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051_26.01.23.
모호 성원 / 모순 영인
살면서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음악, 사진 하나씩만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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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녀석이 ‘벡스코’가 뭐 하는 곳이냐며 ‘엑스코’ 같은 거냐고 물었을 때, 그나마 걸치고 있던 사회적 자아와 정무적 사고는 보기 좋게 벗겨졌다. ‘엑스코’는 ‘코엑스’였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서울에 살지도, 갈 일도 없는 사람에게 코엑스가 뭐 그리 대단하랴. 덕분에 웃었으니 밥맛이 더 좋아졌을 뿐이다.
부산에 다녀왔다. 고등학교 친구 둘과 함께였다. 이 녀석들과 나누는 층위 없는 대화는 어쩜 그토록 안전할까. 해석과 베일은 가방에 넣어두고, 보이는 대로 말하고 느끼는 대로 뱉는다. 유아적이고, 들리기엔 점잖지 않은, 끝이 둥근 가시가 박힌 그 입말들. 그럼에도 안전하다.
자아에도 스펙트럼 같은 게 있다면 이렇게 보내는 시간들이 그 분포를 늘린다. 그렇게 내면의 빛깔이 조금씩 넉넉해진다. 서로가 삶이란 공간에서 화장실이 되어줄 수 있기를, 덜 똑똑해도 멍청해도 되기를.
by 모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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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주의 다큐멘터리
<잭 화이트홀: 아버지와 발칙한 세상 산책> by 모순
2. 금주의 음악 앨범
<Pink>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묘사 일기(빈집에서)> by 모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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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화이트홀: 아버지와 발칙한 세상 산책
by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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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잭 화이트홀: 아버지와 발칙한 세상 산책 (시리즈)
관람 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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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화이트홀: 아버지와 발칙한 세상 산책>은 어쩌면 오락 다큐멘터리다. 웃겨서가 아니라 논픽션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그 상위에 픽션/논픽션 범주가 있다. 극영화는 허구를(픽션), 다큐멘터리는 실제를 다룬다(논픽션). 이 지점에서부터 책임의 무게는 달라진다. 같은 장면이라도 그것이 ‘실제’라는 이유로 윤리의 잣대는 훨씬 예민해진다. 누구도 자신의 삶이나 관계된 사건이 웃음의 재료로 소비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가볍게 다루기엔 개별의 삶은 대체로 무겁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는 오랫동안 사회적 메시지나 교양, 예술의 영역에서 자리를 잡아왔다.
그렇다면 가벼운 오락 다큐멘터리는 불가능한가. 꼭 그렇지는 않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매일 그것을 보고 있다. 많은 예능 프로그램이 논픽션에 기대고 있다. <유퀴즈>나 최근의 관찰 예능이 그렇다. 말 한마디의 실수로 사람이 평가받고, 때로는 추락하는 이유는 이들이 캐릭터가 아니라 현실의 사람이라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 논픽션이다.
<잭 화이트홀: 아버지와 발칙한 세상 산책>에는 실제 아버지와 아들이 등장한다. 세대 갈등과 여행이라는 장치가 주어지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연기가 아니다. 그들이 한 말은 촬영이 끝난 뒤에도 삶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평가된다. 그럼에도 이 시리즈는 가볍고, 웃기다. 그래서 나는 이 시리즈를 '오락 다큐멘터리'라 부른다. 웃기지만, 끝내 현실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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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리스트
1. Farewell
2. Pink
3. Woman on the Screen
4. Nothing Special
5. Blackout
6. Electric
7. Pseudo Bread
8. Afterburner
9. Six, Three Times
10. My Machine
11. Just Abandoned Mysel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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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Pink
아티스트 Boris
발매 2005
길이 47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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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공연을 열렬하게 좋아하진 않는다. 방구석이 더 익숙한 리스너인지라 사람이 가득한 공연장에 가서 줄을 서 입장하는 것도 힘들고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쓸쓸한 여운이 쉽게 익숙해지질 않는다. 팬덤이 작은 아티스트일수록 공연에 온 이들의 묘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것도 쉽지 않다. (나만의 고약한 비밀이다...) 그럼에도 공연을 본다는 건 가슴 뛰는 일이다. 내 한때를 가득 채워줬던 음악이 눈앞에서 살아움직이면 방구석에서는 느낄 수 없던 이미지가 생겨 평생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게 된다.
서울에 살지 않았던 어린 시절에는 라이브 공연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보고 싶은 밴드들이 너무나 많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유튜브로 그들의 라이브 공연 실황을 엿보는 것 뿐이었다. '역시 락 음악은 라이브로 들어야지' 하는 유튜브 댓글들은 어린 나의 사상을 개조하기에 충분했다.
