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살면서 가장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 중 하나다. 나를 언어화하여 소개할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를 확신하고 자아가 단단하다면 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지 않을 것이다. 혹여 그렇다 하더라도 나의 어휘 풍경은 남루하고 소루해서 문장으로 엮을 깜냥이 안된다. 그건 어쩌면 시인의 일일지도 모른다. 치사하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굴튀김 이론을 빌리고자 한다.

나는 아직 집에서 굴튀김을 만들어 본 적 없지만 좋아하는 음식이니까 한번쯤 시도할 법한 요리다. ‘제대로 버전’과 ‘대충 버전’이 있을 것 같은데 ‘제대로 버전’으로 상정해보겠다. 우선 좋은 굴을 사야한다는 이유로 수산시장으로 떠난다. 혼자 다니길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 여정에는 말동무가 있으면 좋겠다. 친구 녀석 하나를 데리고 간다. 물컹물컹 즐비한 해산물, 울룩불룩 개별성 넘치는 사장님들, 한 발자국마다 오감이 즐겁다. 역시 굴만 사진 않을 것 같다.

물고기 쇼핑을 마치고 나온다. 비린내의 영역을 벗어나기 전에 단출한 식당을 찾아 모락모락 밥을 먹는다. 이제 레시피가 중요하다. 유튜브는 책임지지 않는 콘텐츠이므로 서점으로 향한다. 요리 코너로 가서 굴튀김 레시피를 찾아본다. 튀김은 조리법이니까 아마도 소스에 대한 기개넘치는 묘사가 레시피북을 고르는 기준이 될 것 같다. 요리는 시작도 못했는데 지면이 꽉찼다. 아쉽지만 굴튀김 소개를 가장한 자기소개는 여기까지다.

[모호] 모호순을 5호째 내고 있는데, 감상은 어떤지?

[모순] 우선 매주 오픈해서 읽어주시는 구독자 분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더불어 시간내어 작성해주시는 피드백을 읽으면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다. 그러면서 구독자 1000명을 꿈꾼다. 그때는 이런저런 콘텐츠를 시도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명한 감독님을 특호 객원 필진으로 모신다거나 인터뷰를 해본다거나 아이디어는 넘친다. 몽상은 우리의 직업이다. 개인적으로 모호의 글을 읽는 것도 큰 재미다. 그와는 실제로 만나지만 타인을 온전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 본성과 개성이 뿜어져 나온다고 믿는데 우주와 진화의 역사가 새롭게 쓰여지지 않는 한 우린 서로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모순] 을지로에 관한 작업을 하면서 도시의 물질적 특징을 알게됐다. 크레인이다. 레이캬비크에 와서 처음으로 카메라를 든 것도 지붕위로 보이는 가로로 병렬된 크레인 3기를 찍기 위해서였다. 도시를 정의하는 지표들은 그곳에서 오감으로 지각할 수 없는 지식들이다. 8주간 이사피에르뒤르에서 머물면서 크레인을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이곳이 도시가 아님을 확신했다. 도시에는 항상 크레인이 있다.

진실한 음악은 귀신같이 티가 난다. 긴 공백을 두고 2022년에 발매됐던 곽푸른하늘의 Nearly (T)here은 그런 음악이었다. 2022년의 마지막에 나에게 필요했던.

나는 시를 쓰고 싶다. 시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세 문장 사이의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곽푸른하늘도 그랬을지 모르겠다. 첫 트랙에서 그는 고백한다. 언제나 시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하지만 역시 보여주는 것이 낫겠다고. 그러곤 30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내내 노래한다.

나는 내가 대체로 솔직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진실한 사람인가. 대학원 입시 논술 시험의 진실과 사실에 대한 문항을 지금도 가끔 떠올린다. 솔직함은 진실함일까. 솔직함은 사실의 배열일까 재조합일까. 혹은 진실과 사실의 교집합일까. 사실의 합은 진실이 되지 않는다고 적었던 것 같다.

2022년의 난 솔직하지도 못했고 진실하지도 못했다. 사실을 조합해 조각보를 만들어냈지만 그 색은 조화롭지 못했고 모양도 제멋대로였다. 퇴근 후 시를 써보려고 노트북을 폈다. 워드 창을 앞에 두고 한 글자도 적지 못했다. 술김에 부끄러운 문장 몇이라도 써봄직한데 단 한 글자도. 깜박거리는 커서를 보고 다른 생각을 했다. 이를테면 바닥에 늘어뜨려진 커튼에 먼지가 끼었네. 이번 주말에는 청소를 해야겠다. 

