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에 심은 나무의 줄기 하나가 공기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듯, 새우등을 하고 흙바닥으로 늘어져 있었다. 듬뿍 물을 주었다.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봤다. 처음엔 안쓰러웠다. 아무리 그래도 집 안에 생명이라고는 너와 나뿐인데 관심을 촉구하는 항의로 죽는 시늉까지 할 일인가 싶었다. 요즘 녀석답게 자극적이고 즉각적이다. 볕 잘드는 창가에 바짝 붙여 두었다. 그러자 책상 뒤 의자로 가는 동선에 이 녀석이 끼어들었다. 이제는 지나칠 수밖에 없다. 매일 네 상태를 살피게 될 것이다. 이 이상의 항의는 삼켜두길 바란다. 봄은 멀지 않다.
by 모순
1. 금주의 다큐멘터리
<자화상: 47km 마을의 창> by 모순
2. 금주의 음악 앨범
<넌 별로 날 안 좋아해>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이미 많은 사진> by 모호
금주의 다큐멘터리
자화상: 47km 마을의 창
by 모순
감독 장몽기
개봉 2019
길이 110분
관람 x
늦은 밤 집에 도착 하자마자 소파에 누워 배 위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흐린 눈으로 이 영화를 본 후 머릿속에 남은 것들.
초라한 흙바닥 방에 할아버지를 볕이 드는 쪽으로 앉힌다. 뒤로 벽에 마오쩌둥의 초상화에 걸려있다. 역시 볕이 든다.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보이스오버된다. 인터뷰가, 영화가 끝나갈수록 마오쩌둥에게만 볕이 남는다. 우연은 아니겠지.
넓은 화면에 손톱처럼 보이는 사람. 압도적 환경에 손톱만큼 웅크려진 사람. 그럼에도 움직이는 건 사람. 할 일을 한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마을 어르신들을 연필로 그린다. 배경도 그린다. 소품도 그린다. 사실대로 그리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본대로 그리고 실제와 다른 색으로 칠한다. 아이의 마음이 피어오른다.
완성된 그림을 어르신들은 읽지 못한다. 흐릿한 생명의 불꽃은 눈가에서도 그 힘이 위태롭다. 아이에게 묻고 아이는 설명해준다. 아이의 세상을 직접 보지 못하고 아이의 목소리로 듣는다.
감독은 카메라로 마을과 사람을 그린다. 감독은 젊다.
어르신들은 오직 식량에 달라붙은 과거를 살았다. 그런 삶을 살아왔다. 식량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식량 이후는.
들판을 곡괭이 질 하며 마을의 중년, 그러니까 실무적 어른들이 있다. 한 남자는 자기가 베이징에서 본 중국을 말한다. 일하는 사람은 중간중간 대꾸를 한다. 일은 멈추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끝나고 아이는 이제 벽에 할아버지의 초상화를 더 크게 그려넣는다. 감독도 돕는다. 할아버지는 초상화 옆에 두 사람에게 고맙다는 문구를 이름 옆에 새겨달라고 한다. 진심이니까.
마을의 꼬마들은 그림도구가 신기하다. 노래부르며 낙서를 한다.
밤, 마을 위로 불꽃놀이가 피어오른다. 칠흑같은 마을에 총천연 색이 칠해진다.
초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머리에 맴돈다.
금주의 음악 앨범
넌 별로 날 안 좋아해
by 모호
트랙리스트
1. 동종업계 종사자
2.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똑똑한 사람
3. 무기력
4. 애매한 개
5. 여자들을 만나야만 곡을 쓰는 뮤지션 얘기
6. 넌 별로 날 안 좋아해
7. 흠
8. 답답함
9.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를 함께 비를 맞으며
10. 퉁
앨범 넌 별로 날 안 좋아해
아티스트 신승은
발매 2016
길이 32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오랜만에 '넌 별로 날 안 좋아해'의 노랫말을 따라 불렀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을 땐 말이 짧아진다. 아직은 여기까지만, 하고 놔두면 제멋대로 문장이 완성되어 의미가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한다. 글을 쓸 때도 다를 바가 없다. 미완성의 문장을 방치하는 버릇이 있다. 이 버릇을 눈치 챈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다 말하면 재미가 없어서일까. 글쎄, 재미가 있어서 문장을 방치하지는 않았다. 어쩔 도리가 없었을 뿐이다.
신승은의 노랫말을 따라 부르는 건 재미있다. 너무나도 명확한 문장들이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와 노래가 된다. 1번 트랙부터 차례차례 흥얼거리며 노랫말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쉽게 말할 수 없는 '완성된' 문장들이 내 입으로 나온다. 질투, 사랑, 무기력을 있는 그대로 말해버릴 수도, 노래해버릴 수도 있는 사람.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밉지 않다, 아니 좋다.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좋다. 그중에서도 오늘 보았던 것, 요즘 좋아하는 것, 고민인 것을 툭툭 말해버리는 사람이 좋다. 사실 이건 못된 심보다. 나는 그런 이의 옆에서 완전한 문장에 웃고 슬퍼하며 그를 열심히 훔쳐올 것이다.
금주의 사진
이미 많은 사진
by 모호
현상하지 않고 쌓아두었던 필름들을 현상소에 맡겼다. 그 중 하나는 광주 여행에서의 필름. 2박 3일간 광주에 머물며 찍었던 필름 12장이 스캔되어 한 폴더에 담겼다. 숙소 근처에서 찍었던 사진,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찍었던 사진, 길에서 본 버려진 모니터, 그리고 전남 도청. 여행 첫날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전일 빌딩을 둘째 날 올라가 찍었던 사진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 사진과 비슷한 구도의 사진을 여러 장 본 기억이 있다. 영화 속에서도 보았고, 기사에서도 본적이 있고, 그냥 혼자 찾아본 적도 있다. 도청 앞 광장의 풍경만 다르다. 이날은 이상할 정도로 광주 시내가 조용했고, 아주 흐린 날씨였다.
아마 같은 구도의 사진을 찍기 위해 여러 사진가들이 전일 빌딩 옥상에 올랐을 것이다. 1980년 즈음일수도 있고 혹은 1990년대, 혹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중형 카메라를 들면 목에 건 노출계로 노출을 재고, 그에 맞춰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를 정하고 천천히 초점을 맞춘다. 내가 본대로 찍어야지, 내가 이해한 만큼만 찍어야지, 그리고 그 이상은 아마 우연의 영역이겠지, 라는 마음으로 필름을 찍는다. 이 사진도 아마 그런 마음으로 찍었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찍힌 구도의 사진이다. 비슷한 사진을 찍은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련지. 세상에 이미 많은 사진 중 하나가 유독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