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045_25.12.12.
살면서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음악, 사진 하나씩만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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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한구석에서 비관의 맵시가 조금씩 도드라진다. 그것이 돌출돼 불안을 타고 끝내 체념이란 바닥에 닻을 내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비관도 불안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저 관리하고, 때로는 통제해야 할 뿐이다.
최근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생활을 굴리는 데만 쓰던 작은 근육들을 놀래키며, 다른 감각이 싹트길 바라는 마음이다. 시간이 지나 미세했던 근육들이 섬세해지면 일상에도 새로운 감정과 장면이 피어오를 것이다. 그런 믿음으로 호젓한 마음 안쪽에 좁다란 희망의 길 하나를 터놓는다. 그 길이 내년에 널찍해질지 가늘어질지 어쩌면 쓸려버릴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희망의 속성이라는 점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 (어쩌면 절망이란 확실히 보장된 미래일지도 모른다.) 한 손으로 더럽히고 다른 손으로 닦아내는 일.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반복될 그 나날을 이제는 납득해야 한다. 한 해가 저문다.
by 모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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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주의 다큐멘터리
<늑대의 입> by 모순
2. 금주의 음악 앨범
<Twin Fantasy>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콘센트는어디로이어지는지에대해> by 모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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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늑대의 입
감독 피에트로 마르첼로
개봉 2009
길이 76분
관람 DV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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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조는 9년, 4년, 그리고 다시 14년을 감옥에서 보낸 끝에 도시로 돌아온다. 그를 기다리는 사람은 감옥에서 만난 메리다. 두 사람에게는 꿈이 있다. 수평선이 보이는 곳에 집을 짓고, 벤치에 나란히 앉아 강아지와 함께 저 먼 곳을 바라보는 일. 엔조는 청춘과 조숙의 시간을 감옥에 잃어 거칠지만, 메리는 그의 서투른 말과 고르지 못한 행동 속에서 오래 잠겨 있던 소년의 따뜻함을 본다. 엔조는 그런 메리를 지키려 하고, 메리는 그의 곁에서 살아갈 이유를 얻는다.
이 둘의 이야기 사이사이 도시는 끊임없이 끼어든다. 1920년대 도시교향곡 다큐멘터리들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인간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던 시절, 카메라는 사람 대신 도시를 담아냈다. 그렇게 도시는 카메라 앞에서 하나의 생명체가 됐다. 이 영화 속 도시의 숨결은 쿰쿰하고 그 살덩이는 척박하다. 그래서인지 엔조와 메리가 공유하는 감정과 도시의 표면이 맞부딪치며, 두 사람의 살갗이 더 붉고 선명해지는 듯하다.
나는 이 영화를 세 번쯤 본 것 같다. 이상하게도 항상 같은 장면에서 잠든다. 두 사람이 집에서 카메라 앞에 앉아 말하는 모습. 호흡을 아는 연출자는 잠수라도 가능하다는 듯, 처음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되짚는, 편집 없는 메리의 말들이다. 그녀는 “그이가 수화를 가르쳐줘서 감옥에서 서로 멀 때 우리가 수화로 대화하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엔조는 “난 그런 거 모른다”고 답한다.
어느 쪽이 사실인지 따지는 일은 의미 없다. 기억은 정확하지 않아도 된다. 보이는 건 두 사람의 사랑이다. 20년, 그 긴 시간 동안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것, 그것만 느껴져도 충분하다. 화면 속 두 사람 그 편안함이 잠을 불러오는 것임을 이제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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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리스트
1. My Boy (Twin Fantasy)
2. Beach Life-In-Death
3. Stop Smoking (We Love You)
4. Sober to Death
5. Nervous Young Inhumans
6. Bodys
7. Cute Thing
8. High to Death
9. Famous Prophets (Minds)
10. Twin Fantasy (Those Boy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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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Twin Fantasy (Mirror To Mirror)
아티스트 Car Seat Headrest
발매 2011
길이 59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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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n Fantasy를 들으며 그때에만 가능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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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n Fantasy를 처음 들었던 건 20대의 초반이었다. 주민등록증이 이제 막 나온, 아직 어렸던 때, 스스로 온전히 하루를 구성하는 재미를 알아가던 때. 그땐 소년 같은 이 앨범을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1시간 동안 끈질기게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거친 질감의 이 앨범을 여러 번 돌려 듣기가 힘들었다.
다시 이 앨범을 들은 건 3년 전이었다. 으레 그러는 것처럼 듣고자 해서 듣게 된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이 앨범의 재녹음 버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20대 초반에 들었던 아주 거친 홈 레코딩 앨범의 기억이 떠오르고, 재녹음 된 버전과 당시 버전을 비교해보고 싶어지고, 이제 내가 그 앨범을 즐겁게 들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고. 재녹음 버전은 홈 레코딩 버전보다 훨씬 잘 정돈되어 있었다. 하지만 트랙이 넘어갈수록 한번도 회상하지도, 흥얼거린적도 없던 홈 레코딩 버전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후로 한동안 Twin Fantasy의 홈 레코딩 버전과 재녹음 버전을 번갈아 듣고 다녔다. 가끔은 이제 나이가 들어 조금 정리해 말할 수 있게 된 재녹음 버전이 듣고 싶어질 때도, 또 가끔은 자동차 뒷좌석에 구겨앉아 노랫말을 눌러남으며 녹음하는 홈 레코딩 버전이 듣고 싶어질 때도 있었다. 둘 중 하나를 고르자면 홈 레코딩 버전이 좋았다.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나는 소년일때에 소년 같은 마음을 담아본적이 없지만 2011년의 Twin Fantasy를 듣고 있으면 차가운 자동차 뒷좌석에 구겨 앉은 것만 같았다. 아마 쓰여지지 않은 일기와 탈락된 기억과 감정에 대한 아쉬움이 만들어낸 가짜 기억. 그때에만 할 수 있었던, 하지만 미처 하지 못했던 말과 행동들이 아쉬워지면 요즘에도 나는 Twin Fantasy의 두 버전 앨범을 번갈아 재생하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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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을 보고 걷는 습관이 있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많이 교정했지만 지금도 특별히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바닥을 본다. 바닥의 패턴을 파악하거나 떨어진 물건을 궁금해 하거나, 혹은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골라 밟거나, 아직 발자국이 없는 눈밭을 밟거나. 바닥에는 예상치못한 즐거움이 많다. 요즘은 가끔 놀라운 물건을 바닥에서 만나면 사진을 찍어둔다.
그렇게 찍게 된 이 사진은 집에서 막 나와 걷기 시작할 때 보았던 연결부가 끊어진 콘센트다. 어떤 경위로 이 물건이 바닥에 놓이게 되었을지. 콘센트라 함은 필연적으로 한쪽이 전기를 필요로 하는 물건에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데. 아마 가위로 잘린 것 같은 한쪽 끝이 뭉툭하고 어색했다. 아마 전자제품을 버릴 때에 잘라냈겠지. 그런데 왜 이렇게 애매한 길이로 잘라냈을까. 도저히 추리되지 않는 이 이상한 물건을 즐거워하며 사진을 확대했다가, 줄였다가. 결국 이어지지 않는, 툭 잘린 물건. 그러니까 물리적으로 싹둑 잘려버린 물건 뿐 아니라 갑자기 맥락 없이 하늘에서 내던져진 것만 같은 물건이 바닥에 있는 것이 참 재미있네. 말도 안되는 상황을 유추해야만 하는 그런 물건이. 이런 생각을 하며 지하철의 바닥 패턴을 세며 걸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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