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동안 창문 옆자리는 추워서 피했다. 사실 이 카페에서 가장 좋은 자리다. 볕이 들고 창틀 앞으로 선반이 있어서 자리를 넓게 사용할 수 있다. 계절이 돌아 다시 이 자리에 앉았다. 시간 속으로 새어나가버린 것들을 헤아릴 여력도 없이 다시 앞을 본다. 훈련된 건지 습관인 건지 모를 이 관성은 생존에 도움된다는 이유로 온몸과 정신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떼어내기 어려운 도시의 엿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하루 갑자기 시간이 낯설 때가 있다. 년도가 생소하고 나이가 어색하다. 구시가지 골목 전봇대의 전깃줄처럼 보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 한눈에 보이는 이 압도감은 서울살이의 대가다. 그것이 서울의 메피스토펠레스가 몰래한 계약이다. 자 그럼 이제 젊음을 주셔야죠?
비록 이 영화는 포트폴리오 다큐멘터리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더라도, 경쾌함은 있었다. 그건 인물의 기질에서 비롯된다. 한 남자가 공터에서 체육복을 입고 노년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가벼운 몸놀림을 보이며 폴짝댄다. 안도 타다오다. 그는 위계적이다. 스스로도 알고 있다. 사무실에서 안도의 자리는 전직원을 내다볼 수 있는 곳에 있으며 직원들이 느낄 압박감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라운드마다 천엔을 준다는 말에 복싱을 시작했고 동료에게 벽을 느낀 그는 바로 포기한다. 건축학과를 나오지 못한 그는 홀로 오사카를 돌아다니며 건축물을 그리고 보며 공부한다. 건축사무실을 열고 일이 없자 여기저기 계속 거절당하며 될 때까지 제안한다. 상하이 오페라 건물 건축가로서 그는 확신할 수는 없다며, ‘실패한다고 죽는 것은 아니니까 사과하면 된다’고 말한다. 솔직하자면, 이런 심플한 태도는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성격이다. 골치아픈 인간사의 복잡미묘는 마치 그에게 없는 듯. 아니면 영화가 그 사람을 그렇게 본 것일수도. 부제가 Samurai Architect인 것은 여러 방면에서 꽤나 적절하다.
금주의 음악 앨범
Age Ain't Nothing But a Number
by 모호
트랙리스트
1. Intro
2. Throw Your Hands Up
3. Back & Forth
4. Age Ain't Nothing But a Number
5. Down With the Clique
6. At Your Best (You Are Love)
7. No One Knows How to Love Me Quite Like You Do
8. I'm So Into You
9. Street Thing
10. Young Nation
11. Old School
12. I'm Down
13. Back & Forth (Mr. Lee & R. Kelly's remix)
앨범 Age Ain't Nothing But a Number
아티스트 Aaliyah
발매 1994
길이 49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멋진 음악만으로도 충분하다.
아티스트 이름을 알파벳 오름차순으로 정렬한 애플 뮤직 보관함을 주욱 내리며 그날 들을 음악을 고르곤 한다. 알리야는 'A'인 탓에 거의 항상 먼저 눈에 띈다. 그중에서도 선글라스와 비니를 쓰고 당당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선언하는 <Age Ain't Nothing But a Number>을. 나는 이 앨범을 꽤나 아꼈다.
지금 듣기엔 그리 대단치 않은 '그 시절' R&B 앨범이라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음악은 듣는 모두의 것. 'At Your Best'를 들으며 혼자 떠났던 제주도와 'Back & Forth'를 틀어놓고 집에서 혼자 고개를 흔들어댔던 기억은 앨범을 특별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그가 이 앨범으로 고작 15살에 데뷔했다는 사실과 이후 2집 앨범을 발매 후 얼마 지나 22살의 나이에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보다 중요했다.
며칠 전, 노트북을 펴놓고 서류 작업을 하다가 무심코 <Age Ain't Nothing But a Number>을 오랜만에 골라 재생했다. 낯익은 인트로가 지나고 2번 트랙이 흘렀다. 리듬 위에 얹어진 그의 능숙한 목소리와 함께 자동으로 고개가 끄덕거렸다. '이 음악 참 좋네'하고 같이 있던 짝꿍이 말했다. 괜히 뿌듯했다. 그렇지, 아무래도 그렇다니까. 알리야가 어떤 생애를 보냈는지, 그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해줄지 고민했다가 이내 그만뒀다. 이미 멋진 아티스트의 이미 멋진 음악이니까!
금주의 사진
공간은 그렇게 될 것이다
by 모호
얼마 전까지 어떤 가게가 있었던 것도 같은 공간이 공사 중이다. 곧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될 이곳이 어떤 모습을 하게 될지 비밀 레시피가 한쪽에 그려져 있었다. 짧은 식견으로는 제대로 예측할수도 없는 그림을 한참 서서 보고 있었다. 카페가 되는 건가. 식당인건가. 글쎄, 잘 모르겠다.
창 너머, 어린 아이가 새로운 공간이 될 곳의 앞에서 한참 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엄마는 이제 가자는 뉘앙스를 풍기며 다른 곳을 보고 서있었다. 비밀 레시피에서 아이로 시선이 옮겨갔다. 저 아이는 무엇을 보고 있으려나. 사라진 공간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있으려나. 무엇을 기억하려나. 아니면 무엇을 꿈꾸고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