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김산이 될 뻔했던 김성원이다. '이룰 성'에 '근본 원'자를 쓴다. 요새는 다 죽어가는 화분을 살려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집 앞 빵집에서 파는 바게트에 맛을 들여 거의 매일 점심으로 먹는다. 휴대전화 갤러리에는 의자 밖에 없고 내기를 싫어한다. 영화 '나쁜 피'와 '방랑자'를 좋아하지만 '보이후드'를 좋아한다고 거짓말하고 다닌다. 책 귀퉁이를 접어가며 읽기 좋아하고 에세이는 읽지 않는다. 지하철 소리가 싫어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달고 산다. 밴드 '오아시스'보다 '블러'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만큼 싫어하는 것이 많은데 비밀로 한다. 티가 나지 않아야 할 텐데.
[모순] 내일 한국을 떠나서 다신 돌아올 수 없다면 마지막으로 가고 싶은 음식점이 있는가?
[모호] 1초의 고민도 없이 백부장집 닭한마리를 고를 것이다. 백부장집은 2년 연속 올해의 음식점 (내 맘이다)에 선정된 최고의 맛집이다. 백부장집에 들어서면 자리에 앉아 따로 주문할 필요가 없다. 앉아있으면 은색 냄비를 화구에 올려주신다. 소주를 시킨다. 닭한마리가 완성되는 동안 물김치에 (물건이다) 소주를 한잔 하면 된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직원 분께서 손수 냄비 뚜껑을 열어주신다. 맑은 스타일의 닭한마리다. 떡부터 먹는다. 앞접시에 내어주신 소스에 푹 담가 먹는다. 소스는 겨자향이 강하다. 이제 들어있는 파와 함께 잘 익은 닭을 먹으면 된다. 닭을 어느 정도 먹고 나면 '무조건' 국수를 주문한다. 진하게 쫄아들은 닭육수에 국수, 물김치를 곁들이면 소주 두 병은 금방이다. 자기소개보다 닭한마리 소개가 더 길다. 아무래도 한국을 못 떠나겠다.
[모순] 인간관계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모호]침묵과 눈 맞춤이다. 단둘이 있을 때 침묵을 잘 견디지 못하는 편이다. 어색해지면 아무 말이나 늘어놓고 자기 전에 후회한다. 반대로 여럿이 있을 땐 쉽게 입을 열 질 못한다. 덤으로 눈을 잘 맞추지도 못한다. 특히 조금이라도 마음이 담긴 대화를 할 때면 책상 모서리를 보는 습관이 있다. 침묵에 유연해지고 눈을 잘 맞추기. 매년 나의 신년 목표다.
1. 금주의 다큐멘터리
하라 카즈오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 by 모호
2. 금주의 음악 앨범
Kraftwerk <Computer World>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오르골> by 모순
금주의 다큐멘터리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
by 모호
제목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
감독 하라 카즈오
연도 1987
길이 122분
관람 DVD
오카자키 켄조라는 군인이 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뉴기니 전선에 고립되어 죽을 고비를 넘겼다. 오카자키 켄조라는 아나키스트가 있다. 그는 천황에게 욕설을 내뱉고 새총으로 빠징코 구술을 발사하기도 한다. 이제는 볼이 움푹 파이고 주름진 그는 셔츠를 갖춰 입고 뉴기니에 있던 이들을 찾아다닌다. 아직 눈에 생생한 그때의 기억과 책임에 대해 추궁하기 위해.
오카자키 켄조가 복무했던 뉴기니 전선에선 두 명의 일본군 병사가 탈영의 죄목으로 총살당했다. 그는 둘의 죽음을 파헤친다. 옛 동료와 상관을 찾아가 집요하게 묻고 때로는 호통을 친다. 카메라는 묵묵히 그의 곁을 지키며 위협으로부터 그를 보호하기도 한다.
