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1층 계단 앞에 며칠째 낙엽이 놓여있다.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휘청휘청 대는 겨울의 낙엽. 나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그것을 밟지 않도록 조심한다.
언젠가 지하철 스크린 도어 앞에 나비가 날아다녔다. 이 나비는 어떻게 지하철까지 오게 된 걸까. 위태롭게 바닥 가까이 날던 나비. 나는 그때 나비를 구해주지 못했다.
알 수 없는 장소에 알 수 없는 존재가 놓일 때가 있다. 우연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우연. 얼마 전에 본 물리학 유튜브에선 인과율에 대해 말했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다고. 결과 후에 원인이 따라올 수는 없는 일이라고. 나는 인과율에 대해 생각하며 낙엽과 나비를 떠올렸다. 낙엽과 나비가 들어오게 된, 머무르게 된 원인과 결과에 대하여. 낙엽과 나비가 나의 기억에 들어오게 된, 머무르게 된 원인과 결과에 대하여.
원인을 알지 못하는 결과가 많다. 원인을 가늠할 수 없는 결과가 많다. 인과율의 세계에서 살기에는 연약하다. 말하고 쓰는 것이 인과율의 세계에서 몸을 맞대어 살아갈 수 있게 한다고 믿는다.
오늘의 모호순도 독자님들의 인과율의 세계에 작은 원인이 되길. 그리고 결과가 되길.
by 모호
1. 금주의 다큐멘터리
임흥순 <비념> by 모호
2. 금주의 음악 앨범
Explosions In the Sky <The Earth Is Not a Cold Dead Place>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별것> by 모순
금주의 다큐멘터리
비념
by 모호
제목 비념
감독 임흥순
연도 2012
길이 93분
관람 티빙, 웨이브, 왓챠
비념은 제주의 4∙3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나는 4∙3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피하지는 않는다. 한국전쟁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잠정 중단 상태지만...) 하는 입장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다만 나는 모호순에서 영화를 경유해 국가 폭력에 대해 논하기 보다 좀 더 개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예술은 어떻게 국가폭력을 말해야 하는가. 다큐멘터리는 어떻게 국가 폭력에 대해 말해야 하는가.
나는 이미지의 폭력성에 대해 과한 윤리 의식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미지를 어떻게 편집하여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작년 암스테르담 워크숍에서 받았던 피드백이 아직도 선명하다. 폭력의 이미지를 보여줘야만 한다고. 사람들은 그것을 원하고 보고 싶어 하며 우리는 보여주어야만 한다고. 하지만 나는 한국전쟁 작업의 트레일러에서 단 하나의 폭력적 아카이브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어준 사람들에 대한 배반인 것만 같았다. 영화를 그들과 나란히 앉아 볼 때에. 다큐멘터리 영화의 첫 관객은 그들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제작자로서 가져야 할 윤리의식을 떠올리며. 어쩌면 나의 욕심일지도.
비념은 아카이브 이미지를 완전히 배제하진 않는다. 다만 제주의 이미지를 주력으로 한다. 바람에 날리는 비닐봉지, 빈 방에서 틀어져 있는 텔레비전, 클로즈업된 제주의 생물들과 넓은 샷의 제주의 풍경. 강정 마을에서의 해군 기지 건설 갈등 맥락이 들어오며 공동체에 대한 사유까지. 누군가는 회피이며 관조라고 말할지 모르는 사유의 이미지에서 나는 작업자의 윤리를 느꼈다. 어떤 이미지들을 어떻게 편집하여 어떻게 보여줘야만 할지. 어떻게 기억과 폭력의 유령을 이미지로서 재소환할 수 있는지.
위는 비념의 오프닝 시퀀스다. 제주 전통 굿 영감놀이로, 영감이라는 도깨비를 대접할 때 하는 굿놀이다. 도깨비로 인해 병을 앓게 되었을 때 연행 되곤 한다. 제주에는 아직 4∙3이라는 도깨비가, 그로 인한 병이 남았다. 예술은 어떻게 굿을 해야할까. 굿은 도깨비를 몰아낼 수 있으련지. 나는 그것을 아직 몰라, 알고 싶어 계속 다큐멘터리를 할지도 모른다.
