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045_25.12.19.
살면서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음악, 사진 하나씩만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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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두 번의 눈이 내렸다. 예전에는 마냥 눈이 좋았었는데, 눈 온 아침의 먹먹한 소리와 덮어쓴 후드 모자를 스치고 속눈썹에 앉는 눈의 느낌이 즐겁기만 했는데. 이젠 귀가를 걱정하고 넘어지지 않을까 조심조심 눈을 피해 걷는다. 어렸을 때 눈이 오는 날이면 현관에 벗어둔 부모님 신발에서는 왜 내 것만큼 눈이 녹아나오지 않을까 했던 의문이 이제야 풀려간다.
2025년을 정리하고 이제 2026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매년 그래왔듯 올해를 뿌듯해하고 후회하며 '올해의 OO' 리스트를 만들고 내년을 기대하고 걱정하며 내년에 행했으면 좋을 사소하고 원대한 약속들을 써둘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몇 번의 눈이 더 내릴 것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눈도 한번쯤은 내리겠지. 신발장이 흥건해지도록 눈을 골라밟으며 걸어다닐 날도 한번쯤은 있겠지. 두 해에 걸쳐있는 겨울의 한편에서 반대편의 겨울을 기대하며 새해의 다이어리를 고른다.
by 모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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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주의 다큐멘터리
<텅 빈 모든 방> by 모호
2. 금주의 음악 앨범
<Drive Slow>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그 사진 누구 거냐> by 모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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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텅 빈 모든 방
감독 조슈아 세프텔
개봉 2025
길이 34분
관람 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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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엘리펀트'를 기억한다. 치밀한 구조 안에서 학교 내 총기난사 사건(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에 끝내 다다르는 영화. 시놉시스를 전혀 읽지 않고 영화를 보곤 한동안 얼이 빠진 듯 영화-현실, 그리고 영화 윤리와 재현, 그를 위한 구스 반 산트의 장치들에 대해 생각했었다. 넷플리스 다큐멘터리 '텅 빈 모든 방'도 미국의 학교 내 총기 난사 사건들을 소재로 한다. 영화 '엘리펀트'가 그랬듯 뉴스 미디어에서 흔히 총기 난사 사건을 다뤘던 방식, (영화 중 주인공 기자의 말을 참고하자면) 피해자보다 가해자 혹은 영웅을 소비하는 방식에서 한발짝 떨어져있다. 이들이 시선을 돌린 건 피해자. 다큐멘터리 '텅 빈 모든 방'은 피해자 학생들의 텅 빈 방 사진을 찍는 기자 스티브 하트먼과 사진작가 루 보프의 이야기다.
'텅 빈 모든 방'은 어렵지 않게 이들의 추모 방식을 소개하고 같이 한다. 총기 난사 사건이 기록되는 방식에 대한 인터뷰에 이어 피해자의 부모를 직접 찾아가 피해자 학생의 남겨진 방에 들어가고, 아이의 흔적을 보여주고, 사진을 찍는다. 실은 이렇게 매끄럽게 진행되는 다큐멘터리를 보며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아마도 기자와 사진 작가의 작업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되며 생겨난 영상 문법, 그러니까 시퀀스, 인터뷰들, 인서트 컷, 편집의 목적이 너무나도 뚜렷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층적인 해석을 요구하는 성격의 다큐멘터리가 아니기에 모든 영화의 요소들이 당연하게도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작동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뉴스 미디어가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루는 방식에서 이 영화가 멀찍이 떨어져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한편으론 그럼에도 분명 필요한 영화일 것이라고 믿는다. 차마 정리하지 못한, 언젠가는 정리해야만 하는 공간을 기록하기. 추모의 과정, 슬픔과 상실을 소화해내는 과정의 중간에 있는 남겨진 마음을 거드는 이들을 영상 매체로써 말하게 하고, 설득하고, 알리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이 다큐멘터리는 그 역할을 다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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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리스트
1. Intro
2. Calvin's Joint
3. The Devil's in the Details
4. Slow Down
5. Should We Take the Van?
6. Show Me
7. Lonely
8. Easy
9. Change Ya Mi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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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Drive Slow
아티스트 Mac Ayres
발매 2017
길이 31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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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없이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흘러 지나가듯이 재생해둘 수 있는 앨범, 앨범이 주는 익숙한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한 앨범. 그럴때마다 습관처럼 집어드는 앨범 몇 중 하나인 Mac Ayres 의 Drive Slow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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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보던 해외 음악 웹진에 오랜만에 접속했다. 한때는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웹진을 훑으며 신보 소식이나 인터뷰를 찾아보곤 했지만 그 정도의 열정이 사라지고 나서는 몇 달에 한 번씩 겨우 들러 괜찮은 평을 받는 신보 소식을 챙겨보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올해도 역시 좋은 앨범들이 많다. 꾸준히 작업하는 아티스트부터 새롭게 등장한 아티스트까지. 그 중 몇 장을 골라 시간을 내어 듣다 보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분명 즐거운 일이다. 좋은 앨범 한장을 제대로 꼼꼼하게 듣는 일이 책 한권을 읽는 것에 못지 않다고 믿고 있는 나로서는 얼마든지 시간을 내어주는 취미의 일종이다. 하지만 언제나 음악을 그런 마음가짐으로 들을 수는 없는 법. 그런 의미에서 Drive Slow는 혼자 혹은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틀어두기에 참 편한 앨범이다. 첫째, 특별한 추억이 없으며, 둘째, 흥얼거리기 좋은 멜로디의 곡들로 꽉 차있고, 셋째, 누가 들어도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다. 한 마디로 특별히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앨범.
긍정적 의미에서 귀 기울이게 하지 않는 앨범의 소중함을 간과하고 있었다. 아마 그런 앨범의 리스트는 앞으로 더 늘어나긴 어려울 것이다. 새로운 앨범을 찾아내고, 아무렇지 않아질 때까지 틀어두고, 별 생각 없이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건 까다로운 일이니. 더 이상 새 앨범을 찾지 않는 리스너가 되고 싶진 않은데, 라는 오랜 걱정을 품고 나의 앨범 카테고리에 새롭게 정리될 낯선 앨범들을 뒤적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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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주인은 누구일까. 찍은 사람일까 아니면 찍힌 대상일까. 이 질문은 얼핏 철학적 고민를 요구하는 듯 보이지만 법은 간단히 답한다. ‘몇 조 몇 항에 의거, 저작권을 가진 자를 주인으로 인정한다.’ 남은 건 법률가들의 몫이다. 조항을 해석하고, 사실관계를 정리하며, 권리의 귀속을 증명한다. 신이 죽은 자리에 법이 들어와 앉은 듯하다.
이 사진은 내가 찍었다. 촬영한 순간도 기억한다. 그러니 내 것이다. 인물이 없으니 초상권 문제도 없고 의심의 여지 없이 내 것이다. 그런데 아닌 것만 같다. 나는 사진의 주인으로 충분치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진을 들여다보면 사람이 떠오르기도, 잊힌 풍경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도,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이 솟아나기도 한다. 사진과 오늘 사이 시간적 거리는 매번 달라져서 때로는 갑작스럽게 좁혀지고, 때로는 실제보다 멀어진다. 그 사이의 여백에서 감정과 감상은 율동하고 동요한다.
사진을 보며 떠오르는 그 무엇. 기억일 수도, 상상일 수도, 감정의 잔여일수도, 뭐라 말할 수 없는,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사진의 주인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사람이 같은 사진을 보더라도 그 주인은 매번 달라질 수 있다. 사진은 그대로여도 그것이 호출하는 세계는 같지 않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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