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정말 세차를 해야만 한다. 며칠 전의 비 소식 때문에 미뤄왔던 세차가 싱겁게 끝나버린 봄비 때문에 다시 과제가 되어버렸다. 나는 정말이지 세차 같은 일에 서툴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해버릴 수 있지만 그만큼 미루기도 쉬운 일.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막상 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일들. 전보다는 그런 종류의 일들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노력하지만 아직 잘 되진 않는다.
올해는 아이폰의 미리 알림 앱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해야만 하는 일들의 범주를 나눠 하나 하나 적어 기한을 정해둔다. 일을 마치면 체크. 체크하면 부드러운 모션으로 사라지는 할일을 보면 조금의 뿌듯함이라도 느껴지지 않을까, 덜 미루고 잊어먹지 않을까 했다.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다. 세차를 미루고 있는 것을 빼곤. 이번 주 주말까지 해야만 하는 일의 목록에 세차를 추가해야겠다.
눈 내리는 지상으로부터 동굴을 지나 끝이 보이지 않는 지하로 내려간다. 보이는 빛이라곤 안전모에 달린 작은 랜턴뿐이다. 감독 오다 카오리는 그 빛과 광부들에게 의지해 카메라를 들고 그들을 따라간다. 긴 테이크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별다른 말도 없다. 관객인 나도 빛에 겨우 의지해 영화를 쫓을 뿐이다.
영화 '아라가네'의 겉을 두르고 있는 이야기는 위의 한 문단이 전부다. 이야기랄 것도 없다. 이미지와 광부들의 노동, 루틴만 있을 뿐이다. 아라가네에서 카메라는 벽에 붙은 파리가 아니다. 분명 카메라를 든 자가 느껴진다. 광부들을 충실히 따라가고 비추고 싶은 것을 비춘다. 하지만 그 카메라가 무엇을 비추고 싶은 건지, 영화의 텍스트를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습관처럼 텍스트를 읽어내려고 노력하다가 이내 포기하고 들이치는 지하의 이미지를 받아들이며 나와 엮어본다.
지하라는 공간과 영화(중에서도 시네마)는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많다. 빛에 의지해 동떨어진 세계와 연결되어 소리를 느끼고 곧 끝이나 지상(영화관 밖)으로 나오고. 깊은 어둠 속에서 노동을 마치고 나면 오히려 지상이 생경할 법도 한 광부들의 삶이지만 영화와 영화 바깥의 삶을 치환해 대입해 보면 오만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는 건 어렵지 않다. 지하 또한 광부들에겐 영화 바깥의 삶이다. 다시 지하로 내려가는 광부들의 모습으로 영화가 끝이 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금주의 음악 앨범
이상한 말 하지 말아요
by 모호
트랙리스트
1. 이상한 말 하지 말아요
2. 도롱뇽
3. 아무래도 좋아요
4. NosTalGia
5. 빠지다
6. 우산이 없네
7. 방법이 없네
8. 보낸다
9. 있나요?
10. 어디에
앨범 이상한 말 하지 말아요
아티스트 어느새
발매 2013
길이 35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항상 이 앨범에 빠져있다.
청춘을 표제로 한 앨범을 좋아하지 않았다. 청춘이라는 단어에 대한 반항심인 건지, 아니면 청춘 하면 으레 떠오르는 이미지가 싫은 건지. 낭만 못지않게 청춘은 내 입에 쉽게 올릴 수 없는 금기의 단어 중 하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냥 심술이 나 있는 것 같다. 낭만과 청춘은 죄가 없다. 오히려 나는 그것들의 추종자에 가깝다. 다만 이 단어들로 쉽게 뭉개지는 한 꺼풀씩의 서사와 감정들이 안타까웠을 뿐이다.
어느새의 1집 앨범 '이상한 말 하지 말아요'는 그런 면에서 이야기집에 가깝다. 친숙하고 친절한 멜로디 위에서 아기자기하지만, 너무도 커다란 푸념 같은 이야기들이 얼기설기 이어진다. 장르의 일관성이 높지 않은 트랙들은 그 사이가 아주 먼 것처럼 들리다가도 트랙 명을 잇고 가사를 따라가다 보면 왜 이 곡들이 한 앨범으로 묶여 하나의 이야기집이 되어야 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결국은 청춘에 관한 이야기다. 청춘의 시기에 할 수 있던 생각들과 청춘의 시기이기에 할 수 없었던 일들. 반항, 자기 성찰, 사랑, 푸념, 후회들로 넓게 흩뿌려져 있는 제멋대로인 트랙들의 사이를 메우는 방법은 듣는 나에게 있다.
베스트 트랙은 3번 '아무래도 좋아요'와 5번 트랙 '빠지다'. 그리고 이 앨범을 가장 빨리 이해할 수 있는 트랙은 4번 트랙 'NosTalGia'라고 믿는다. NosTalGia의 가사 전문을 아래에 첨부한다. 어느새의 음악과 함께 오랜만에 704번 버스를 타고 연못가에 들르는 한주의 마무리가 되길.
길을 걷다가 문득 옛생각이 나 704번 버스 타고 난 그곳으로 가 오랜만에 들린 그 연못가에서 내 기억 속에 잠들어있던 그때 나를 보았네 이젠 버릴 것은 버릴 때도 됐다는 너의 그 말에 난 그냥 앉아서 한참을 울었어
그땐 너무 어렸다고 그땐 몰랐었다고 혼자 되뇌어보고 또 위로해보지만 지금은 무얼 알고 또 무얼 잃어버린 걸까 라는 허튼 생각에 스쳐 지난 기억에서 너를 보내고
너를 보내고 난 돌아가네 너를 보내고 난 돌아가
-NosTalGia의 가사 전문
금주의 사진
조선팝
by 모순
사라진 왕조를 향한 향수와 미련이 우리나라는 짙다. 전통적인 것은 쉽사리 조선적인 것으로 표현된다. 2년 전 전주를 배회할 때 우연히 마주친 무대와 행사명이 눈길을 잡았고 잠시동안 공연을 즐겼다. ‘조선팝’이라. 흐릿한 기억 속 그날의 것을 퍼올리자면 공연은 국악과 대중가요를 접목시킨 어떤 것이었다. 500년 뒤 국악의 정의가 케이팝으로 바뀔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국악은 대체로 조선시대 음악을 뜻한다. 그러니 행사명은 꽤나 정직했던 것 같다.
2년 전과는 다른 이유로 전주에 와있다. 사사로움 하나 없는 이번 여행에서 나는 서울의 더듬이에서 벗어날 수 없고 외려 그 가닥을 적극적으로 붙들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나에 대해 조금은 더 발견하게 됐는데 마냥 유쾌한 일은 아니다. 검색한 결과 올해는 ‘조선팝’ 공연이 없으니 이어폰을 꽂고 모호가 소개한 음악을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