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차장을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건물을 벗어나자마자 자동차 보닛에 수많은 빗방울이 터졌다. 좋은 소리다. 빗소리는 하나의 소리 같지만 귀 기울이면 방울마다 다르다. 한날한시에 떨어지는 망울들인데도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낸다. 각각 무게도, 낙하가 시작된 지점도, 터져버린 지점의 질감도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제각각으로 들리지 않고 ‘빗소리’로 들린다. 그러니까 빗소리는 하나의 개별체가 이뤄낸 총체적 세력의 화음이다.
우산을 쓰니 빗소리는 촉각이 됐다. 후두둑 진동이 손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갈 길이 바빠 이내 그 감각은 잊혔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산을 접었다. 우산살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은 더이상 비가 아니었다. 꼭지로 모인 물덩어리가 건물 바닥에 무늬를 그리지만 곧 걸레로 닦여 버린다. 조금까지 도시를 적시던 비. 이제 세력을 잃은 비는 그렇게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by 모순
1. 금주의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 시티:홀> by 모순
2. 금주의 음악 앨범
<반쯤 떨어지다가 본 풍경>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장화, 홍련> by 모호
금주의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 시티:홀
by 모순
제목말하는 건축 시티:홀
감독 정재은
공개 2013
길이 1시간 46분
관람 DVD
서울시 신청사가 건축되는 7년의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하나의 공공건축물이 완성되기까지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힌다. 건축가와 건설사, 시공사와 발주처는 모두 같은 건물을 바라보지만 욕망마저 일치하지는 않는다. 수도 서울의 신청사라면 더욱 그렇다.
영화는 공사 중인 현장에 시선을 둔다.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던 구청사가 공개되면서 신청사 전체 윤곽이 드러나자, 세간에서는 “흉물 같다”는 평가가 쏟아진다. 설계 공모 당선자인 건축가 유걸은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배제됐다가 뒤늦게 감리 자격으로 현장에 합류한다. 그는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다목적홀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애쓰지만 충돌을 마주한다.
흥미로운 것은 갈등의 현장에 대표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회의실에는 삼성물산의 팀장, 서울시 주무관, 건축사사무소의 실무 책임자가 앉아 있다. 모두 조직을 대표해 참석 중이다. 과연 그들의 결정권은 어디까지 일까. 가장 현장에서 문제를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표자가 아니라 실무자들이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신청사라는 건물보다 그것을 만들어가는 시스템의 얼굴이 조금씩 드러난다.
공모 심사위원들은 각 건축협회를 대표들이었다. 그들은 공모선정작을 발표하면서도 이상한 말을 한다. 2등작이 사실상 가장 완성도 높은 안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당시 서울에서 보기 어려웠던 도전적 건축이라는 점에서 유걸의 설계안이 선정했다고 설명한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신청사는 이른바 ‘턴키(turn-key)’ 방식으로 추진됐다. 설계와 시공을 하나의 건설사가 주도하는 구조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설계와 시공을 견제할 장치가 약해지고 ‘건축적 완성도’에 대해 담보할 수 없다는 비판이 있다. 당시 공공건축을 이런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적절한가를 둘러싼 논란이 적지 않았던 이유다.
영화는 신청사의 외관이나 완공 장면보다도 오히려 그 과정에서 반복되는 협상과 타협, 그리고 책임의 이동을 보여준다. 건축은 한 사람의 작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조직과 이해관계가 겹쳐진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결국 이 영화는 서울시 신청사에 관한 기록인 동시에, 오늘날 한국의 공공건축이 어떤 구조 속에서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금주의 음악 앨범
반쯤 떨어지다가 본 풍경
by 모호
트랙리스트
1. 양철나무꾼
2. 방
3. 푸른불나방
4. 모래
5. 숨
앨범 반쯤 떨어지다가 본 풍경
아티스트 순이우주로
발매 2021
길이 21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반쯤 떨어지다가 본 풍경'이라는 앨범 제목을 가끔 중얼거린다.
어릴 적, 떨어지는 꿈을 꾸고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면 아빠는 키가 크려나보다, 하고 말해줬다. 그럼 나는 괜히 키가 크는 기분에 발목이 간질거렸다. 다시 잠에 들어야지, 잠은 보약이니까.
이제 더는 키가 크지 않는 나이가 됐는데도 가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꾼다. 발이 닿지 않아 공중에서 허우적대고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잠에서 깬다. 낙하의 느낌은 알지만 여지껏 부딪혀본 적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공중에서 눈을 뜬다. 잠에서 깨도 다행이다, 라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앨범 '반쯤 떨어지다가 본 풍경'을 발매일에 들었었다. 앨범 제목에 이끌려 짧은 EP 앨범을 여러 번 반복 재생했다. 앨범의 제목, 음악, 가사, 밴드 이름 모두가 너무도 잘 어울려서 한번쯤 라이브 공연을 보고싶다고 생각했었다. 위에도 아래에도 제대로 발 붙이지 못하고 항상 반쯤 떨어지고 있는 중의 풍경만 보는 것만 같은, 그러니까 항상 삐딱한 풍경의 공중에서 부유하는 내 처지를 참 잘 설명하는 제목이구나하는 일종의 동질감이었다. 하지만 이 앨범을 끝으로 밴드 순이우주로의 활동은 이어지지 않았다. 멤버들은 각자 음악 활동을 계속 하는 듯도 했지만 더는 알아보지 않았다.
떨어지는 꿈의 해몽을 찾았다. 불안과 위협 같은 부정적인 추락의 해몽 가운데, '떨어지기 전에 깬다면'이라는 조건의 붙은 해몽이 따로 있었다. 문제 해결의 새로운 실마리.
금주의 사진
장화, 홍련
by 모호
집 근처에 김지운 감독의 영화 '장화, 홍련'의 포스터가 버려져 있었다. 꽤 소중했던 건지 액자까지 끼워넣었던 포스터가 통째로 밖으로 나왔다. 더는 '장화, 홍련'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혹여나 김지운 감독에게, 혹은 영화에게 억하심정이 생겼다면 액자를 열어 포스터만 버리고 새로운 포스터를 끼워넣으면 되었을텐데. 그랬다면 폐기물 신고도 하지 않아도 될텐데.
어쩌면 이 사람은 '장화, 홍련'이 아니라 영화를 가져다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액자에 담긴 영화 한 편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담긴 액자를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너무나도 좋고, 또 너무나도 싫어서 이제 영화를 가까이 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해서 눈앞에 가장 가까이 보이는 영화를 가져다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충 버릴 수가 없어서 폐기물 스티커를 신청하고 반듯하게 세워두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영화와 한 사람이 작별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