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과의 작업 취재 겸 촬영 차 보광동으로 향했다. 그날은 이슬람중앙성원에서 금요일 정오 예배가 있는 날이었다. 모스크가 꽉 찰 정도로 많은 무슬림들이 모였다. 아랍어, 영어, 한국어로 이어지는 노년의 이맘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 구석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낯선 장소에서 익숙한 검은 시야를 앞에 두고 반쯤은 꿈을 꿨다. 목소리가 멈추고 이내 모두가 우루루 줄을 맞춰 촘촘히 섰다. 나는 여전히 구석에서 어색하게 줄에 합류해 기도 드리는 그들 사이에서 목례를 하며 기도하는 척을 했다. 이래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좋은 날씨였다. 예배가 끝나고 나간 보광동의 풍경은 황량했다. 나는 기도를 해본 적이 없다.
더운 기후에서 자라는, 누군가 계획한 것처럼 줄 맞춰 서 있는 나무들 사이를 카메라가 거꾸로 뒤집혀 둥둥 떠 지난다. 트랙터 소음처럼 들리던 배경음이 점점 커지고 나무 무리를 빠져나온 카메라는 천천히 우리가 익숙한 하늘-땅의 프레임으로 도로 뒤집힌다. 그리곤 나무 하나 보이지 않는 험준한 산맥을 후경으로 두고 전경으로 잘 정돈된 농장의 모습이 천천히 패닝된다. 노동자들도 보인다.
Valley Pride는 캘리포니아에서 단일 농작물을 생산하는 거대 농업 기업이다. 본래는 사람이 살 수도 없는 땅에 물을 대고 미국 전역, 어쩌면 세계 어딘가로 공급하기 위한 단일 품종의 농작물들이 공장처럼 재배되고 있다. 경작과 수확이 한창인 모습을 카메라는 잘 정돈된 프레임에 담는다. 그리고 이따금 정돈된 프레임 안의 노동자들을 아주 크게 줌 인 한다. 단 하나의 대사도 없는 이 영화는 현장음 조차 제대로 들려주질 않는다. 현장음을 기반으로 다시 디자인 된 사운드가 몽타주와 함께 자꾸만 불안하게 이어진다.
이곳이 캘리포니아라는, 실은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해도 괜찮다. 우리가 식료품 코너에서 마주치는 농산품들이 대규모 농업 단지에서 왔다는 것 쯤은 이미 모두가 어렴풋이 알고 있다. 다만 어쩔 수가 없을 뿐이다. 아보카도를 생산하는데에 상상 이상의 물이 필요하다고 해도, 커피를 재배하는데 노동을 착취하고 산림을 파괴한다고 해도 공정 무역 제품을 고르거나 소비를 줄이는 식의 방법 밖에는 실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마주치는 식료품은 이미 잘 정돈되어 먹기만 하면 되는 모습을 하고 있으니.Valley Pride는 그러한 우리의 인식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깔끔하게 화면을 구성하고 대신 이질적인 사운드로 몽타주에 균열을 낸다. 불편한 14분이 지나고 결국 질문 하나가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무얼 할 수 있나.
금주의 음악 앨범
Jassbusters
by 모호
트랙리스트
1. Charlotte's Thong
2. Momo's
3. Last Night
4. You Can Do Anything
5. Con Conn Was Impatient
6. B'nD
7. Sexy Man
8. Les Be Honest
앨범 Jassbusters
아티스트 Connan Mockasin
발매 2018
길이 34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이 앨범의 첫 트랙을 아주 좋아했다.
곧 친누나의 결혼식이 있다. 그래도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인데 뭐라도 도움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참에 누나가 결혼식 영상을 부탁해왔다. 친한 대학 동기의 결혼식 때에도 영상 부탁을 받았지만 내가 괜히 폐가 될까 괜히 부담스러워 사양했었지만, 이번에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폐가 되지 않게 잘 만들어주면 될 일이 아닌가, 업체에 맡긴다고 해서 더 나을까 싶어 덥석 제안을 받아들였다.
