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몇 분 더 멍때리고 있으면 돌곶이역에 저절로 도착할 것이라는 나의 믿음은 전광판에 ‘광흥창’을 본 순간 산산조각났다. 그동안 내 소심한 지하철 이동 역사에서 저렇게 자음이 거센 세글자는 본 적 없다. 기막히게 낯선 단어의 생김새에 단전부터 거부감이 일었다.
상수역에서 내렸다. 낯선 곳이다. 나는 성수에 산다. 성수와 상수는 점 하나의 방향을 두고 이렇게 대척에 있다. 이중모음에 익숙해서 단모음 ’ㅓ’와 ‘ㅏ’의 정확한 발음 구분을 잘 못하는 영어권 화자의 곤란한 한국 생활을 내가 겪는다. 마치 외국에 온 것만 같다. 불명확한 발음으로 택시를 타서, 성수를 가려다 상수를 가고, 상수를 가려다 성수로 가는 어느 외국인의 있을 법한 에피소드가 그려진다. 캐나다인 친구는 아직도 내 이름 ‘영인’과 도시명 ‘용인’을 소리로 구분 못한다. 화낸다. “It’s xxcking same!”
지하철을 반대로 타는 일은 한두 번이 아니다. 보통 정신을 노트북이나 세면대에 두고 밖을 나서면 이런다. 오늘은 우산을 챙기는 도중에 발생한 것 같다. 갑자기 내리는 ‘비’라는 예상치 못한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소루한 나의 뇌는 정신머리라는 영역을 내어준 게 틀림없다. 정신머리 영역은 안그래도 작년 한 해 동안 거의 고갈되어 공간이 얼마 없었을 텐데 아쉽게 됐다.
아직 지하철, 드디어 앉았다. 고개를 떨궈 한 숨 덜어내니 짝을 이룬 무수한 발이 보인다. 그 수만큼 눈동자가 있을 거란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아득해진다. 두 눈 시선의 끝은 손바닥 만한 각자의 송신탑 화면이다. 덕분에 우리는 지구 반대편까지 포괄한 무량의 정보를 서로 공유하게 되었다. 고마운 일이다. 언제나 이면은 있는 법. 맥락이 도려내진 정보의 돌기만으로도 우리는 의견이라는 외투를 입혀서 한 줄의 판단을 코멘트 한다. 생각 없는 공부와 공부 없는 생각이 송신탑의 주파수를 가득 매운다.
1시간이나 늦게 돌곶이역을 빠져나오니 비바람이 낭창하다. 비어버린 정신머리에 바람이 들락거리며 상쾌해진다. 환풍이다. 오늘의 비는 지난 며칠의 찌꺼기를 불어내는 뜻밖의 창바람이다. 어제 세차하길 잘했다.
by 모순
1. 금주의 다큐멘터리
<에이미> by 모순
2. 금주의 음악 앨범
<희망>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길냥이더라구요> by 모호
금주의 다큐멘터리
에이미
by 모순
제목 에이미
감독 아시프 카파디아
공개 2015
길이 2시간 7분
관람 왓챠,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
위 ‘여는 글’에서 각자의 송신탑을 언급했다. 스마트폰은 현대사회에서 비즈니스의 거대한 축이다.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미디어 채널이 됐다. 내가 알아보는 사람의 수보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의 수가 많아질수록 나는 더 큰 돈을 벌게된다. 스타란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닿을 수 없는 곳에 있기에 스타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스타였다.
어린 나이에 영국에서 재즈 뮤지션으로 성공한 에이미는 실제 경험만을 가사에 옮겼다. 감독은 공책에 적힌 에이미의 가사를 화면에 타이포그래피로 옮긴다. 내면의 노트가 노래로 옮겨지는 순간을 그렇게 묘사했다. 오직 아카이브와 목소리로만 전개되는 다큐멘터리에는 얼굴을 촬영한 인터뷰가 없다. 증언하는 목소리의 얼굴을 지운다. 말로만 존재하는 사람들. 어린 나이에 술과 마약으로 추락하는 순간에도 에이미의 곁에는 온전한 사람으로서 어른으로 존재한 사람은 없어 보인다. 각자 커리어적으로 할 일을 했다.
그래미를 수상한 세계적 재즈 스타의 파멸은 팔리는 사건이었다. 파파라치는 신랄하게 그녀를 찍어 조각냈고, 그렇게 잘려나간 이미지들은 인터넷과 방송을 떠돌았다. 바로 그 파편들이 이 다큐멘터리의 푸티지가 되었다. 에이미를 할퀴었던 조각들이 이제는 오히려 그녀를 다시 반추하게 만드는 실타래가 된다.
