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 중이다. 어느덧 D+13을 맞았다. 일주일 차까지는 일에 영 집중이 되지 않고 짜증이 늘더니 일주일을 넘기자 조금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1시간 작업 후 흡연이라는 루틴을 깨자 뇌가 도대체 보상을 왜 주지 않느냐며 화를 냈던 모양이다. 이제는 니코틴이 공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굴복해서 입에 넣어주는 믹스배리 맛 목캔디 정도로 뇌가 만족하고 있다.
내가 금연 중인걸 어떻게 알았는지 인스타그램에서 자꾸 짐 자무쉬 감독의 '커피와 담배' 영화 클립을 보여준다. 톰 웨이츠와 이기 팝이 커피를 앞에 두고 앉아 금연에 대해 논하다가 결국 달변을 토하며 한 개비씩을 나눠피는 장면을 보며 하루종일 실실 웃음이 났다. 이기 팝과 톰 웨이츠도 못하는 걸 내가 하고 있구나, 하는 다소 과장된 자부심을 안고 이번 돌아오는 주도 잘 버텨봐야겠다.
by 모호
1. 금주의 다큐멘터리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by 모호
2. 금주의 음악 앨범
<Gorillaz>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작업실> by 모순
금주의 다큐멘터리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by 모호
제목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감독 벤야민 레에
개봉 2024
길이 106분
관람 넷플릭스
어렸을 때, 삼촌이 우리 집에 머무른 적이 있다. 대학생이던 삼촌은 당시 유행하던 스타크래프트 프로 리그 방송을 보기도 하고, 나와 누나에게 게임을 알려주기도 했다. 아마 삼촌은 저그 유저였을 것이다. 항상 징그러운 벌레 같은 유닛이 나오는 게임만 챙겨보곤 했으니. 삼촌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우)라는 게임도 했던 모양이다. 삼촌이 떠나고 한참 뒤에 서재방을 정리하다가 게임 CD를 발견했다. 그 게임이 너무나 궁금했지만, 게임에 보수적이던 집안 분위기 덕분에 나는 결국 워크래프트를 해보지 못했다.
다큐멘터리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퇴행성 질환을 겪다 세상을 떠난 마츠라는 청년의 이야기다. 그는 매일 밤 와우에 접속해 '이벨린'이라는 이름으로 게임 안에서 사람들과 만났다. 다큐멘터리는 마츠가 게임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인터뷰와 게임으로 재연된 이벨린의 모습으로 마츠의 '비범한 인생'을 보여준다. 와우 유저 이벨린이자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는 마츠는 와우에서 연애 감정을 나누기도, '탐정'이라는 직업으로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주기도 했다. 게임, 즉 일종의 가상 현실 안에서 마츠는 주체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고 (어쩌면 현실 세계보다 더) 자유로이 존재할 수 있었다. 게임에 접속하면 꼭 30분 동안은 이벨린으로 같은 코스를 달렸던 것처럼.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관객 리뷰가 꼭 보고 싶어졌다. 게임 안에서 관계 맺기를 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워크래프트를 미처 해보지 못한 나보다 이 다큐멘터리를 훨씬 강렬하게 느낄 수 있을테니. 아니나 다를까 리뷰 창에는 와우 같은 게임을 한 경험이 있는 관객들의 리뷰가 줄지어 있었다. 게임에서 해돋이를 본 경험, 힘들었던 때에 몇 만 시간 동안 게임을 하며 그 안에서 사람을 만났던 경험 등을 천천히 읽었다. 그들은 모두 한때 이벨린이기도, 이벨린을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금주의 음악 앨범
Gorillaz
by 모호
트랙리스트
1. Re-Hash
2. 5/4
3. Tomorrow Comes Today
4. New Genius (Brother)
5. Clint Eastwood
6. Man Research (Clapper)
7. Punk
8. Sound Check (Gravity)
9. Double Bass
10. Rock the House
11. 19-2000
12. Latin Simone (Que Pasa Contigo)
13. Starchine
14. Slow Country
15. M1 A1
앨범 Gorillaz
아티스트 Gorillaz
발매 2001
길이 64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친구 같은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고릴라즈의 음악은 친구같다. 온갖 장르가 뒤섞인 자유로운 앨범이라서일까. 데이먼 알반이 프론트맨으로 있는 또 다른 밴드 블러(Blur)는 어렸을 적부터 은근한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고릴라즈의 음악을 들을 땐 자세도 마음도 한껏 편해진다.
