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지난 몇 개월 동안 나의 직업은 기분을 바꾸는 것이었다. 침대에서 함께 일어나는 불유쾌한 감정을 떨쳐내야만 했다. 그것은 열대의 늪처럼 쿰쿰하면서도 끈적여 쉬 떨어지지 않았다.
첫 번째 방법은 무시였다. 아침부터 일정이 있으면 기분을 들여다 볼 여유 따윈 없었다. 그러나 밤의 턱끝까지 꽉 채운 의무의 하루를 보내고 역에 내리면 늪기운은 발끝부터 차곡차곡 올라왔다. 걸을수록 보도 밑으로 빠지는 느낌이었다. 머리까지 잠기기 전, 발 길을 돌려 다른 곳에 들렀다. 집 대신 사무실에 가서 뭐라도 하든가, 집앞 이자카야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다이어리를 펼쳤다. 쓸데없는 것까지 내일 할 일로 적어넣었다. 머리로는 생각할 거리를 불러내 하나씩 붙잡고 씹어냈다.
막힌 배수관은 한 번에 뻥 뚫어야 한다. 헝클어진 기분도 하나씩 풀어내기보다 단번에 바꿔야 효과가 있었다. 좋은 방법은 눈 뜨자마자 즉각 카페로 가는 것이었다. 우선 커피를 마심으로써 몸을 취식모드로 전환시킨다. 그리곤 이미 읽었던 것들 중에서 좋았던 것을 다시 읽으며 즉시 종이 속으로 도망갔다. 한참 그러다 고개를 들면 기분이 달라져있었다. 그 느낌을 얼른 움켜쥐고 집으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하루를 시작했다.
해가 갈수록 다양한 도피법을 발견해내야 한다. 그래도 작년에 세 개는 찾았다. 그걸로 됐다.
칠레 중부의 작은 도시 발파라이소에는 사람들이 산다. 물고기를 잡는 사람도 있고 펭귄에 목줄을 달고 산책하는 사람도 있다. 어린 아이도 있다. 같은 도시에서 다른 세계를 산다. 식민지 쟁탈전의 상흔은 문자와 언어로 연명 중이다. ‘천국의 골짜기’라는 뜻의 발파라이소는 오직 바다만이 그 진실을 삼켜내고 있다. 그곳은 항구다.
언덕이 높아질수록 가난해지고 아이들의 연은 더 높이 오른다. 더 큰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희망과 용기도 더 커져야만 할 것 같다. 도시의 수직성은 고스란히 계급과 사회구조를 무늬짓고 카메라는 놓칠리 없다. 프랑스 에세이스트이자 시네아스트 크리스 마커의 각본은 냉소와 관조를 오간다. 특유의 위트는 그 긴장에서 잠시 숨쉴 틈을 준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소파에 누운 채였다. 참 지독히도 편하다.
금주의 음악 앨범
Piss In The Wind
by 모호
트랙리스트
1. PIXELATED KISSES
2. Cigarette
3. Last of a Dying Breed
4. LOVE YOU LESS
5. If It Only Gets Better
6. Love Me Better
7. Piece of You
8. Hotel California
9. Tarmac
10. Forehead Touch the Ground
11. Past Won't Leave My Bed
12. Fade to Black
13. CAN'T SEE SH*T IN THE CLUB
14. Sojourn
15. DYKILY
16. Rose Colored
17. Silhouette Man
18. Fragments
19. Horses to Water
20. Strange Home
21. Dior
앨범 Piss In The Wind
아티스트 Joji
발매 2026
길이 46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Joji의 이번 네 번째 정규 앨범에 유독 마음이 간다.
고백하자면 Joji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 8~9년 전, 개그 유튜버 출신이라는 과거와 함께 'Slow Dancing in the Dark'라는 곡이 한창 바이럴 될 때만 해도 금방 사그라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예상과 다르게 Joji는 꾸준히 정규 앨범을 발매했다. 2020년 Nectar, 2022년 SMITHERENS를 거쳐 올해의 Piss In The Wind까지. 각 앨범들을 발매될 당시 적어도 한 번씩은 들어봤다. 여전히 그의 음악들이 내 마음에는 쏙 들지 않지만 올해의 Piss In The Wind를 들으며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3분을 넘는 곡이 거의 없이 21개의 트랙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이번 앨범 역시 조금은 정신이 없다. 분명 빛나는 멜로디의 트랙들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한 앨범으로서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지는 않다. 내 생각을 바꾼 건 굴하지 않고 계속 작업해나가는 그의 모습 자체다. 결국 작업을 멈추지 않고 계속 해나가는 사람들이 씬에 남는다. 그리고 그 과정이 결과물로 남는다. 작업을 계속 해나가는 건 예술적 관점에서도 중요하지만 개인적 관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작업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결정하는 일이니.
트랙이 휙휙 바뀌는 Joji의 이번 앨범을 들으며 운전을 했다. 쉽게 그만두지 않기로 했는데, 끝까지 남아서 늙어 죽을 때까지 작업하는 사람이 누가 되는지 두고 보자고 했는데. 그런 마음을 위협하는 요소가 너무도 많음에도 계속 해나가는 Joji의 앨범을 듣고 나는 차마 그를 싫어할 수가 없었다.
금주의 사진
책상 앞에 앉아
by 모호
모순이 준 일회용 필름 카메라의 마지막 몇 컷이 남았을 때였다. 한동안 촬영이 있을 때, 여행을 갈 때면 가지고 다녔던 일회용 카메라. 그 필름의 마지막을 작업실의 책상에서 끝냈다. 쌓여있는 책과 하드, 모순이 선물로 사다준 엘리엇 스미스 그림 엽서, 선물받은 다육이, 선물받은 영양제, 마시다 만 물과 담배.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 현상되어 사진으로 돌아오자 낯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