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쓴다. 시를 써야겠다, 아니 시를 써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시를 쓴다. 매주 수요일마다 있을 시 창작 수업의 합평 시간에 시를 가져가야 하기 때문이다. 숙제 같던 시가 정말 숙제가 된 지난 한 주를 보냈다. 결국 시를 썼다. 내가 보고, 듣고, 아는 만큼만 썼다. 이제는 그렇게 밖에 쓸 수 없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다.
합평에선 각자 시를 읽고 자신의 시에 대해 말하고 남의 시에 대해 말해야 한다. 모든 글은 투명하지만 시는 유독 그렇다는 걸 느꼈다. 나는 저 사람을 아직 잘 모르지만 시를 쓴 저 사람은 조금 알 것 같았고 나는 나를 제대로 소개하지 않았지만 나를 조금 말한 것 같았다.
내가 쓴 시를 읽고 내가 쓴 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왜 인지 웃음이 났다. 한 주간 속에서만 굴리던 말과 생각을 털어놓아서일까. 아마 내가 시인이 되는 일은 없겠지만 시를 쓴다는 건 나에게 생각보다 건강한 활동 일지도 모르는다는 의심이 들었다. 나의 또 다른 한 주간의 숙제 모호순과 함께.
by 모호
1. 금주의 다큐멘터리
<마이 스윗 레코드> by 모호
2. 금주의 음악 앨범
<Who Really Cares>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산장> by 모순
금주의 다큐멘터리
마이 스윗 레코드
by 모호
제목 마이 스윗 레코드
감독 박효진
개봉 2002
길이 8분
관람 x
오래 기억에 남는 다큐멘터리들이 있다. 나에게 아주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었던 다큐멘터리가 대부분인데, 가끔은 꼭 반짝이지 않더라도 감독이 어떤 사람일지 알고 싶어지는 작품도 있다. 8분 길이의 짧은 다큐멘터리인 '마이 스윗 레코드'가 그렇다. 나도 다큐멘터리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처음 참여해본 다큐멘터리 워크숍에서 같이 봤던 작품. 아마 감독 본인에게 직접 문의하지 않는 이상 다신 볼 수 없을 이 작품이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서 문득 떠오르곤 한다.
'마이 스윗 레코드'는 감독이 캠코더를 들고 예전의 짝사랑 상대를 찾아가며 시작된다. 특별할 것도 없는 어느 풍경에 앉아 감독은 그에게 시시콜콜한 질문들을 던진다.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는 감독의 속내를 모르는 듯 감독이 던진 질문에 적당히 성실하게 답한다. 그의 답변 사이 감독의 속내는 텍스트로 화면에 드러난다. 몇 분 간의 질의응답이 끝이 날 무렵, 감독은 그에게 짝사랑을 고백한다. 그리고 영화는 툭 하고 끝이 난다.
어찌보면 참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영화 만드는 사람', 그러니까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의 면모가 돋보이면서도 이 영화를 기억할 수 밖에 없는 건 이 고백의 방식이 다큐멘터리의 작업 과정과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다. 속내를 가지고 카메라의 뒤에서 계속 질문하고, 듣고, 편집하고,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속내를 내뱉고야 마는 일련의 고백 과정. 정도와 방식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나간 혹은 지나가고 있는 이야기를 쉽게 넘기지 못하고 되돌아가 다시 묻고 기어코 고백까지 해내는 다큐멘터리를 '마이 스윗 레코드'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아주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체 마음에서 무엇이 그리 걸리기에 지난 짝사랑을 다시 찾아갈 수 있는지,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 하는지. 알 것도 같지만 아직 다 모르겠는 그 마음이 여전히 궁금하다.
