 여름은 내 안도 어지럽게 지나갔다.
by 모순
1. 금주의 다큐멘터리
<공룡들> by 모순
2. 금주의 음악 앨범
<In Colour>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말랑한 우팡이> by 모호
금주의 다큐멘터리
공룡들
by 모순
제목공룡들 (에피소드01)
감독 엠버 체리 임스
공개 2026
길이 48분
관람 넷플릭스
아직 첫 번째 에피소드밖에 보지 못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공룡을 멸종한 괴물이 아니라, 한때 지구를 살아갔던 야생동물로 바라본다. 가족을 지키고, 짝을 찾고, 먹이를 사냥하며 살아남으려는 모습은 마치 네셔널 지오그래픽의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신의 목소리’ 모건 프리먼의 따뜻하면서도 근엄한 내레이션은 극을 이끈다.
총괄 프로듀서는 스티븐 스필버그다. 할리우드 제작진이 만드는 다큐멘터리는 과연 그렇구나. 실제 자연을 촬영한 배경 위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한 공룡을 합성했고, 생성형 AI도 일부 제작 과정에 활용했다. 익숙한 화법에 다른 점 한 방울이면 충분하다는 것 같다. 또한 서사적 장치를 끊임없이 부여한다. 공룡에게 생존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부여하고, 위험과 선택을 따라가며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덕분에 우리는 인물을 보듯이 공룡을 바라보게 되며 채널을 돌리지 않는다.
웅장한 화면과 사운드는 새 작업실의 상영 환경을 시험하기에 더없이 좋다. 상영만 해준다면 극장에서 네 편을 한 번에 보고 나오고 싶다. 그럼 이제 에피소드 02를 보러 가봐야겠다.
금주의 음악 앨범
In Colour
by 모호
트랙리스트
1. Gosh
2. Sleep Sound
3. SeeSaw (feat. Romy)
4. Obvs
5. Just Saying
6. Stranger in a Room (feat. Oliver Sim)
7. Hold Tight
8. Loud Places (feat. Romy)
9. I Know There's Gonna Be (Good Times)
10. The Rest Is Noise
11. Girl
앨범 In Colour
아티스트 Jamie xx
발매 2015
길이 42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음향 기기를 테스트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꼭 Jamie xx의 Sleep Sound를 재생한다.
2년 전, Jamie xx의 내한 공연을 갔었다. In Waves의 발매 투어였던 걸로 기억한다. 같이 갈만한 사람이 없어서 혼자 갔지만 Jamie xx가 잘 보이는 위치에서 공연을 즐겼다. 그날 Jamie가 Life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몇 번이나 반복해 틀었는지 한동안은 앨범 재생을 하더라도 Life는 그냥 넘겨버리곤 했다. 그날 Jamie xx는 내 상상 속의 모습처럼 어딘가 내향적이었다. 모든 제스처가 묘하게 매가리가 없었다. 다만 In Colour 때보다는 In Waves에서 더 외향인이 된 것만 같았다.
In Waves도 재미있는 앨범이지만 나는 아직 In Colour 앨범이 더 마음에 든다. 첫 정규 앨범인 In Colour는 밴드 The xx의 프로듀싱을 맡아 온 Jamie 답게 미니멀하고 세련된 뉘앙스를 풍긴다. 역시 'Colour'가 들어간 앨범은 대개 들을만 하다는 나의 지론이 통해서 일까 ('Colour'여야만 한다. 'Color'는 해당되지 않는다). 혹은 내가 언젠가부터 음향기기를 테스트할 때 습관처럼 In Colour의 수록곡 Sleep Sound를 재생하기 때문일까. In Colour 앨범은 나에게 이미 어떤 지위에 올라와있는 앨범처럼 느껴진다.
새 작업실에서 모순의 11인치 맥북에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스피커를 연결하고 음향이 잘 나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역시 Sleep Sound를 틀었다. 수백번 들었던 음악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나는 이 익숙한 음악이 어떻게 들리는지 가장 기준점이 되는 기억과 비교하며 집중했다.
금주의 사진
말랑한 우팡이
by 모호
며칠 동안 이 말랑한 우파루파한테 빠져있다. 어딜 가든 가방에 꼭 넣어다니며 할 일을 하면서도 손에 쥐고 있다.
실은 말랑이(슬랑이)의 유행에 별 관심이 없었다. 당연히 내가 이것을 가지게 될지도 몰랐다. 가지게 되고 나서도 내가 이 우파루파를 반려 말랑이로 생각할지 몰랐다. 모든 건 이 우파루파의 귀여운 만듦새 때문이다. 크고 찐빵같은 얼굴은 물론이고 살짝 통통한 몸통과 짧고 야무지게 뻗어있는 사지와 꼬리까지. 결국 관심이 없는 척을 하다가 과몰입을 하게 되는 전형적인 덕질 수순을 밟게 됐다.
하루종일 옆에 두고 집중력이 흐려질 때면 배를 콕콕 찔러보거나 한손에 쥐고 있다. 어딜 가더라도 비닐 가방에 넣어서 꼭 챙겨간다. 이상하게 정말 살아있는 우파루파를 반려 동물로 들인 것만 같다. 이제 이름을 지어줘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