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4년 전 졸업한 대학 근처에 갔다. 학교에 일이 있어 간 건 아니었고 근처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였다. 주말 낮에 그곳에 간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처럼 넓다란 사거리에는 젊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들과 완전히 바뀌어버린 건물과 가게, 노점상 없이 깔끔해져버린 거리. 스무 살 때 아르바이트 한 카페는 아직 그곳에 있었고 스물 한 살 때 아르바이트를 한 이자카야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대학에 그닥 정을 붙이지 못했다고 생각해왔는데. 막상 오랜만에 다시 찾으니 이런 저런 추억들이 떠올랐다.
호수 앞, 덩쿨나무가 지붕을 만들고 있는 벤치를 지나며, 결국 이렇게 추억하게 될 것이라면 그때에 더 소중하게 생각할 걸, 하고 생각했다. 억지로라도 더 정을 붙이고 더 많이 걷고 더 기억할만한 일을 이곳에서 만들어둘걸. 매번 같은 후회를 하는 걸 보면 나는 생각보다도 더 무심한 사람일지 모르겠다.
by 모호
1. 금주의 다큐멘터리
<송환> by 모호
2. 금주의 음악 앨범
<Cull Ficle>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비가 하는 일> by 모순
금주의 다큐멘터리
송환
by 모호
제목 송환
감독 김동원
개봉 2003
길이 2시간 28분
'송환' 관람을 미뤄왔다. 영화가 끝이 나고난 후의 감정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12년 이라는 세월에 걸쳐 촬영된 푸티지들, 그 안에서 살아움직이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엮어내는 감독의 고심과 목소리를 보면 과연 나도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경외심이 들 것만 같았다.
'송환'은 비전향 장기수들의 이야기다. 비전향 장기수란 북에서 정치공작원으로 남파되었다가 체포된 이들 중 이념을 바꾸지 않고 남은 장기수들을 말한다. 감독은 1992년, 출소한 비전향 장기수들을 서울 봉천동으로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받고 카메라와 함께 그들을 만나러 간다. 소위 '간첩'이었던 비전향 장기수와 함께 같은 동네에서 부대껴 살며 촬영은 지속된다. 좀처럼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 비전향 장기수. 점차 친밀한 이웃이 되지만 동시에 공산주의자인 그들에게 모순적인 감정을 느끼는 감독의 속내가 내레이션으로 흐른다. 시간이 흘러 2000년, 그들을 북으로 송환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정부의 주도로 비전향 장기수들은 결국 북으로 돌아가게 된다.
살아움직이는 이 영화를 겨우 한 문단으로 요약하는 것이 어렵고 죄스럽기까지 하다.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고민하는 카메라. 12년이라는 세월 동안 펼쳐지는 감독의 복잡한 감정 변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기까지 하는 상황과 현실적 갈등들. '송환'의 소재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다큐멘터리가 정치적인 영화로 느껴지지 않았다. 한 다큐멘터리스트의 고백과 같이 느껴졌다. 이념 사이에서 방황하고 가닿을 수 없는 세월에 닿아보려고 하는, 하지만 끝내 다가갈 수 없었음을,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감독과 카메라. 영화 속 촬영된 비전향 장기수들의 표정과 이야기만큼이나 감독의 담담한 내레이션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금주의 음악 앨범
Cull Ficle
by 모호
트랙리스트
1. Circumstances Telling Me Who I Am
2. 아무 것도 없이
3. No Exit
4. 들판
5. 카리스마 대빵큰오리
6. Rmfjgekrh? (Everytime I Fall)
7.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배웠던 그 말 단 한 번도 가슴으로 못 했던 그..
8. 5:21:2000
9. Michin
10. 그냥 생각
11. (xxxxxxxxx)
12. 그래 맞아
13. 왜 이렇게 짜증이 나지?
14. Piglet
앨범 Cull Ficle
아티스트 Asian Glow
발매 2021
길이 91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마음이 불안하니 신경원의 음악을 듣고 싶어졌다.
4년 전, 홍대 롤링홀에서 디지털 던(Digital Dawn)이라는 공연이 열렸다. 브로큰티스, 신경원, 파란노을 등, 소위 비주류 아티스트 중에서도 비주류인 아티스트들이 한 번에 공연하는 드문 일이었기에 인터넷 세상에서도 작은 소란이 일었다. 특히나 그때까지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활동하던 파란노을의 첫 라이브 공연.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락페스티벌 '펜타포트'의 이름을 빌려 '찐따포트'라는 자조 섞인 이름을 붙여 부르기도 했다.
공연 당일, 조금 다른 분위기의 롤링홀에 처음 라이브를 들어보는 음악들이 연달아 흘렀다. 사람들은 꽤 벅차보였고 나는 어쩐지 겸연쩍어 하고 있었을 참이었다. 아시안 글로우, 그러니까 신경원이 기타를 메고 무대에 올랐다. 조금 긴 머리, 반팔 안에 긴팔을 받쳐입은 그는 기타를 힘껏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음악을 정말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이었다. 연주를 열정적으로 해서, 음악이 좋아서 같은 이유가 아니었다. 무대에서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긴장 따위 없이 가장 행복해보였다. 공연이 끝이 나고 맥주를 마시면서도 그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어제는 영화를 보면서, 얼마 전 꺼내어 들은 Cull Ficle 앨범과 라이브 공연에서의 아시안 글로우의 모습을 떠올렸다. 만들어야만 했던 꽉찬 의무같은 영화와 누구보다 행복해보이는 음악가. 나는 그 사이 어디쯤에 있나, 충분할만큼 충실하게 임하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