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말의 곳간을 야금야금 일상이 갉아먹었다. 말이 떠나간 호젓한 공백에는 해야할 일이 차곡차곡 자리잡았다. 교토국제사진전에 가고 싶다. 그곳에 가면 말들이 떠오를 것만 같다. 한 가득 노트에 담아 무겁게 귀국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알지도 못했고 가본 적 없는 다른 나라 축제에 왜 이리 속수무책 끌리는 걸까. 무언가 있을 것만 같다. 또다시 나와 연결된 맥락이 지워진 곳으로 도망치고 싶은 야비한 욕망일지도 모른다. 허영도 한몫한다. 전시는 다음 주면 시작된다. 한 달간 열린다. 날씨는 윤기가 흐를 것이다. 새로울 것 없는 중고 같은 나날이 오늘도 방을 채운다. 나는 그곳에 앉아 모니터에 볼따귀를 붙인 채 녹고 있다.
by 모순
1. 금주의 다큐멘터리
<뉴요커, 100년의 이야기> by 모순
2. 금주의 음악 앨범
<Bodily Functions>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개막> by 모호
금주의 다큐멘터리
뉴요커, 100년의 이야기
by 모순
제목 뉴요커, 100년의 이야기
감독 마샬 커리
공개 2025
길이 1시간 36분
관람 넷플릭스
잡지를 좋아한다. 너무 진지하지도 너무 얄팍하지 않은 어딘가에 잡지가 있다. 책은 혼자 쓰지만 혼자 만드는 잡지는 없다. 심지어 잡지에는 이 종이 뭉텅이가 시각적으로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만 고민하는 사람도 있다. 무엇보다 연재를 기반으로 한다. 사유의 내장까지 적어내는 원기옥 같은 글도 좋지만, 같은 호흡으로 계속 써서 노출되는 글도 좋다. 반복된 리듬으로 오랫동안 쌓이는 호흡에만 담기는 시대의 정취가 있다. 몇 권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읽은 적 없는 뉴요커가 넷플릭스에 보이길래 틀었다.
많은 인터뷰이가 등장한다. 편집장부터 시작해서 저마다 소재와 주제를 가진 다채로운 필진들. 할리우드 배우나 유명 코미디언도 인터뷰를 한다. 잡지스럽다. 느슨한 맥락도 움켜쥔다. 그들은 화이트 큐브라는 배경 없는 공간에서 말한다. 창간 역사는 당연히 담는다.
팩트체크 부서가 따로 있다. 기사 속 인물들이 마신 게 커피였는지 차였는지도 체크한다. 그들에게는 사명감이 있다. 공부 없는 생각의 위험성을 그들은 알고 있다. ‘내가 생각해보니 맞는 것 같다’는 무책임한 내용을 전국에 발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전국이다. 그 내용이 누군가를 다루고 있다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전국적 비난이 글에 등장하는 누군가에게 날라들어 꽂힐 수 있기 때문이다. 잡지 발행 전 최종 회의하는 시간도 있다. 단어들의 뉘앙스를 체크한다.
이 다큐멘터리의 역할은 한 가지가 아니다. 자체 아카이브이거나, 100호 판매부수 촉진을 위한 광고이거나, 할리배우 배우 인터뷰 콘텐츠가 온라인이 공개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홍보이거나 등등. 말그대로 잡(지)스럽다.
P.S. 본가 거실에서 큰 텔레비전으로 다시 보고 있었다. 엄마가 말했다. “뭔 그리 재미 없는 걸 보고 있니?”. 답했다. “나 이런 거 만드는데”. 엄마도 웃고 나도 웃고 개도 웃고 고양이도 웃었다. 화목한 날이었다.
금주의 음악 앨범
Bodily Functions
by 모호
트랙리스트
1. You're Unknown to Me
2. It's Only
3. Foreign Bodies
4. Suddenly
5. I Know
6. Leave Me Now
7. The Last Beat
8. You Saw It All
9. On Reflection
10. About This Time Each Day
앨범 Bodily Functions
아티스트 Herbert
발매 2001
길이 52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한때 좋아했던 음악을 오랜만에 꺼내들었다.
7호선 남성역에 살 때에 일주일에 세 번씩은 들르던 동네 카페가 있다. 꽤 넓은 공간의 카페는 하나의 인테리어 컨셉 없이 한쪽은 모던, 한쪽은 우드톤으로 나뉘어져 독특한 구조로 공간 분리되어 있었다. 마음 붙일 카페를 고르는 기준 중 1순위가 공간 분리인 나로서는 안성맞춤인 카페였는데, 기분이 조금 나은 날에는 입구 쪽에 더 가까운 모던한 공간에, 조용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날에는 깊숙한 곳의 나무 의자에 자리를 잡곤 했다. 반나절을 죽치고 앉아 하릴 없이 음악을 듣거나 글을 쓰고 멍 때리는 것이 루틴이었다.
하루는 평소처럼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 집에 가야겠다 하고 나서던 참이었다. 목줄도 목걸이도 없는 작은 강아지가 카페 앞에 앉아있었다. 길을 잃은 건가 싶어 강아지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꽤 큰 차로 앞이라 강아지가 혹시라도 차로로 뛰어들진 않을까 강아지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강아지는 짖지도 않고 사람들을 신경쓰지도 않고 여유롭게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나만 괜히 강아지를 안아줘야할까 안절부절했다. 한번도 강아지를 덥석 안아본 적 없던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30분 넘게 강아지 옆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제 어딘가로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강아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카페 근처의 중국집으로 쏙 들어갔다. 중국집 사장님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산책을 마치고 온 강아지를 반겨줬다. 한참을 중국집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날 강아지 옆에서 보낸 시간이 이상하게도 내가 그 카페에서 보낸 모든 시간들의 대표 스틸컷처럼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내가 헛것을 본 건가, 혹은 기억을 만들어낸 건가 싶기도 하다. 그후로 카페에 갈 때마다 중국집을 기웃거렸지만 다시는 그 강아지를 볼 수 없었다는 사실도, 하얗고 꼬질하게 생긴 강아지를 보면 내가 저 강아지를 덥석 안을 수 있을까 하는 괜한 불안감이 드는 것도 그 의심에 일조한다. 그리고 그 뒤로는 Bodily Functions가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지도에 카페를 검색했다. 사라진 모양이다. 카페가 있던 위치를 로드맵으로 아무리 돌아다녀도 카페를 찾을 수가 없다. 그때 강아지를 안아줬어야 했나.
금주의 사진
개막
by 모호
새 시즌이 시작됐다. 한동안 끊었던 야구를 작년부터 다시 손 대면서 한해의 시간 단위가 하나 추가 되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월요일을 빼고 달려나가는 일정. 일상에 평행하게 지속적인 이벤트가 진행되면서 종종 일상에 끼어든다.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참 많은 스포츠지만 그만큼 좋아할 이유도 참 많다.
중학생 이래로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야구를 말할 것이다. 그 어느 스포츠보다도 통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지만, 통계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는 스포츠. 뭔가가 뭔가 자꾸 맘에 걸려서 일상을 조금 내어주는 스포츠를 한동안 잊고 있었다. 모든 경기를 이길 수는 없으니까, 점수를 하나도 주지 않을 수 없으니까. 어제 잘하지 못했더라도, 전 타석에서 잘하지 못했더라도 경기와 타순은 도니까. 통계상으론 정말 희박한 일이 언제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어렸을 때 야구를 좋아할 때는 매순간 마지막인 것처럼 달리는 선수들이 좋았는데 이제는 마냥 그렇지만도 않다. 왜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는지 이제야 조금 이해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