2016년, 상경하자마자 밴드 넬의 콘서트를 예매했다. 피씨방에 앉아 티켓팅을 하고, 겨우 표 한 장을 구해 뛸 듯이 기뻐했다. 무대 위에서의 넬은 멋졌다. 중학생 때 흰색 이어폰으로 듣던 음악들이 눈앞이 멍해질 정도로 화려한 조명과 함께 공연장에 울렸다. 주변 관객들은 모두 그 노래의 가사를 알았고, 나 또한 알고 있었다. 가사를 중얼중얼거리며 울고 웃다가 금세 공연이 끝나버렸다. 꼭 듣고 싶은 노래가 있었는데. 아니, 그래도 이 곡은 들었으니까, 다음에. 혼자 공연장을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갔다. 내 속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변했는데 지하철 풍경은 똑같았다. 괜히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뒤로 한참은 다른 공연을 보지 못했다. 공연을 같이 보러 가서 같이 꿈을 꾸고 지하철에서 떠들 친구가 없어서 그랬을까. 너무 강한 감정이 들이쳐 어딘가 고장나버렸을까. 시간이 흘러 이젠 마음만 먹으면 어떤 공연이든 예매하고, 같이 꿈을 꿔줄 친구들도 생겼지만 어쩐지 흔쾌히, 그리고 열렬히 공연을 보러다니진 못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Boris의 2월 공연 소식을 아주 뒤늦게 접했다. 그중에서도 쨍한 핑크색의 이 앨범, Pink의 발매 20주년 공연. 역시 내 한때를 가득 채웠던 이 앨범의 전곡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니. 하지만 너무 늦어버렸을까. 표가 단 한 장도 남지 않았다. 종일 Pink를 연속 재생하며 잊을만하면 예매 창을 새로고침했다. 고장났던 곳이 고쳐진걸까. 아니, Pink의 라이브를 들어야 할 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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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빈 와인병 (그리고 유칼립투스)
빈 와인병에 유칼립투스 나뭇가지가 하나 꽂혀 있다. 유칼립투스는 크리스마스 아침에 산 장미 두 송이와 함께 받았다. 꽃집 사장님은 손님을 기다리며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Find, 찾다. Acquire 얻다. 이젠 단어를 외워도 금방 잊어버려요.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유칼립투스에선 향이 난다고 했다. 엄지와 검지로 잎 하나를 비벼 껐다. 향이 나나. 바람 냄새가 났다. 들이닥치는 바람 같은 냄새가 났다. 유칼립투스는 쌍떡잎식물, 장미군에 도금양목. 전에는 이런 것들을 곧잘 외우곤 했는데. 빈 와인병이 작은 방 한구석에 한참 서 있었다. 장미는 검게 졌지만, 유칼립투스는 남았다.
2. 안경
안경집을 잃어버렸다. 처음이 아니다. 지금까지 내것이었던 안경은 셋. 매번 안경집을 잃어버려서 멋대로 주머니에 들어간 안경은 다리가 휘어버렸다. 이번 안경은 그러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휜 안경을 콧등과 귀에 얹어 놓는다. 휜 안경을 써도 앞은 휘어보이지 않는다. 내킬 때만 안경을 쓰는 나를 우스워 했던 사람이 있다. 항상 쓰고 있으면 안경집을 잃어버릴 일도 없고, 다리가 휘어버릴 일도 없을텐데, 그렇지 않니. 보이는 만큼만 보는 편이 낫다고 변명했지만 그것이 거짓말인 걸 스스로도 알고 있다.
3. 레몬
C가 회사에서 받아온 레몬 하나. 가방에서 대뜸 노랗고 겉이 매끈한 레몬을 꺼냈다. 국내산이래. 방부제 처리를 하지 않아서 껍질까지 먹어도 된다더라. 직장 동료가 하나씩 나누어 줬다는 레몬이 아주 노란색이라서, 우리가 앉아 있던 곳은 푸른 4호선 지하철 역사라서 레몬만 보였다. C는 냄새를 맡아보라며 레몬을 내 코에 가져다 댔다. 어째 살 냄새가 나네, 하고 말았다. 차가운 볼 같아서, 레몬의 속이 잘 떠오르지가 않아서 그런가보다, 했다. 네 수염에 문질러서 레몬 제스트를 만들어도 되겠다. C가 내 턱에 레몬을 문지르는 시늉을 했다. 자꾸만 레몬이 사람 같아서, C 같아서 손으로 가볍게 밀어냈다.
4. 카메라
나는 인터뷰이 앞에 앉았고, 카메라는 우리의 프로필을 찍는다. 우리는 금방 카메라를 잊어버려서 질문을 주고 대답을 받는데 여념이 없다. 잠깐 쉬었다 해도 될까요. 그럼요, 물을 드세요. 많이 드세요. 그래야 목소리가 부드러워져요. 크게 기지개를 켜며 카메라를 봤다. 붉은 점이 툭 하고 끊겼다. 화장실을 다녀와도 되나요. 이제 소리가 들어가지 않겠지요. 네, 들어가지 않습니다. 지금은 녹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카메라에는 시간이 담기잖아요. 건축 도면이랑 가장 큰 차이겠지요?
5. 새 노트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던 날 태어났다. 엄마는 나를 낳고 투표를 하러 갔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새해네. 조금만 늦었으면 넌 빠른 연생이 되었겠다. 두 해에 걸쳐있는 아이가 될 뻔했겠다. 생일이 되면 김대중과 걸쳐진 두 해가 떠오른다. 올해 생일 선물은 무엇으로 할래. 노트를 골랐다. 다이어리는 아니었으면 좋겠어. 다이어리와 노트의 차이가 뭔데. 해를 건너서야 새 노트가 도착했다. 일기를 쓰면 다이어리인가. 날짜를 쓰면 다이어리인가. 글쎄, 하고 ‘먹다 남긴 남은 샌드위치’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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