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049_26.01.09.
모호 성원 / 모순 영인
살면서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음악, 사진 하나씩만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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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에 감기가 일주일째 눌러붙어 있다. 지난 며칠의 행적을 돌아보면 감기가 떠나기에 썩 바람직한 생활은 아니었으나, 이 녀석이 이렇게나 나를 좋아할 줄은 몰랐다. 좀처럼 떨어지질 않는다. 이제는 원래 목소리가 가물가물하다. 며칠 전부터는 찬바람이라도 막아보겠다고 마스크도 쓰고 다닌다. 몸둥아리에서 내세울 만한 건 면역력이었는데 이것마저 벌써 흔들리는 건가싶어 유쾌하지 않다.
그러던 차에 이대로 계속 두면 비염이 될 수 있다는 ‘모호’의 말에 덜컥 겁이 나서 병원에 가기로 맘 먹었다. 작업실이 있는 충무로역 근처에는 이비인후과가 딱 하나 있었다. ‘서울이비인후과’의 후기는 정말 재밌었다. 읽어보면 의사의 성격이 대강 그려진다. “왜 이제 왔어요, 계속 그렇게 사세요” 같은 말로 환자를 나무라거나 무안하게 만든다는데, 아리송하게 실력은 나쁘지 않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근처에 다른 선택지는 없으니 이 후기들을 정주행 하고 나면 예비 신규 환자는 여러 생각에 빠지게 된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병원으로부터 서비스를 받고 싶은지, 그로인해 나는 어떠한 성향인지 성찰해보고 싶은 사람은 호기심이 절로 갈 것이다.
그러나 차마 나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집 가는 길에 을지로4가역 바로 앞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 받았다. 약국에 갔더니 약사가 말하길, 항생제는 독해서 배가 아플 수 있으니 유산균을 먼저 먹으라는 것이다. 집에 유산균이 없다고 하니, “하나 드릴까요?” 물어서 함께 구매했다. 그렇게 유산균까지 계산대에 올랐다. 3일치 약이 4500원인데 유산균은 5000원이었다. 잠시 영업 당한 건가 생각했으나, 약을 먹으면 나을 거란 설렘이 의심을 눌러버렸다.
어제 저녁은 유산균 덕분인지 약 복용 후 배가 아프지 않았다. 오늘 아침은 깜박하고 유산균을 안 먹고 항생제를 먹었더니 정말 배가 아팠다. 처음 느껴보는 유형의 복통이었다. 위 주머니에 얼음 하나가 굴러다니며 벽 면을 소독하고 다니는 느낌이랄까. 사실 이게 아프다고 해야 할지, 뱃속이 낯설어진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기분은 별로다. 커피를 마시면 속이 쓰려지기까지 하니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약사 님을 의심해서 미안한 마음이다. 내일은 유산균을 반드시 먹겠다.
코맹맹이로 일주일 넘게 살다보니 별 쓸모없는 생각도 늘어난다. 이 목소리의 왜곡은 어디서 발생하는 걸까. 참 요상하다. 목소리 톤도 한 단계 내려간 듯한데 목구멍은 멀쩡하다. 오로지 코에서만 바이러스들이 즐겁게 뛰놀고 있고 모든 문제는 코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목구멍에서 정상적으로 나온 소리가 코를 통과하면서 왜곡이 발생하는 것이 분명하다. 코 어디선가 소리와 콧물이 엉겨붙으면서 먹먹한 소리를 내보내는 것일텐데, 과연 그 만남의 장소가 정확히 어딘지 궁금하다. 손을 넣어서 확인할 수 없으니 이런 저런 상상해보다가 이내 또 다른 잡념으로 옮겨가고 만다.
생각은 늘 그래왔듯 해결없이 흘러간다. 아마 내일도 코맹맹이로 하루를 시작하겠지. 이렇게 별것 아닌 몸의 불편 하나로 잡념의 가지를 또 뻗어내는 걸 보면, 나는 생각보다 매우 한가한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by 모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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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주의 다큐멘터리
<커버업: 은폐된 진실> by 모순
2. 금주의 음악 앨범
<My Favorite Things>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시, 시, 시 하다가> by 모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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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커버업: 은폐된 진실
감독 마크 오벤하우스, 로라 포이트라스
개봉 2025
길이 1시간 55분
관람 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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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에 누워서 우연히 틀었다. 시모어 허시, 이제는 여든의 늦자락에 있는 어느 미국 저널리스트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가 썼던 수천 장의 메모와 그를 찍은 영상 등의 아카이브 자료와 인터뷰가 교차되며 영화는 전개된다. 내가 흥미를 느꼈던 이유는 아마도 작년부터 머릿속에 눌러 앉은 ‘탈진실’이라는 개념 때문일 것이다.
진실을 추구하던 시대가 있었고 이제는 지났다라는 의미로 post-truth, 한국어로 ‘탈진실’로 번역되는 이 개념은 하나의 사회 현상을 가리킨다.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과 신념에 호소하는 주장이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다. 사실의 진위 여부는 부차적 문제가 된다. 확실한 증거를 내 밀어도 설득은 어렵다. 내가 믿지 않으니 그것은 증거가 아니며, 내가 믿는 것이 나의 진실이라는 식의 답변이 돌아온다. 그러면서 ‘대안적’ 진실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심지어 먹힌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오늘 날, 20세기 중후반 미국 정부와 정보기관을 파헤쳐서 진실을 보도하려 한 기자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도 문제점은 있다. 조작된 사진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한 채 증거로 내밀며 저널리스트로서 커리어에 치명적 오점를 남기기도 했고, 감정적으로 행동하고 판단하는 면모도 내비친다. 냉철하기 보다 뜨거운 저널리스트로 보였다.
