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사는 친구가 키우기 시작한 바질이 자라고 있다. 다소 쌀쌀했던 3월 날씨에 식물들이 늦게 싹을 틔우는 바람에 친구는 하루가 멀다 하고 화분들을 내어둔 거실 창 난간을 들락거렸다. 물을 너무 많이 준 건 아닌지, 씨앗이 틔워 보지도 못하고 다 죽어버린 건 아닌지. 나는 친구의 과잉보호로 한껏 축축해진 흙을 만져 보며 너무 많은 관심은 식물에게 독이라고 겁을 주곤 했다.
봄꽃이 필 즈음이었을까, 집에 돌아가자 친구가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바질에 싹이 났다고 했다. 정말이었다. 아주 작지만 선명한 녹색의 싹이 흙을 뚫고 올라와 있었다. 바질은 강한 햇빛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대신 충분한 물과 햇빛만 있다면 꿋꿋하게 잘 자라난다고 한다. 우리 집에서 가장 해가 잘 드는 곳에서 하루를 보내니, 그리고 친구의 과잉보호로 물을 듬뿍 마시고 있으니 우리 집 바질은 아주 잘 자랄 것이다.
이번 주에 볼 다큐멘터리를 고르기 위해 dafilm을 둘러보다가 반가운 영화를 발견했다. 언젠가 영화제에서 상영된 소식을 듣고 꼭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영화 '앙헬 69'가 업로드 되어 있었다. 트레일러와 글로만 접한 다큐멘터리를 즐거운 마음으로 관람했다.
감독 테오 몬토야는 본래 극영화를 만들려 했다. 그가 살아온 도시, 콜롬비아 메데인을 배경으로 유령과 사람이 섞여있는 디스토피아 공포영화를 만들기 위해 전문배우가 아닌 퀴어들을 캐스팅했다. 하지만 영화는 만들어지지 못했다. 영화의 주인공이 될 예정이었던 카밀로 나자르라는 젊은 남자가 헤로인 과다투여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만들어지지 못한 극영화는 도시에서의 '유령'적 존재로서의 퀴어에 대한 다른 형태의 영화가 됐다. 픽션과 논픽션, 젠더, 도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트랜스 시네마로 일컬어지는 영화. 죽음이 만연한 콜롬비아의 도시 메데인에서 논픽션으로 예상되는 젊은 이들의 모습과 그들에 대한 픽션적 애도가 교차된다. 언젠가 모호순에서 영화계 트랜스젠더들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디스클로저'의 연장과 변형에 이 영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픽션으로 고정되어 이야기로 남는 것도 실체가 있는 자들의 것.
금주의 음악 앨범
Super model
by 모호
트랙리스트
1. クルクル ミラクル
2. やる気センセーション
3. レインボー・ララ・ルー
4. 忘れちゃうモン (アクロバットMix)
5. チャタレイ夫人にあこがれて
6. スーパーモデル
7. 篠原ともえのクレクレタコラ
8. I Love You, De Ja Vu
9. メルヘン節
10. よのさ
11. チャイム
12. クルクル ミラクル (Reprise)
앨범 Super model
아티스트 Tomoe Shinohara
발매 1996
길이 60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운전 음악으로 시노하라 토모에의 Super model을 골랐다.
작업과 일 때문에 서울을 쉽게 떠날 수 없던 3월을 보내고 4월에는 정읍에서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며 겸사겸사 촬영을 하려했다. 일과 약속이 겹쳐지는 바람에 예정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이번 주, 카메라 장비들을 챙겨 서울을 떠났다. 3박 4일 간의 일정으로 하루는 부모님이 계시는 대전, 나머지 이틀은 정읍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화요일 아침, 조금 부지런을 떨어 간단히 아침을 챙겨먹고 차를 운전해 대전으로 향했다. 출근 시간을 피하기 위해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출발했지만 교통체증은 여전했다. 강변북로를 타고 서울을 더디게 가로지르며 편의점에서 산 맛없는 커피를 홀짝거렸다. 간만에 서울을 떠나는데 이처럼 신이 나지 않다니. 막히는 도로 때문인지, 혹은 몸은 서울을 떠나면서도 마음은 서울에 들러붙어 있기 때문일지. 복잡한 마음처럼 가다 서다 하는 앞차의 꽁무니를 뒤쫒다 신나는 음악이나 들으며 내려가기로 마음 먹었다.
애플뮤직을 실행하자 얼마 전 알게 된 시노하라 토모에의 슈퍼모델 앨범 재킷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주 신나는 음악이었던 것 같은데, 누가 봐도 아주 신나야만 할 것 같은 재킷 사진인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앨범을 재생했다. 이전에 재생되고 있던 구슬픈 Team Sleep의 음악 툭 끊기고 1번 트랙이 시작됐다. 알아듣기 쉽지 않은 일본어와 90년대 테크노 댄스 음악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구 달려나갔다. 음량이 꽤 커서 더운 날씨 때문에 열어뒀던 창문을 급히 닫았다. 요즘의 나였다면 조금 피곤해 했을만한 음악이지만 오히려 잘됐다 싶은 마음으로 신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전으로 향하는 운전길 중 서울에서의 시간을 이 앨범과 같이 보냈다. 한 시간 동안의 앨범이 끝나고도 애플뮤직이 이 앨범과 비슷하다고 추천하며 자동재생하는 음악까지 계속 듣고 있었다. 대전 톨게이트를 통과할 무렵, 이제 서울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박 4일 간의 여정이 꽤나 괜찮을 것만 같았다.
금주의 사진
웃음
by 모순
강아지가 웃고 있다. 아니, 내가 그렇게 보고 있을 뿐이다. 정말로 강아지가 인간처럼 입꼬리를 올려 웃음이라는 형태로 감정을 표현하는지는 오직 강아지만이 알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멋대로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 짓는 특성이자, 동시에 비극적 속성이다.
보잘 것 없는 사물에도 의미를 붓고, 그것을 신주처럼 모시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잃어버리면, 귀금속을 잃은 것보다 더 크게 상심한다. 그 물건만이 그 의미를 담고 있는 유일한 진품이기 때문이다. 집 구석구석, 틈 사이마다 버리지 못한 물건들이 꽂혀 있다. 도둑이 들어도 이것들의 가치를 알지 못할 테니 결국 훔쳐 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그것들을 버리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