식인 사건이었다. 굶주림에 시달렸던 병사들은 낮은 계급의 두 병사를 탈영범으로 몰아 살해하고 배를 채웠다. 오카자키 켄조는 사건의 실체를 밝히고 상관을 찾아가 총을 겨누었다는 텍스트를 마지막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일본군을 악마화하는데에 그치고 싶지 않다. 2차 세계대전과 카니발리즘이라는 표제 혹은 소재는 사건의 중심이 되지만 나에게 먼저 다가온 건 사실과 진실에 대한 추궁,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카메라였다. 오카자키 켄조를 비추는 카메라가 부재했다면. 그 카메라 뒤에 사람이 부재했다면. 카메라는 기록의 매체다. 초당 24장의 사진으로 무빙 이미지를 기록한다.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는 단순히 기록 영화인가. 협동의 영화라고 믿는다. 켄조가 얻어낸 증언으로써 조합해 낸 사실들에 카메라와 편집은 힘을 싣는다. 둘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비로소 사실들은 진실로 건너갈 수 있었다.
카메라 앞에는 사람이 있다. 카메라 뒤에는 사람이 있다. 영화 앞에는 사람이 있다. 영화 뒤에는 사람이 있다. 당연한 명제처럼 보이는 이 문장들의 조합이 이루어질 때 다큐멘터리 영화는 진실성을 얻는다.
금주의 음악 앨범
미니멀리즘에 대한 예찬
by 모호
트랙리스트
1. Computer World 2. Pocket Calculator 3. Number 4. Computer World 2 5. Computer Love
6. Home Computer
7. It's More Fun to Compute
앨범 Computer World
아티스트 Kraftwerk
발매 1981
길이 35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뒤통수가 튀어나와 있던 컴퓨터를 종종 떠올린다. 삼촌은 그 컴퓨터로 스타크래프트를 했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옆에 앉아 구경했다. 어쩐지 컴퓨터는 나에게 그런 존재로서의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다. 우주적이면서도 금속성의. Kraftwerk의 Computer World는 나의 컴퓨터 이미지를 완벽히 구현해내고 있는 앨범이다.
강렬한 이미지의 유통기한은 아주 길다. 아무도 없던 해 질 녘 놀이방 복도에서부터 엊그제 본 합정의 어느 간판까지. 너무 많은 이미지들이 여과되지 않고 머리에 남아 세계를 만든다. 어젯밤 꿈에선 얼마 전 학교에서 봤던 하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가끔 그 세계에 아주 적합한 음악을 만난다. '음악이 좋다'는 감상을 미분해 보자. 이들이 음악으로 구현하는 공간과 재질이 좋다, 또는 그 속을 채우는 서사 혹은 스토리가 좋다. 나의 경우는 이 두 가지로 좁혀진다. 그중에서도 전자. 직관적인 감각으로 이미지의 세계에 대입해 인식했던 음악을 '좋다'고 기억하곤 한다.
어떤 감정이나 감각, 감상을 미분해 보는 훈련은 예민하고도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면 하나의 컷으로, 혹은 씬으로 남았어야 할 이미지가 시퀀스가 된다. 해 질 녘 놀이방 복도의 이미지를 미분해보자. 할머니댁 근처, 놀이방에서 아이들과 섞이지 못해 선생님이 나를 분리시켰던 것 같다. 나는 심술이 나서 분무기로 물을 뿌리고 놀았다. 기억이 끊기고 다시 복도. 불이 전부 꺼져있고 복도 끝에서 어스름한 빛이 들이쳤다. 집에 무사히 갔던가. 누군가 데리러 왔던가. 아직 이 시퀀스에 맞는 음악은 찾지 못했다. 유통기한을 늘이고 싶은데. Computer Love를 흥얼거리며, 저그의 두근거리는 완성되지 않은 해처리를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의 모든 멍을 모아 뭉쳐 놓으면 이런 색일까. 지중해 바다빛은 숨 막혔다. 작은 배로 가로지르면서 속으로 ‘감히’를 되내었다. 몰타의 수도 발레타 거리 풍경은 구름 마음이었다. 구름은 태양을 극진히 호위했다. 구름이 어깨를 내어주면 거리 바닥은 볕으로 구석구석 바삭해졌고 아니면 금새 식었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구름도 퇴위했다. 풍경이 차갑다. 이때다. 젤라또를 사먹었다. 커피와 코코넛 맛 콘에 넣어서. 벤치에 앉았다. 현악기 튜닝 소리가 들렸다. 청년이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다. 흔한 풍경. 젤라또를 다 먹어간다. 종이홀더를 대보자. 청년은 오르골이 됐다. 오르골의 멜로디는 아름답다. 그런데 떠올리면 왜 아린 풍경이 맺힐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거리등이 켜졌다. 다시 걸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