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이 나고 자란 이천은 소란스러운 도시였다. 겉으로는 고요하지만 면면을 뜯어보면 터질 듯이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 논을 끼고 세워진 커다란 물류 센터와 공장들, 도시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하이닉스라는 거대한 공단, 한편으로는 시장이 자리잡고 있는 시내, 그리고 외국인을 다수 포함한 시민들. 도시를 나눠 차지하고 있는 여러 축이 뒤섞이면서 시장에서 오묘한 에너지를 숨기고 있었다.
모순은 앞장 서 걸으며 시장을 지나 시내까지 안내했다. 저곳에는 원래 어떤 가게가 있었고 그 가게는 어떤 곳이었는지 같은 설명과 함께. 생각보다 이천 시내의 모습은 많이 바뀌지 않은 듯 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의 대전 모습과 많이 닮아있었으니.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의 모습도 다양했다. 외국인, 노인, 학교가 끝난 학생들, 상인들까지. 그 가운데 구경꾼처럼 두리번거리는 우리의 모습이 가장 우스운 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천에서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픽션 영화를. 하지만 논픽션과의 경계에 있는 영화를. 로케이션은 이곳이 좋겠다, 아니 저 술집에서는 꼭 촬영을 해야겠다, 같은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졸음을 쫓았다.
by 모호
*지난 주 모호순 한 회차 쉬어갔습니다. 돌을 던지셔도 좋습니다. 한땀한땀 진행되는 다큐멘터리의 제작지원금을 얻고자 모니터 앞에서 지원서를 꿈벅꿈벅 바라보며 화려하게 부서져버렸습니다. 완성되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같이 보아요. by 모순
1. 금주의 다큐멘터리
<나의 위니펙> by 모호
2. 금주의 음악 앨범
<My Heart Is an Open Field>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새> by 모순
금주의 다큐멘터리
나의 위니펙
by 모호
제목나의 위니펙
감독 가이 매딘
공개 2007
길이 1시간 20분
관람 DVD
도시를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도시에서 벌어진 사건과 역사, 도시의 풍경 혹은 공간. 도시의 편린들을 이어붙여 한 도시를 전부 설명하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관계를 맺으며 너무 많은 일이 벌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감독 가이 매딘은 자신의 고향 캐나다 위니펙이라는 도시에 대한 영상을 의뢰받았다. 고향이라는 특수성, 향수, 익숙함이 도시를 설명하는 일의 어려움, 그리고 '의뢰'받은 일이라는 사실이 만나 길을 잃기 쉬운 제작에서 감독은 독특한 선택을 한다. 다큐 판타지라는 장르를 만들어 위니펙을 이야기 하기로 한다.
나는 이 영화의 장르를 알고 영화를 재생했다. 다큐 판타지에 대해 미리 상상하고 영화를 끼워맞춘 셈이다. 하지만 상상은 그리 수월하진 않았다. 다큐 픽션의 한 갈래이려나, 현실에서 벌어질 법한 일이 아닌 사건을 사실과 섞어 교차하려나 하는 정도의 예상만 할 뿐이었다. 영화는 기차에서 시작해 아주 강렬하게 관객을 몰아붙인다. 나레이션(아마도 감독 본인의 목소리)와 거친 질감의 흑백 필름 픽션 푸티지, 뉴스릴, 타이포가 뒤섞이며 달려나간다. 위니펙의 사람들과 본인을 몽유병자라고 선언하며 위니펙을 떠나는 영화, 위니펙을 떠나기 위해 그곳에서의 기억과 역사를 낱낱히 파헤치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한 것만 같다. 하지만 그가 사실을 말하고 있는지는 모호하다. 아니, 어쩌면 감독은 잠에 취해 자신의 경험을 재창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꿈 같은 사실, 혹은 사실 같은 꿈. 다큐 판타지는 그렇게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흐리며 도시와 도시에 사는 개인을 연결한다.
아마 이 낯선 영화를 본 관객은 종일 위니펙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영화 속 묘사된 사건에 대해 사실 여부를 의심하고 위니펙이라는 도시의 역사를 검색할지도 모른다. 혹은 영화를 믿고 받아들이기로 결심할지도. 어떤 방식이든 영화를 통해 위니펙은 아주 여러 갈래로 관객에게 새로운 도시가 된다. 어쩌면 도시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일지도.
금주의 음악 앨범
My Heart Is an Open Field
by 모호
트랙리스트
1. Earthquake
2. Hair Sticks
3. Serpent
4. Blue Spring
5. Forgot My Horse's Name
6. Joy
7. Joy 2
8. No Wings
9. My Heart Is an Open Field
앨범 My Heart Is an Open Field
아티스트 Tenci
발매 2019
길이 35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Tenci의 목소리를 들으면 안심이 된다.
2019년, 발매된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앨범을 알게 됐다. 즐겨 보는 한 웹진을 통해서였다. 주목할만한 앨범이라는 딱지가 붙어있진 않았지만 당시엔 거의 모든 신보를 한번씩은 들어보려고 노력하던 한량이었기에 별 생각없이 앨범을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하고 재생했다. 1번 트랙 Earthquake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우울하지만 어딘지 주술적인 톤의 기타로 조심스럽게 시작하는 곡은 곧 아주 독특한 톤과 창법의 보컬과 만난다. 조용한 방안에 두텁게 가득차 있는 이 곡을 들으며 가만히 앉아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이 밴드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한동안 이 앨범을 자주 들었다. 그리고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블로그에 추천하며 제발 이 음악에 같이 빠져들기를 바랬다. 빠져든 사람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정도로 나는 Jess Shoman의 목소리와 가사에 흠뻑 빠져있었다. 적절한 때에 같은 가사를 꼭 반복하고 하는 음악, 그리고 그 구절은 Stay, Blue 같은 것들. 낮은 톤의 목소리와 가성은 종교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Tenci는 그해 꽤 주목받는 신인이 됐다. 덕분에 나는 이들의 2집 앨범도 들을 수 있게 됐다. 어쩌면 곧 3집을 듣게 될지도. Tenci의 공연을 직접 볼 수 있을까. 아마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음악을 듣고만 서 있을 것 같다.
금주의 사진
새
by 모호
과자부스러기처럼 뿌려진 새들이 활공한다. 얼마나 땅에 붙어 있었을까. 한 마리였다면 렌즈가 이물질이 묻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무리를 지어야 인식되는 작은 것들의 존재가 하늘에서 도드라진다. 나무들은 아쉬워 가지를 뻗어 손을 내밀지만 새들은 안중에도 없다. 갈 길이 있는 자의 날개가 펄럭이며 정신 없는 브이(V)자를 그려낸다. 아 부럽다 부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