내가 만들 영상은 결혼식의 식전 영상과 식중에 축가를 부르는 중에 상영될 영상이었다. 누나가 가지고 있는 푸티지들과 사진들이 생각보다 많고 훌륭해 걱정보단 어렵지 않았다. 편집을 하면서 보는 행복한 누나의 모습들이 좋았다. 이상하게도 그 모습들을 보면서 같이 보낸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같이 밥을 먹고 별 것도 아닌 걸로 다투고. 성인이 되고 서울에서 1년이 조금 넘게 같이 살았던 때도. 과자를 같이 먹으면 꼭 마지막 조각을 나를 주는 모습 (쓰레기를 내가 버리게 하려는 고도의 수법이다), 내가 코로나에 걸렸을 때 죄수처럼 방 안으로 밥을 배식해주던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올라 웃겼다. 여러모로 내가 맡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오랜만에 프리미어 프로를 걱정없이 즐겁게 열고 닫았다.
다만 식전 영상에 배경음악으로 깔아둘 음악을 고르는 일이 고역이었다. 모두가 무난하게 들을만한, 따뜻하면서 조용하고 사랑스러운 음악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서 애플 뮤직 보관함을 한참 뒤졌다. 결혼식에는 절대 틀 수 없는 앨범들이 스크롤에 따라 마구 지나갔다. 몇 시간을 고민하다가 결국 음악을 고르긴 했다. 고르고 나서도 딱 2% 정도가 아쉬운 기분에 보관함을 서성였지만 더 나은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이내 깨닫고 고민을 그만뒀다. 그 과정에서 오랜만에 열어보는 앨범들을 많이 마주쳤다. 노래를 고르다가 반가운 앨범을 발견하고 내가 좋아했던 트랙을 잠깐씩 들어보는 식이었다. 그러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Connan Mockasin의 Jassbusters도 그 중의 하나다. 이 앨범의 1번 트랙을 참 좋아했었는데, 2018년 한동안은 이동하는 길에는 이 앨범만 플레이 했었는데, 하면서 1번 트랙을 들었다. 그리고 곡의 전주를 듣고는 이 곡은 끝까지 듣겠다고 마음 먹을 수 밖에 없었다. 곤란하게도 1번 트랙은 8분이 훌쩍 넘어서 한참 이 곡을 듣고 있었다. 결혼식 영상 편집과 8년 짜리 향수가 뒤섞여 묘한 기분이었다.
금주의 사진
커피 점
by 모순
터키식 커피 문화권에서는 커피를 다 마신 뒤 잔을 뒤집어 점을 본다. 바닥에 남은 끈적한 커피 가루가 천천히 흘러내리며 무늬를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읽는다.
앞날을 알 수 없다는 두려움은 세계 어디에나 있다. 신을 믿든 믿지 않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음 깊게 새겨져 있나 보다. 불안감이 마음의 뿌리에 각인된 감정이라면 남는 질문은 하나다.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읽고 경험하고 성장하려는 욕구 역시 어쩌면 불안을 다루기 위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깊어져야 한다는 강박. 그것은 가능한 한 넓고 깊은 내면을 미리 파두어, 불안이 닥칠 때마다 그 안에 묻어버리기 위함이다. 그러나 때로는 내면을 향한 끝없는 삽질 그 자체가 또다른 불안을 유발하기도 한다. 행위의 방향을 잃거나 지치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깊이만이 유일한 불안 관리의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럴 때는 밖으로 나가야 한다. 한동안 길을 잃기도 하고 샛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너무 오랜 방황은 좋지 않다. 신발에 구멍이 나기전에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맨발로 길 위에 서있어야 한다. 춥고 크게 다칠 수 있다.
커피잔을 뒤집어 내뱉는 믿거나 말거나 한 점괘로 누군가는 하루를 다른 기분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미신이란 불안을 견디기 위해 인간이 오랫동안 붙들어온 삶을 향한 처세술일 수 있다. 어쩌면 미신은 인류가 공유하는 가장 오래된 종교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