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없이 3월이 갔다. 지난 주는 모호순의 휴재가 있었다. 60호 특집 휴재라니. 들이치는 작업과 일에 겨우 뇌를 분할해 사용하느라 글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하면 변명이다).
지난 달 중순 즈음 2달 정도 참여했던 시 창작 워크숍이 끝이 났다. 워크숍의 마지막 시간에는 수업 시간 전에 수강생들과 선생님이 잠깐 모여 커피를 마셨다. 요즘 상영하는 영화 이야기, 시인들의 사적인 이야기, 요즘 하는 운동 이야기 같은 크고 작은 주제들이 커피와 도너츠와 함께 흐르다 대뜸 시로 그 이야기가 옮겨왔다. 계속 쓰셨으면 좋겠다고, 모두들. 결국은 쓰는 것이 중요하니, 계속 쓰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니. 그 말을 하는 선생님과 그 이야기를 듣는 수강생들의 표정이 어쩐지 결연해서, 그리고 나도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만 같아서 자꾸만 그 장면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by 모호
1. 금주의 다큐멘터리
<멜팅 아이스크림> by 모호
2. 금주의 음악 앨범
<Around the Fru>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탄다> by 모순
금주의 다큐멘터리
멜팅 아이스크림
by 모호
제목 멜팅 아이스크림
감독 홍진훤
개봉 2021
길이 1시간 10분
관람 극장
관리되지 않은 필름은 영원하지 않다. 질료가 중력에 따라 아래로 흘러내린다. 위의 사진은 아래로 흘러 투명하게 사라지고 이미지는 아래에 고인다. 녹아 내리는 아이스크림처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창고에서 발견된 필름 뭉치도 그렇다. 수해로 인해 보관을 위해 넣어둔 비닐 케이스와 달라붙고 흘러내린 필름을 복원해보려는 이들이 있다.
필름을 복원하는 일은 쉽지 않다. 복원을 위한 작업이 오히려 사진을 지워낼수도 있다. '멜팅 아이스크림'은 필름 복원과 8~90년대 민주화운동, 그리고 노동자 투쟁을 자꾸만 겹쳐본다. 민주화운동의 가운데에서 사진을 찍던 이들, 삼삼오오 모여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혹은 무엇을 해야만 할까를 고민하던 이들. 군사독재가 끝이 나고 '민주주의'를 얻어내지만 '운동'은 끝이 나질 않는다. 이제는 복원할 수 없어진 필름들에 남은 운동의 현장처럼 인터뷰이들은 그들의 구호의 속이 비어있었다고 끝내 고백한다.
비어있는 필름면을 또 다른 '운동'과 '투쟁'이 자리를 채운다.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된 노동 투쟁 현장이, 그러니까 끌려나고 두들겨 맞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몽타주가 인터뷰에 이어진다. 하지만 이 IMF 이후 2000년대의 영상 이미지 또한 열화되고 사라진 필름 이미지와 형태가 비슷하게 보인다. 찢어지는 사운드와 저화질의 비디오 이미지는 필름의 유실, 그러니까 공허함과 실패의 과거와 평행하게 놓여진다.
'멜팅 아이스크림'은 마지막 장면에서 서울처럼 보이는 어느 대로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느리게 비춘다. 그리고 그 위로 투쟁의 사운드가 흐른다. 공허해지고 다시 싸우고 다시 공허해지고. 그간 서울을 걸으며 지나친 수많은 투쟁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 지나갔다. 내가 서 있던 투쟁도, 그리고 나조차도 공허하게 유실시킨 투쟁들. 그 위로 지금도 새로운 투쟁이 채워지고 있다. 슬로모션 이미지 위로 카운트 다운이 10부터 시작되었다.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서울아트시네마를 나섰다. 바깥이 생경했다.
금주의 음악 앨범
Around the Fur
by 모호
트랙리스트
1. My Own Summer (Shove It)
2. Lhabia
3. Mascara
4. Around the Fur
5. Rickets
6. Be Quiet and Drive (Far Away)
7. Lotion
8. Dai the Flu
9. Headup
10. MX
앨범 Around the Fur
아티스트 Deftones
발매 1997
길이 74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미리 여름 음악을 꺼낸다.
벌써 벚꽃이 피었다. 작년보단 10일 넘게 빠르다고 하는 말을 주워들었다. 목련이 아직 지지도 않았는데 피어버린 벚꽃 덕분에 어제는 연세대학교에서 신촌역으로 걷는 길에 혼자 벚꽃 구경을 했다. 이번 주 내내 묘하게 흐린 날씨 때문일지, 아직 겉옷 꺼풀들을 벗어던지지 못한 나 자신 때문일지 꽃을 봐도 봄 기분이 나진 않았다. 봄 노래를 들어야겠다, 봄이 오면 습관처럼 고르던 앨범을 꺼내야겠다. 기분 좋게 봄 옷을 고르는 마음으로 보관함을 뒤졌지만 내가 평소에 듣던 봄 앨범이 무엇이었는지, 이렇다 할 시원스런 결정이 나질 않았다.
그럼 여름 음악을 들어야겠다. 글을 쓰려고 앉은 지금은 떠오르는 봄 앨범들을 그 거리에서는 떠올리지 못하고 결국 때 아닌 여름 음악을 듣는데에 열중했다. 가장 먼저 고른 여름 앨범 Deftones의 Around the Fur이다. 지난 모호순 글을 떠올려보면 계절에 맞는 앨범을 고르기, 그리고 때맞추지 못하고 미리 꺼내듣는 앨범들을 소개한 경우가 많다. 여름의 사이키델릭과 펑크, 겨울의 일렉트로닉, 봄의 모던락과 가을의 슬로우코어. 나만의 공식 같던 계절 앨범 선정에 맞았던 적도, 그렇지 않았던 적도 있다. 끝없는 자기 부정의 리스너. 나는 이 포지션으로 음악을 즐길 때 가장 행복하다.
벚꽃을 보며 듣는 My Own Summer도 꽤 나쁘지 않다. 올해 여름은 그래도 애플 뮤직에Deftones의 모든 앨범이 업로드 되어있을 것이다. 굳이 유튜브나 스포티파이를 기웃거려도 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풍족해졌다. 여름 록 예습으로 미리 여름을 대비하는 한 주가 되시길.
금주의 사진
탄다
by 모순
하루하루가 타고 있다. 한 달 째 운전하고 있는 기분이다. 가만히 앉아서 앞만 보고 페달만 밟으면 되는데, 그 간단한 일을 4시간 쉬지 않고 하면 진이 빠진다. 요즘 일상이 그렇다. 잠시도 고개를 돌려 정신을 풀어놓을 수 없다. 일상은 자율주행도 없고 그래선 안된다. 새로운 여백을 언제 올까. 타버린 곳에 다시 무언가를 심는 일. 화전농업...4월이다. 미안하지만 5월에게 좀 더 힘을 꿔다 쓰고 여름에 갚아야 겠다. 여름과 가을 사이 좁다란 여백의 길이 떠오를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