고백하자면 2025년의 나도 별다를 바 없다. 가끔 작업실에서 워드 창을 켜고 앉아 무엇이라도 적어볼라치면 입안이 마른다. 어제 본 화분을, 물방울을, 발가락을, 사람을 떠올리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질 않는다. 몇 개의 문장이 눈꺼풀에 머물렀다가 사라진다. 역시 보여주는 편이 나으려나.

6번 트랙 wanna be에는 'I just wanna be, right where I wanna be'라는 가사가 있다. 2022년의 조각보를 생각한다. 그것을 기워 이불을 만들어 몸을 누인다. 

나는 버려진 의자 사진을 수집한다. 길을 걷다가 의자를 마주치면 사진을 찍어두었다가 다섯 장씩 모아 SNS에 업로드한다. 의자 사진을 처음 찍기 시작한 건 작년 5월 경이다. 문에 대한 짧은 작업물을 촬영하던 도중 석관동에 버려진 의자 몇을 마주했다. 필연적으로 나를 따라다닌 싸구려 인조 가죽 의자를 떠올렸다.

2021년에 구입한 의자는 세 번의 이사 동안 나와 함께 했다. 등받이는 조금씩 찢어지기 시작했고 엉덩이가 닿는 부분은 내부 자재가 보인다. 나는 이번 석관동 이사에도 그 의자를 버릴 수 없다. 정이 들었다기보다 이제 의자가 하나의 인격체로서 방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를 닮아왔다고 믿었다. 나의 자세, 나의 고민, 나의.

의자는 사람을 닮았다. 사용자를 닮아 간다. 살을 부빈다. 그랬던 의자들이 거리에 버려진다. 대형 폐기물 번호를 달고, 혹은 그마저도 없이. 각자의 생애 주기를 마치고 저마다 사람과 닮아버린 채로 문밖에 나온 의자들. 운명적이면서도 슬픈 일이다. 의자의 말로를 마주하면 나는 사람을 떠올린다. 환대하지 않는 도시의 문 앞에 버려지는 이들이 외로워 보인다. 세상엔 사람만큼의 의자가 있을까, 의자만큼의 사람이 있을까. 오늘도 나는 의자를 마주쳤다.

글도 의자를, 그리고 사람을 닮았다. 말하고 쓰며 나는 나를, 사람을 확인한다. 살을 부빈다. 휴대전화 갤러리에 쌓여가는 의자들처럼 나는 써낸 글들을 수집하게 되었다. 블로그에서 모호순에 이르기까지. 나는 글을 버릴 수 없다. 나를 닮아왔다고 믿는다. 세상엔 사람만큼의 글이 있을까, 글만큼의 사람이 있을까. 나는 의자를 버릴 수 없다. 

나에겐 의자를 수집하는 기준이 있다. 4인의 덴마크 감독이 도그마 95를 발표하며 마지막에 수록한 서약을 차용해 만든 계명이다. 의자를 글로 치환하여 읽어주시길. ‘나’로 치환해 읽어주시길.

 

[ 도그마 24의 10가지 계명 ]

1. 의자 촬영은 반드시 발견한 곳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2. 주인이 명확하지 않은 의자여야 하며, 전시 목적이나 공익 목적으로 내어놓은 의자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판단이 어려울 시 촬영하지 않는다.
3. 의자를 임의로 움직이거나 연출하지 않는다.
4. 분해된 의자도 의자로 간주한다. 소파 역시 '안락의자'이기에 의자로 취급한다.
5. 촬영한 의자를 구조하지 않는다.
6. 의자를 발견하기 위한 별도의 촬영이나 산책을 하지 않는다.
7. 촬영한 의자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이 근처에 있을 경우 반드시 대화를 시도한다.
8. 의자를 찍는 카메라는 반드시 헨드헬드여야 한다.
9. 촬영은 디지털 컬러 혹은 흑백 필름이어야 한다. 특수 조명의 사용은 허용되지 않는다.
10. 의자를 만들거나 디자인한 사람, 브랜드의 이름을 크레딧에 올리면 안 된다. 단, 의자의 사용자는 허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