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순의 날짜란의 25를 26으로 바꿔 적었다. 5에 선을 조금만 더해도 6이 되어서 둘의 사이가 가까워 보인다. 꼽표를 하지 않아도 바꿀 수 있는 해. 올해는 보신각의 종소리 서른 세 번을 전부 들었다. 왜 서른 세 번을 치는지도 알게 되었다.
1월 1일의 꿈에는 뜀박질을 했다. 쫓겨 달리는 뜀박질이 아니라 목적 없는 뜀박질을 했다. 꿈에서도 공기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서 목구멍이 마르고 심장이 찌릿했다. 멈춰서 숨을 고르며 본 풍경은 내가 가장 익숙한 풍경. 네이버에 해몽을 검색하지 않았다. 단서로 남겨두고 싶었다.
1월 1일에도 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하철에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정도.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장을 봐왔다. 떡국 떡과 국거리 소고기, 사골 국물. 재워둔 고기를 볶고 사골 국물이 끓자 차가운 물에 불린 떡을 넣었다. 내가 한 떡국은 남이 해준 떡국보다 간이 셌다. 그간 먹은 떡국들의 맛이 가물가물 해질 정도로 자극적인 맛이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다시 한 해가 왔다. 다른 날이었다면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을 사건들에 부러 긴 단서를 남겨두며 이곳이 반환점이라고, 또 다른 특별한 사건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걱정하며 한 해가 왔다. 새해를 빌어 타인의 안녕을 빌며 한 해가 왔다. 구독자 님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그다지 닮지 않아 보이는 세 남자가 우스꽝스러운 히어로 복장을 하고 나란히 서있다. 뒤로는 겹겹이 보랏빛으로 펼쳐진 능선이 보인다. 이 세 남자는 형제 사이다. 카메라 앞에 선 세 남자의 이야기는 가운데 선 남자, 맏형이자 영화 감독인 크리스티안 에인스호이의 집요함에서 시작한다.
이 가족에게는 슬픔이 하나 있다. 셋째의 죽음이다. 넷이었던 형제는 셋이 되었고 그 공백은 각자에게 다른 형태로 발현되어 있다. 이사에 집착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와 다투는 엄마. 멀리 떠나버린 둘째와 이 슬픔과 이어져있지 않은 막내까지. 가족 구성원은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소화하느라 그 슬픔을 차마 나누질 못했다.
감독은 카메라를 든다. 대단한 장비가 아니더라도, 작은 고프로일지라도 우선 카메라를 들어 찍는다. 그렇게 카메라에는 이사하는 아버지가 담기고, 어머니가 담기고, '내'가 담기고, 동생들이 담기고. 그렇게 담아놓은 푸티지들을 능숙하게 조합해 이야기를 만든다. 결국은 우리가 각자의 내면의 풍경을 들여다보기 위해 떠나는 일. 감독은 이야기를 잔뜩 펼쳐놓고 그래야만 한다는 듯 동생 둘을 데리고 여행을 떠난다. 툴툴대기도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면서 셋은 같은 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한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어느 산등성이. 화장실에서 각자 옷을 갈아입고 나온 이들의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민망해하기도 하고 서로의 모습을 보고 웃기도 하면서 셋은 나란히 카메라 앞에 선다. 슬픔 이후 자라난 각자의 풍경을 은유하듯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산맥과 거대한 돌덩이들을 뛰어 넘으며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 움직인다. 이 연출된 샷을 촬영하고 난 이후 이들의 관계는 달라졌을까. 조금 더 각자의 슬픔에 몸을 맞대고 돈독해졌을까. 모를 일이다. 어찌 됐든 이들의 현실은 영화가 됐다. '이야기'로써 손으로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금주의 음악 앨범
Spring
by 모호
트랙리스트
1. 걸프렌드
2. 캠퍼스러브송
3. 요구르트아줌마
4. 은희송
5. 실리걸
6. Min's Life
7. Hidden Track
앨범 Spring
아티스트 은희의 노을
발매 1999
길이 35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벌써 봄이 그립다. 새해 증후군의 일종이다. 이쯤 되면 슬슬 따뜻해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며 이른 봄 노래를 꺼내 듣는다. 일러도 너무 이른 설레발에 연일 강추위가 계속되는 서울에서 귀만 따뜻해진다.
오랜만에 꺼내 들은 은희의 노을의 Spring을 들으며 이들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이 Hidden Track에서의 음성 때문이다. 미발매곡과 데모 버전이 연달아 나오는 이 트랙 중간중간 나오는 이들의 대화는 너무도 반짝거려서 이렇게 반짝이던 사람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이들은 역시나(!) 스쿨밴드였다. 중학생 때 만난 기타와 보컬을 시작으로 결성된 밴드는 '은희'와 '노을'이라는 첫사랑의 이름을 따서 은희의 노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은희의 노을의 활동은 2001년 이후로 남아있지 않았다. 멤버 중 몇은 내가 알고 있는 인디 밴드의 세션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아직 연락을 하고 지낼까. 대뜸 새해 인사를 건네는 사이가 되었을까. 지금도 은희와 노을의 이야기를 할까.
같은 반 친구가 떠올랐다. 방학 때면 하루가 멀다하고 그 친구 집에 가서 같이 카드게임을 하고 수다를 떨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음악을 좋아하셨다. 집에는 내가 갖고 싶던 언니네 이발관 앨범이 전부 있었다. 나와 친구가 방에서 놀고 있으면 어머니는 거실에서 기타를 치셨다. 벽 너머 들려오는 기타 연주를 들으며 아늑한 방에서 별거 아닌 카드 게임으로 즐거워하고 따뜻해했다.
교대에 갔던 친구는 아마도 지금쯤 선생님이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으려나. 아직 오지 않은 봄 노래와 반짝이는 밴드가 보고 싶은 장면들을 기억하게 한다.
금주의 사진
어어 하다가
by 모순
어질러진 작년을 미처 치우지 못했는데 새해가 문을 열어버렸다. 반가운 손님이긴 하나 경황이 없을 뿐이다. 어제는 늦잠 자는 바람에 새해 첫날 약속에 늦어버렸다. 반가운 얼굴들이긴 하나 내 표정에 애매함이 붙어 있었을 뿐이다. 집에 돌아와서 쉬었다. 이제 사무실에 가서 밍기적 거릴 요량이었는데 전화가 한 통 왔다.
“나 큰일 났다.”, “무슨 일인데?” 5초 정도였을까. 라디오에서는 2초 이상 소리가 비어도 방송 사고라는데 대화 중 침묵의 5초는 정말 긴 시간이다. 손가락을 접으며 1초씩 세어보면 실감 난다. 난 그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정을 대입해봤고 이 친구가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정적이 깨지고, “나 실업자 됐어, 회사가 그냥 공중분해됐어.” 분명 안타까운 소식이나 한 숨 돌리고 대화를 이어갔다. 그 길로 나는 고향에 내려가 그 녀석과 다른 친구 한 명, 그렇게 세 명이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곤 20대 때 늘 그랬듯 오락실과 당구장을 오가며 내기를 했는데, 정작 위로의 당사자가 연패하는 바람에 그날의 모든 비용을 그 친구가 내게 됐다. 위로하러 갔다가 얻어먹은 셈이다. 방금 치킨 한 마리를 보내며, 술 대신 하루는 이거 먹으라며 어색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요지경 같은 새해 첫날. 못 치운 작년이 넘쳐 올해로 흘러들어온 기분이다. 썩 나쁘다고 그렇다고 좋을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이렇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