금주의 음악 앨범
Who Really Cares
by 모호
트랙리스트
1. Taking What's Not Yours
2. Song About Me
3. Cigarettes out the Window
4. Till You Tell Me to Leave
5. Not Allowed
6. (Do the) Act Like You Never Met Me
7. Safeword
8. For You
9. Loving Machine
10. Heaven Is a Bedroom
앨범 Who Really Cares
아티스트 TV Girl
발매 2016
길이 36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꽤 오래 알고 지낸 친구를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신논현역 근방 사무실에서 있었던 작업 회의를 마치고 약속 장소인 강남역으로 향했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절대 강 밑으로는 내려가지 않는 터라 강남대로를 걷는 건 오랜만이었다. 똑같은 광고가 무한 루프되는 쭉 늘어선 전광판이 원래 있었던가. 하필 퇴근 시간 즈음이라 반대편에서 걸어 오는 사람들이 많아 피해 걸어야만 했다. 서울에서 나름 오래 지냈지만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 풍경이었다. 귀라도 피로로부터 지키기 위해 헤드폰을 썼다. 아침에 지하철을 탈 때 골랐던 TV Girl의 Who Really Cares의 9번 트랙 Loving Machine이 재생됐다.
거의 2년 만에 만난 친구는 여전했다. 전에는 조금 어색했던 올림머리가 이제 제법 잘 어울렸다. 이 근방의 회사에서 일하는 그는 꽤나 피곤해보였다. 저녁 식당을 미리 정하지도 않아서 매번 그랬듯이 근처 치킨집을 검색해 들어갔다. 나보다 나이가 한 살 위인 그에게 나는 7년이 지난 지금도 반존대를 한다. 맥주 드실건가요. 마셔야지. 오늘 점심을 안 먹었더니 배가 너무 고프네. 우린 둘 다 매운 걸 못 먹으니까 1단계로 주문하자.
그를 알게 된 건 사진 동아리에서 였다. 사실 어떻게 친해지게 되었는지, 출사가 끝나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을지로 근방의 현상소에서 만나 매번 치킨을 먹으러 간건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그와 꽤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홀린 것처럼 니콘 FM2 대신 중형 필름 카메라를 메고 있었다. 요즘도 사진 찍으세요? 찍을 시간이 없다. 시간이 왜 없어. 요즘은 사진을 찍어도 같은 것만 찍는 것 같아. 분명 오늘 찍은 사진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거 있지.
밀린 근황을 길게 나누고,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러다보니 금방 생맥주 500cc 두 잔씩이 비워지고, 담배 두 대씩을 피우고 헤어졌다. 정말로 반갑네. 당연하게도 우린 잘 지내고, 여전히 치킨을 먹네. 줄이 길게 늘어선 2호선 지하철 승강장 앞에서 또 보자는 인사를 나눴다. 바로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재생했다. 어쩐지 TV Girl의 앨범을 다시 듣고 싶어져 Loving Machine을 재생했다.
금주의 사진
산장
by 모순
치앙마이에서 차를 몰아 두 시간쯤 달려 치앙라이에 도착했다. 예약한 산장은 산기슭에 있어서 20분 남짓 등산해야 했다. 짐도 함께 였다. 친구는 문명이 흐릿한 곳을 겪어보고 싶다고 했고 나도 별다른 생각 없이 동의했다. 그렇게 정해진 숙소였다. 우리가 발딛은 이 가파른 오솔길이 맞는 방향인지 몇 번이나 확인하고 나서야 저 끝에 숙소가 보였다. 왼편은 꺼질 듯한 절벽으로 수많은 녹색이 어지러웠다.
주인 아주머니는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였다. 식사는 직접 요리해줄 수도 있다고 했다. 아침엔 커피도 내려주신단다. 산장은 독채가 아니었다. 주인이 사는 2층 나무 판자집이 입구에 있고 그 뒤로 넓은 마당을 몇개의 별관이 감싸 안고 있었다. 우리 방은 주인 집과 대척되는 마당 끝 우거진 녹잎 사이로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방콕에서부터 비행기를 타고 치앙마이에 도착해 차를 빌려 운전하고 오느라 우리는 적당히 지쳐있었다. 오른쪽 운전과 등산은 피로를 더했다. 바로 샤워를 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산아래에는 라후족이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다음 날 젊은 라후족 남자과 함께 투어를 하리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내 입안에는 그가 산길에서 따준 야생 바나나 맛이 혀 끝에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