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게 깎여나간 산의 능선을 내달렸다. 산을 오르다보면 채석장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이 있다는 근처 카센터 사장님의 귀띔 때문이었다. 등산로는 채석장을 크게 두르고 있었다. 왼쪽으로 접근 금지 철망과 절벽, 그리고 나무가. 돌을 잘게 부수고 싣는 소리와 함께 산의 속살이 울창한 나무 사이로 언뜻 보였다. 20분쯤 올랐을까. 어디에서도 깨끗하게 채석장을 내려다볼 수 없었다. 멈춰섰다. 소리와 풍경은 멈추지를 않았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영화다. 과거와 현재 이미지의 병치와 보이스오버. 과거의 푸티지는 현재에 학살과 죽음을 소환하고 나레이터는 관객에게 윤리적 각성을 촉구한다. 이미지는 지시적이거나 설명적이라기보다 그 촉구를 불러일으키고 강화하는데에 힘을 다한다.
모든 영화에게는 닿고 싶은 진실이 있다고 믿는다. 그 진실의 크기와 경중은 중요하지 않다. 믿고 싶은 진실이, 닿고 싶은 진실이 있어야 영화를 만들며 실패하면서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그래야만 비로소 영화가 될 것 같다. '밤과 안개'가 닿고 싶었던 진실은 무엇이었으려나. 이 겸손하면서도 적극적인 영화를 만들며 알렝 레네는 무엇에 실패했으려나.
금주의 음악 앨범
Chip Chrome & The Mono-Tones
by 모호
트랙리스트
1. Chip Chrome
2. Pretty Boy
3. Lost in Translation
4. Devil's Advocate
5. Hell or High Water
6. Cherry Flavoured
7. The Mono-Tones
8. BooHoo
9. Silver Lining
10. Tobacco Sunburst
11. Middle of Somewhere
Deluxe edition additional tracks
1. Stargazing
2. Over the Influence
3. Here We Go Again
4. The Shining
앨범 Chip Chrome & The Mono-Tones
아티스트 The Neighbourhood
발매 2020
길이 47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평소라면 절대 손이 가지 않을 앨범을 틀었다.
이번 주엔 불현듯 한번도 제대로 들어본적도 없는 밴드, Neighbourhood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 앨범의 재킷도. 꽤나 그럴듯한 이미지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야 레퍼런스가 확실하니까, 이미 검증된 매력적인 이미지와 컨셉이니까. 번쩍거리는('반짝'과는 엄연히 다르다) 밴드의 음악은 낯이 간지러워서 마음 놓고 즐기기가 어렵다, 뭐 이런 종류의 못된 딴지를 걸어대며 재생을 거부해왔다.
늘어지는 불평불만에도 이 앨범을 재생한 건 순전히 생각을 그만하고 싶어서였다. 안 그래도 생각할 거리가 넘쳐나는데, 심지어 개중에는 해결해야 할 것도 있는데, 운전하면서 음악까지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디럭스 버전을 재생하자 가장 첫 트랙으로 보너스 트랙인 'Stargazing'이 흘렀다. 생각보다 신이 났다. 가사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내가 할 일은 앞을 잘 주시하며 엑셀과 브레이크를 잘 나눠 밟는 것 뿐이었다.
역시 내 심술이었다. 내심 마음에 들어하지 않던 밴드의 앨범을 불량식품처럼 소모해버리려고 했다가 양껏 신나하면서 3번 정도 반복 재생했다. 매번 이런 식이다. 생각을 하기 싫어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보이는 영화를 틀었다가 2시간을 홀딱 빠져버리는 것처럼. 아마 나는 앞으로도 이 앨범을 누구에게도 추천하지 않고 좋아한다고도 말하지 않겠지만 가끔 3번씩 들을지도 모른다.
금주의 사진
나무
by 모순
나뭇잎들이 바람이 주는대로 하늘하늘 흔들린다. 나무가지들은 저마다 재멋대로 뻗어나가지만, 서로 부딪히지 않고 하나의 장면을 채운다. 그러면서 산들산들. 그 역력한 풍경을 가만히 앉아 적어도 1시간 동안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몇년 전부터 자주한다. 울창해진 마음을 소복이 가라앉히는 분명한 방법일 것이다. 요상한 확신이다.
나무를 마주치면 그 이름을 떠올리는 럭셔리한 나날도 상상해본다. 나는 자연의 이름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침구나 옷차림이 아니라 나무를 마주치고 계절을 알아채는 일상도 떠올려본다. 그렇다고 월든 호수같은 곳에서 유유히 살고 싶은 건 아니다. 나는 도시의 모순과 퀘퀘한 공기가 필요하다.
사진은 지난 설연휴 부모님과 나고야 여행 중 찍은 것이다. 앨범에서 눈이 멈춘 건 이것과 부모님을 찍은 사진뿐이다. 초상권동의서가 필요없는 나고야 나무를 나눈다. 자연은 주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