금주의 음악 앨범
따스한 빙하
by 모호
트랙리스트
1. First Breath After Coma 2. The Only Moment We Were Alone 3. Six Days at the Bottom of the Ocean 4. Memorial 5. Your Hand in Mine
앨범 The Earth Is Not a Cold Dead Place
아티스트 Explosions In the Sky
발매 2003
길이 45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스물의 악취미는 멜론의 오래된 댓글을 읽는 것이었다. 지금도 아주 오래전 블로그를 관둔 사람들의 글을 몰래 읽곤 하지만. The Earth Is Not a Cold Dead Place에 달려있던 댓글을 기억한다. 빙하를 보며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에서 흘러나왔던 이 음악을 잊을 수 없다고. 나는 그 댓글을 보고 빙하가 보고 싶어졌다.
이집트와 북극에 가보고 싶다. 이집트는 아주 어렸을 때에 피라미드 사진을 보고, 북극은 이 음악에 달린 댓글을 보고 나서부터였다. 나는 언제 이집트와 북극에 가볼 수 있을까. 회사를 다닐 적에는 매달 50만 원씩 1년 적금을 넣었다. 일에서 의미를 찾기 어려웠던 난 쌓이는 돈에서 역시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늦게 퇴근해 혼자 소주 한 병을 먹고 집에 가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던 때, 적금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나는 그때 분명 의미 찾기에 미쳐있었다.
어디론가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디인지는 정하지 못했다. 이집트도 아니고 북극도 아니었다. 그곳에 갈 만큼 길게 휴가를 낼 순 없을테니. 적금이 끝나갈 즈음 회사를 그만뒀다. 적금이 끝나서도,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더 이상 의미를 찾는 데에 지쳐서였다. 퇴직금으로 카메라를 샀다. 적금으론 다큐멘터리 워크숍을 신청했다.
오랜만에 펼친 시집에 끼워두었던 책갈피에 있던 나무를 찾으러 가는 다큐멘터리를 워크숍에서 만들었다. 의미에 집착했던 말로였다. 결국 대관령 양떼목장에서 그 나무를 찾아냈지만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 기대했던 마음이 들지 않았다. 촬영을 마치고 안개가 자욱한 도로를 걸으며, 내 발만 찍으며 도착한 어느 가든에서 꿩만둣국과 소주를 마셨다. 또 소주라니.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숙소에 짐을 두고 다시 막걸리를 사러 나가는 길에는 해가 지고 있었다. 안갯속에 이미 사그라진 해와 뿌연 보랏빛 하늘. 영화의 마지막 씬이 된 그곳에서 나는 아무 음악도 떠올리지 못했다. 결국 나만 남았다는 내레이션을 썼다. 댓글을 단 '그'는 빙하를 마주하고 어떻게 이 앨범을 떠올린 거지. 댓글을 사라져버리고 나만 남았다.
다행히도 그날 이후로 의미 찾기를 멈췄다. 그리고 나는 아직 피라미드도, 빙하도 보지 못했다. 그때는 꼭 음악을 떠올려야겠다. 이제는 의미 찾기를 멈췄으니. 따스한 빙하를 먼저 보고 싶다.
[The Only Moment We Were Alone]
no lyrics
금주의 사진
별것
by 모순
이곳은 정말 동양인이 없다. 버스를 타고 인구 몇 백 뿐인 더 시골로 가면, 입으로 먼저 인사하고 뒤늦게 나를 본 두 눈이 흠칫한다. 그도 그럴 것이다. 강원도 무주(인구 2만 넘는다) 어느 리 단위의 작은 마을 수영장에 외국인이 등장하면 얼마나 반응이 격할지 상상만으로도 흥겹다. 여행하면서 이토록 완벽에 가까운 이방인이 된 적이 있던가.
곧 8주차에 접어든다. 걷다가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피자와 맥주를 사들고 집에서 같이 영화보는 친구도 생겼다. 영화 고르는데만 1시간 걸린다. 너무 몰입감을 요구 하지 않으면서도 흩날리지도 않는, 묵직한 경쾌함으로 안주 삼기 좋은 영화, 그 영화를 찾아야만 한다. 익숙한 장면이다. 그렇게 대체로 비슷하면서도 조금씩은 다른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사람 사는 거 별거 없다 라는 생각도 든다. 또 살다보면 그 별거가 참 중요한 순간이 있다. 서울에는 내가 두고 온 별것들이 많다. 돌아가면 절반은 치우려 한다. 그럼 조금씩 다시 쌓일 것이다. 그럼 또 떠나야하는 것인가. 반복. 내 삶을 차지하는 이런 저런 반복의 카테코리들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