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전 겨울 이불이 더웠다. 비가 왔다. 축축한 공기가 간밤에 창문을 드나들며 서늘하게 방을 식혔다. 딱 좋다. 당분간 이대로 이 도톰한 이불을 계속 덮고 자야겠다. 잠결에 들은 초여름 빗소리는 청량했다. 실핏줄 같은 빗줄기가 여기저기 부딪혀 터질 때마다 가느다란 소리를 냈던 것이다.
내 몸에도 비가 온 듯 온몸이 욱신거린다. 오른쪽 팔뚝 속 통증은 몇 주째 지속되고 있다. 마사지도 무용이다. 주물러도 닿지 않는 깊숙한 곳 어딘가가 손상된 것 같다. 생활에는 지장이 없지만 무언가를 집거나 힘을 줄 때 예상치 못한 찌릿함이 올라온다. 그때마다 눈썹이 요동친다. 왼손으로 들 수 있는 물건도 오른손만으로 들 수 없다.
혼잣말을 들은 건지, 며칠 전부터 온라인에는 ‘다이아몬드 볼’이라는 제품 광고가 자꾸 뜬다. 손에 쥐고 돌리기만 하면 전완근만 자극하여 듬직한 팔뚝을 가질 수 있단다. 속도 모르고 팔뚝이라는 단어에만 꽂혀서 맥락 모르는 소리만 계속하다니, 어딘가 익숙해서 웃을 수도 없다.
그래도 비가 쿡쿡대며 대신 웃어준다. 창문에 주르륵 침까지 흘리며 큭큭 웃는다.
by 모순
1. 금주의 다큐멘터리
<아녜스 V에 의한 제인 B> by 모순
2. 금주의 음악 앨범
<Dream>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북한산 방향> by 모호
금주의 다큐멘터리
아녜스 V에 의한 제인 B
by 모순
제목아녜스 V에 의한 제인 B
감독 아녜스 바르다
공개 1988
길이 1시간 38분
관람 왓챠, 웨이브, 쿠팡플레이
영국 출신 프랑스 배우. 그리고 에르메스 ‘버킨백’의 그 ‘버킨’. 제인 버킨은 보통 사람처럼 평범하지만 보통 배우들처럼 욕심이 많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면서도 카메라에는 남루한 사람으로 담기길 원한다. 당연한 모순. 그런 버킨에게 아녜스는 영화를 만들자고 한다.
첫 장면부터 메타적이다. 바르다는 자신의 다른 영화들처럼 명화의 구도와 의상을 카메라 안으로 불러온다. 그 프레임 속에서 버킨은 속마음인지 아닌지 모를 듯한 대사를 읊는다. 이후 영화는 세트장에서 연기 하는 버킨과 아녜스와 대화하는 버킨을 번갈아 비춘다. 배우로서 버킨과 보통 사람으로서 버킨 사이 경계는 점점 무뎌진다. 바르다도 그렇다. 자신인지 감독인지 모를 내레이션을 띄운다. 제목 그대로 아녜스와 V, 제인과 B가 끊임없이 교차한다. 버킨의 대사는 그녀가 쓴 것일까 아니면 바르다가 쓴 것일까. 버킨은 배우다. 주어진 대사를 연기하는 것이 직업이다. 그런데 그것이 자기 이야기라면, 혹은 메타포라면. 그것은 진실일까 연기일까.
바르다는 한결같다. 카메라만 할 수 있는 일, 영화만이 가능한 감각을 탐구한다. 훔치고 싶어도 훔칠 수 없는 그 영화는 따뜻하고 유머러스하다. 바르다의 다른 영화처럼 계속 말하는 것 같다. 이것은 글도 그림도 아닌 영화라고.
금주의 음악 앨범
Dreams
by 모호
트랙리스트
1. Burning
2. Golden Cage
3. Fireworks
4. Done With You
5. Don't Give Up
6. Above You
7. Inflation
8. Figures
9. Borders
10.All Ears
앨범 Dreams
아티스트 The Whitest Boy Alive
발매 2006
길이 41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편안한 음악을 다시 찾고 있다.
요즘은 편안한 음악이 좋다. 부담없이 틀어두고 다른 생각을 해도 괜찮은 앨범들. 아마 편집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부터 시작한 작업의 촬영이 1차적으로 마무리되고 5월부터 편집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미 주제에 대해 팀원들과 나눈 대화가 많고 중심이 되는 푸티지와 아카이브를 꽤나 모아뒀다. 하지만 막상 편집기를 앞에 두니 의심과 함께 욕심이 든다. 지금까지의 문제 의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여기에서 멈추기에는 중장편의 다큐멘터리로는 아쉽다고.
그 이후로 노트북 화면만 째려보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미로 보드를 열어놓고 화면을 째려보다가 프리미어프로를 열어놓고 째려보다가, 다시 워드 파일을 열어놓고 째려보는 식이다. 순서대로 한 번 씩 째려보고 조금 끄적이고 붙여보다가 일어나서 창밖을 보고. 그러면서 5월의 절반을 보냈다.
어제는 괜찮은 생각이 들어 책 몇 권을 주문했다. 좀 힘이 났다. 간만에 음악이나 들으며 머리를 비워야겠다는 생각에 앨범을 골랐다. The Whitest Boy Alive의 Dreams. 신나고 멜랑꼴리한 기타 리프와 베이스에 고개를 까딱거렸다.
금주의 사진
북한산 방향
by 모호
옥상에 올라갈 수 있는 집에 사는 건 세 번째다. 정읍의 할머니댁, 남성시장에 있던 집, 지금의 미아동 집. 할머니댁에선 저멀리 엘지 아파트와 내장산이 보였고 남성시장 집에선 시장 전경이 보였다. 할머니댁 옥상에선 작은 세 발 자전거를 탔고 남성시장 집에선 달 사진을 찍었다.
미아동 집에선 북한산이 보인다. 기슭에 자리잡은 아파트들과 함께. 아마도 오패산 자락에 있어 꽤 지대가 높은 이 집에서는 시야에 걸리는 것 없이 성북구와 강북구가 내려다보인다. 내 사주에는 나무가 많고 금이 없다고 했다. 금이 없는 사람은 업무지구나 강남에 살아야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런데 내 마음은 나무가 많은 곳에 자꾸만 끌린다. (강남에는 살 수도 없다.)
얼마 전에는 북서울 꿈의 숲으로 규칙적으로 러닝을 나가는 친구를 따라 나섰다. 공원을 크게 한 바퀴 둘러 뛰는 러닝도 좋았지만, 집에서 공원까지 가는 길,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퍼지는 나무와 꽃 냄새가 유독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