데이먼 알반은 나에게 그런 사람이다. 동경의 대상인 동시에 한없이 가까운 친구 같은 사람. 그의 가장 젊은 시절의 밴드 블러로 그를 처음 알게 됐다. 중학생 때였다. 고백하자면 그가 천재라고 생각했다. 브릿팝의 인기를 이끌던 시기의 앨범부터 2000년대를 넘어가며 시도한 변화까지. 블러의 모든 앨범을 지지하지는 않지만(ㅎㅎ;) 몇몇 앨범들은 정말 셀 수 없이 많이 플레이하며 그의 음악에 꽤 깊게 빠져있었다.
고릴라즈를 알게 된 건 그 이후의 일이었다. 블러의 모든 앨범에 익숙해져갈 무렵, 그가 참여한 또 다른 밴드가 있다는 사실을 네이버 지식인(중학생 때는 네이버 지식인이 나에게 중요한 디깅 경로 중 하나였다)을 통해 알게 됐다. 바로 고릴라즈의 첫 앨범 Gorillaz를 플레이했다. 예상치 못한 트립합, 힙합, 일렉트로니카 기반의 음악과 함께 왠지 낯선 데이먼 알반의 보컬이 흘렀다.
그 뒤론 한동안 블러 대신 고릴라즈를 듣고 다녔다. 인터넷을 뒤져 카툰 캐릭터들의 서사를 읽어보고, 뮤직비디오를 찾아보면서 데이먼 알반과 어쩐지 가까워진 것만 같았다. 그가 직접 전면에 드러나는 블러를 들으면서는 그와 한없이 멀다고 느꼈는데. 블러에서의 그의 모습보다 고릴라즈의 카툰 캐릭터 뒤에서 노래하는 그의 모습이 조금 더 친근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시간의 흘러 펫 사운즈라는 이태원의 바. '고릴라즈 데이'에 그곳에서 맥주를 마셨다. 따라부르던 Clint Eastwood와 사람들이 춤추던 19-2000, 같이 갔던 친구와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눈 고릴라즈가 얼마나 재밌는 음악을 하는지에 대한 대화들이 뒤섞여 떠오른다. 아마 내가 지금까지도 고릴라즈를 떠올리면 친구 같다는 감상을 떠올리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금주의 사진
작업실
by 모순
건축가 그리고 모호와 함께 새로운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반 년이 지났다. 각자 생업이 있으니 속도는 생각보다 더디다. 그러나 조급해할 일은 아니다. 어떤 일은 천천히 가야만 제 모양을 드러낸다. 다큐멘터리는 긴 여정이다. 중간중간 작업을 뒤돌아보면 시간이 보인다. 어느새 삶도 이만큼 와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시각적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일회용 흑백카메라로 건축가 님의 작업실을 한 장 찍어두었다. 작업실이라고 작업만 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마음먹는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다. 누구를 만나고, 덧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무언가를 읽거나 덮고, 창밖을 멍하니 보기도 한다. 그런 시간들로 작업을 뺀 나머지라는 삶의 여백이 채워지기 마련이다.
집을 보면 그 사람이 조금은 보이듯, 작업실도 그렇다. 집이 보다 사적이라면 작업실은 보다 사회적이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역시 지극히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흔적으로 가득차 있지만.
올해로 나와 모호가 함께쓰는 작업실의 계약이 끝난다. 처음엔 혼자 쓰던 곳이었다. 24년에 모호가 오기 시작하면서 이곳도 전보다 풍성해졌다. 이제 다른 작업실을 구하려 한다. 새 작업실에 작업 이외 무엇이 차오를지 아직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