제 아무리 퓰리처 상을 받은 저널리스트여도 절대로 접근하지 못하는 권력의 층이 있다고 한다. 그러한 현실의 한계에도 그가 아직도 현역으로 일 하는 이유는 “그런 나라가 있어서는 안된다. 그게 너무 화나서 이렇게 달려들고 있다. 그런 일을 저지르고 딴청을 피우는 나라가 있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아직 진실을 추구하는 노년의 그 눈빛이 당분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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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리스트
1. My Favorite Things
2. Ev'ry Time We Say Goodbye
3. Summertime
4. But Not for 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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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My Favorite Things
아티스트 John Coltrane
발매 1961
길이 40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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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좋다.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말하는 사람의 표정이 좋다. 목소리도 좋고 말투도 좋아진다. 좋아하는 것이 사소하면 사소할수록 좋다. 집 앞 빵집의 누룽지처럼 고소한 바게트라던가, 토실토실 살이 오른 치즈색 고양이의 엉덩이를 두드리는 것이라던가, 종이의 질감이 기분좋게 손끝에 느껴지는 볼펜이라던가. 좋아하는 것들을 말하며 좋아하는 것들을 상상하고. 그 상상이 얼굴에 부드러운 실오라기처럼 살짝 스치고. 그래서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묻는 것을 좋아했는데 잠시 잊고 지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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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던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질문은 얼마 전 정주행을 끝낸 한 '언덕길의 아폴론'이라는 애니메이션으로부터였다. 도시에서 시골 고등학교로 전학 온, 툭 하면 공황이 찾아오는 외롭고 내성적인 주인공이 같은 반의 문제아, 그리고 그 소꿉친구와 재즈를 계기로 우정과 사랑을 나누며 펼쳐지는 익숙한 이야기였다. 각 회차의 제목은 Moanin', Someday My Prince Will come, Lullaby of Birdland 같은 유명한 재즈 뮤지션의 곡들. 한 회차를 보고 오랜만에 그 곡이 수록된 앨범을 들어보고, 다시 한 회차를 보고 하며 오랜만에 재즈를 즐기며 이야기에 흠뻑 빠져있었다.
주인공은 피아노, 문제아는 드럼. 클래식을 연주하던 주인공은 재즈를 알게 되며 점차 성숙해져간다. 몇 화를 남겨두지 않았을 즈음이던가. 존 콜트레인의 My favorite Things를 연습하던 셋이 지하 합주실 바닥에 누워 오니기리를 나눠먹으며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내가 오래도록 기억하는 영화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들과 비슷한 나이에 보았던 영화. 유치하고 뻔한 영화지만 씬이 전부 기억나는 영화. 그 영화에서도 두 주인공이 카세트 테이프를 주고 받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나는 아직도 영화 속 여자 주인공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기억한다. 그리고 또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나에게 좋아하는 것들을 말해줬던 사람들. 내가 묻지 않아도 흔쾌히 나눠주기도 했던 사람들. 애써 기억해내려 하지 않아도 전부 기억이 난다.
실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묻고 싶던 사람들이 몇 있다. 생각이 난 김에 슬그머니 물어봐야겠다. 당분간은 내가 뜬금없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물어도 그러려니, 그리고 잠자코 좋아하는 것들에 말씀해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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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눈을 뜨면 충무로 작업실에 간다. 그 길에는 매번 비슷한 풍경과 비슷한 사건들이 이어진다. 언제부턴가 길을 걸으며 좀처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니, 더 엄밀하게 서술하자면 머릿속을 오래 떠도는 문장이 없다. 듣거나 보거나 떠올린 문장이 분명 있을텐데. 전에는 그런 문장들 중 마음에 하나씩은 끈질기게 자리를 잡아서 길을 걸으며 한참을 만지작거리다가 겨우 소화해내곤 했다. 전만큼 내가 예민하지 못한건지 아니면 이제 적당히 생각하고 살자는 일종의 자기방어인지. 매번 비슷한 풍경과 비슷한 사건들이 아니었을텐데 한동안 나는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다.
시 창작 수업을 신청했다. 아마도 일종의 위기감으로부터. 작업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수업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퇴근길 2호선이 붐볐다. 겨우 시간에 맞춰 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말해주세요. 급히 뛰어오느라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하고 말했다. 어...하고, 또 어...하다가 적당히 말을 골라내어, 적당히 마음을 첨가하고. 그리 솔직하진 못했다. 속이 훤히 보이게 말하지 않기에 너무 익숙해져버렸다. 몇 가지 시에 대한 텍스트와 몇 편의 시를 돌아가며 소리내 읽었다. 그중에서 각자 좋았던 시에 대해 말하기도, 서로가 생각하는 시 쓰기에 대해 나누기도 했다.
시... 시... 시...하다가. 떠돌던 언어들이 시... 시... 시... 하는 소리에 달라붙었다. 그것들을 노트에 옮겨적어두었다. 이번 주는 과제가 있습니다. 매일 대상 하나씩을 관찰하고 묘사 일기를 써오세요. 총 다섯 개의 대상에 대해 다섯 줄씩 적어오면 됩니다. 오늘도 충무로 작업실에 간다. 그 길에는 매번 비슷한 풍경과 비슷한 사건들이 이어진다. 다만 이번 주는 과제가 있습니다. 매일 대상 하나씩을 관찰하고 묘사 일기를 써오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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