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가 끝이 났다. 제대로 쉬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사실 특별할 일상이랄 것도 없다. 벌여놓은 일들을 수습하고 주어진 과업들을 수행하다보니 벌써 2025년이 다 지나가버리고 있다. 주도적으로 살아야지, 나도 이제 서른인데. 하는 생각에 잠시 빠지다가도 이만큼 제멋대로 살고 있는 서른이 요즘 세상에 참 흔치 않겠구나 싶어 머쓱해지곤 한다.
뜬금없지만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려 한다.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많이 적곤 했었는데. 매일 노트북만 두드리다보니 딱 두드리는 자판만큼의 생각만 한다. 적자. 나중에 알아보지 못하게 휘갈기더라도 손으로 적고 긋다보면 생각하는 맛이랄 것이 나기 마련이니까.
by. 모호
1. 금주의 다큐멘터리
<존 스미스 되기> by 모호
2. 금주의 음악 앨범
<Wish You Were Here>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눈이 간다> by 모순
금주의 다큐멘터리
존 스미스 되기
by 모호
감독 존 스미스
개봉 2024
길이 27분
관람 영화제
감독 '존 스미스'는 나이 든 영화 감독이다. '껌을 씹는 소녀', '블랙 타워', '시타델' 등 아방가르드 영화에서 성과를 이룬 영화들의 감독이기도 하다. 이제 긴 작품활동의 마무리가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그가 에세이 영화를 만들었다. 제목은 '존 스미스 되기'.
존 스미스라는 이름은 외국인인 내가 보기에도 꽤나 흔해 보이는 이름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말마따나 당장 구글에만 John Smith를 검색하더라도 나오는 유명인이 수십이다. 존 스미스는 자신의 흔한 이름으로부터 기인하는 보편성에서 그중에서의 나를 찾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이야기한다. 아주 유쾌한 톤으로. 때론 자학하고, 때론 연민하면서. 끝으로는 이제 나이를 먹어 죽음을 앞두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까지 유머러스하게 꼬집는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왠지 마지막일 것 같지 않다) 작품을 '나 되기'라는 비범한 제목의 에세이 필름으로 하는 감독의 야심. 존 스미스의 영화 여정을 마무리하기에 존 스미스 되기는 제격이면서도 그의 새로운 영화를 더욱 기대하게 한다.
금주의 음악 앨범
Wish You Were Here
by 모호
트랙리스트
1. Shine On You Crazy Diamond, Pts. 1-5
2. Welcome to the Machine
3. Have a Cigar 4. Wish You Were Here
5. Shine On You Crazy Diamond, Pts. 6-9
앨범 Wish You Were Here
아티스트 Pink Floyd
발매 1975
길이 44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핑크 플로이드 최애 앨범이 무엇인가요.
밴드의 최애 앨범을 물으며 그 사람을 가늠해보는 못된 버릇이 있었다. 저 사람은 The Dark Side of the Moon이 최애이군. 그중에서도 어떤 트랙? 저 사람은 시드 바렛 시절의 핑크 플로이드를 좋아하는군. 시드 바렛의 솔로 활동도 좋아하려나. 사실 멋대로 이러쿵 저러쿵 편견을 가진다기보다 음악 취향이 대충 어떻겠거니, 무슨 성향이겠거니 예상해보고 혼자 즐거워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핑크 플로이드에 얽힌 기억이 참 많다. 실은 Wish You Were Here은 나의 핑크 플로이드 최애 앨범은 아니다. 얽힌 기억을 전부 말하기에 최애 앨범을 가져오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라 적당히 좋아하는 앨범을 골랐다. 기억들 중 첫 번째는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다. 독특한 인물이었다. 은퇴를 앞둔 그는 말을 아주 천천히 나긋나긋하게 하고 무례한 학생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우아하게 치켜올려보이곤 했다. 1학년 담임 선생님이었던 그는 록 음악을 좋아하셨다. 고등학교의 첫 면담 시간, 취미란에 음악 감상을 적어간 나에게 어떤 음악을 듣느냐고 물었다. 쭈뼛쭈뼛 라디오헤드를 말했다. 선생님은 눈을 번뜩이며 7-80년대 록 밴드를 당장 들어보라고 일장연설을 했다.
그날 집에 가자마자 핑크 플로이드를 다운받았다. 어쩐지 퇴근한 선생님이 핑크 플로이드를 틀어놓고 여유롭게 손가락을 까딱까딱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금주의 사진
눈이 간다
by 모순
엄마의 엄마, 엄마의 둘째 오빠, 엄마의 강아지.
남쪽으로 5시간 내려가면 엄마에겐 가족이 있다. 엄마도 엄마가 있다. 엄마의 엄마는 벌써 90이 넘었다. 귀향길마다 엄마의 몸짓에는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애잔함이 있다. 더 늦기 전, 추석 3일 동안 나는엄마와 엄마의 엄마를 카메라에 담아두었다. 오랫동안 길게 길게.
창문밖 세 개의 시선이 포개진 곳에 엄마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 마음은 눈에 달렸나, 자꾸만 마음 가는 곳에 눈이 가나보다. 내가 든 카메라는 왜 자꾸만 강아지에 눈이 갔을까. 엄마의 고향에서 엄마를 엄마로 보는 것은 나와 강아지 뿐이였기 때문일까. 촬영된 영상을 돌려보며 생각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