금주의 음악 앨범
희망
by 모호
트랙리스트
1. Talk to Me
2. Do That (feat. Okasian & Hwaji)
3. Highs and Lows 2
4. Loco 2 (feat. Paloalto & Huckleberry P)
5. What's Love (feat. Soul One)
6. Aww Shit (feat. Optical Eyez XL)
7. Coffee Break (feat. Bizzy)
8. Good Time
9. Heart (Skit)
10. Let It Show (feat. Beenzino & Okasion)
11. 우리는 움직여야해 (Skit)
12. Do Your Thing (feat. Paloalto & The Quiett)
13. Anything (feat. 김박첼라)
14. 넘어가
15. 사람들이 잊는 것 (feat. Soulman)
16. My Dream (Skit)
17. Leaving (feat. BUMKEY)
앨범 희망
아티스트 B-FREE
발매 2012
길이 67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비프리의 음악을 좋아한 건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하이라이트 레코즈의 컴필레이션 앨범이 발매된 해인 2013년이었다. '괴물 랩퍼' 스윙스가 쇼미더머니2에서 주목을 받으며 이제 막 힙합이 대중화 될 조짐을 보이던 무렵. 중학생 시절부터 장르를 가리지 않고 새로운 음악을 들어보는 것을 좋아했지만 유독 한국 힙합에는 정을 붙이지 못하던 그때의 내게 처음 진심으로 다가온 앨범은 버벌진트의 '누명'도 아니고 소울컴퍼니도, 빅딜도 아니고 피타입의 'Heavy Bass'도 아닌 하이라이트 소속이었던 비프리의 '희망'이었다.
그때의 비프리는 참 멋졌다. 희망을 발매할 무렵 이제 막 스물 아홉, 곧 서른이 되어가는 젊은 시절의 비프리는 고등학교 1학년의 눈에는 용감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행복할지 고민하고 그 행복이 적어도 물질의 풍요로 충족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솔직했다. 솔직할 수 있는 방법을 지금보다도 몰랐던 나는 정말 하나도 어렵지도 않은 말로 앨범 내내 솔직한 고백을 뱉어대는 그가 어렴풋이 부러웠다. 열일곱과 열여덟, 록 음악으로 거의 채워져있던 내 앨범 리스트에 비프리의 '희망'과 'Korean Dream'이 꼭 끼어있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비프리의 음악을 거의 듣지 않았다. 그의 언행과 논란들 때문이었을까. 논란들의 형태만 대충 듣고는 더 자세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비프리라는 사람에 대한 실망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성인이 된 시기를 기점으로 비프리의 음악의 방향은 계속 변화를 거듭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신보를 낼 때마다 한번씩은 꼭 들어봤다. 비프리는 음악을 그만두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도전하며 여전히 투명할 정도로 솔직해보였다. 오히려 비프리는 변한게 많지 않을지도 몰랐다.
한때 '희망'이라는 앨범을 참 많이 들었었지, 정도로 비프리의 음악을 남몰래 추억했던 내가 요즘 다시 '희망'을 가끔 꺼내 듣는다. 이제 '희망'을 발매할 때의 비프리의 나이와 엇비슷해진 지금, 그때의 비프리의 음악을 듣는다. 여전히 '희망'은 솔직하고 단순하다. 속내를 감추지도 않고 꼬아 말하지도 않는다. 다만 예전에는 확신에 차있고 용감하다고만 느꼈던 가사 속에서 나는 가끔 불안함을 읽는다.
금주의 사진
길냥이더라구요
by 모호
어린이날이었다. 모처럼 오전 시간을 여유롭게 집에서 보내며 밀린 빨래를 하고 청소기를 돌렸다. 물 한 잔을 따라 책상에 앉고 오늘은 집에서 작업해야겠다, 지난 촬영본들을 되돌아보며 앞으로의 편집을 천천히 고민해봐야겠다 하며 프리미어프로를 키자 배가 고팠다.
점심을 먹으러 집을 나서 미아역 근방까지 정처없이 걸었다. 습관처럼 챙겨입은 얇은 겉옷을 벗고 반팔 차림을 해도 좋을 날씨였다. 미아동 골목에는 많은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다. 가끔 지나쳐가는 어르신들이 전부다. 간단히 한 그릇의 식사를 마치고 여유롭게 걸을 요량으로 지도를 보지 않고 왔던 길을 거슬러 올랐다. 아직 동네 골목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길을 잘못 들어 예상치 못한 골목을 걸었다. 그러다가 단호한 안내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봤을 때는 굵은 글씨로 된 '제발! 제발!'과 '강아지똥'이 가장 먼저 읽혔다. 누군가 강아지를 산책시키다가 이곳에서 단골처럼 실례를 하는 모양이군, 하며 가까이 지나쳐가다 얇은 매직으로 된 글씨가 보였다. CCTV를 분석한 결과 범인(아니 범묘)는 길냥이었다는 정보 공유를. 머쓱하게 슬쩍 안내문을 치워도 괜찮을 만도 한데 굳이 안내문 위에 글씨로 그 머쓱함을 표현한 주인장이 귀여워 실소를 터뜨렸다. 아니 어쩌면 앞으로도 발생할지 모르는 강아지의 실례를 방지하기 위한 안내 유지일까. 생각보다 치밀한 사람일지도 모르겠군. 행인을 좀처럼 보기 어려운 미아동 골목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나름대로 부대껴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괜한 안도감에 귀엽고도 치밀한 안내문의 사진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