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쓰고 싶었다. 매장에서 바지 몇 개를 입어봤다. 이제는 영락없이 34가 적절한 여유로 잘맞는다. 네 가지 색상을 입어보고 검정색만 구매했다. 59000원. 인터넷에서 구매했으면 더 쌌을 것이다. 그러나 내 목적은 물건을 사는 것, 돈을 쓰는 것이었다. 브랜드 로고가 찍힌 쇼핑백을 들고 매장이 즐비한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모가지를 앞으로 당기기 위해 채워놓은 일정을 클리어하며 살아가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어제는 뭐했고 그제는 뭘 했는지 기억해내는데 몇 분이 걸렸다. 돈을 쓰니 물건이 새로 생겼고 그것은 내 몸에 이틀째 달라붙어있다. 어제도 입고 오늘도 입고 있다. 어제 나는 바지를 샀다. 그 전에는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었다. 그 바지를 입고 사전답사를 다녀왔다. 그리고 작업실에서 편집을 했다.돈을 써서 뭐를 사면, 적어도 이틀은 기억력에 효력이 있다.
1. 금주의 다큐멘터리
<비크람: 요가 구루의 두 얼굴> by 모순
2. 금주의 음악 앨범
<Now>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잘못된 사진> by 모호
금주의 다큐멘터리
비크람: 요가 구루의 두 얼굴
by 모순
감독 에바 오너
출연 비크람 차우드리, 사라 본
개봉 2019
길이 85분
관람 넷플릭스
한 심리학자는 극단주의를 정의하려면 세 가지 요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배타성, 광신, 강요다. 극단주의자는 내가 속한 내집단이 아니면 외집단 모두를 배척한다. 차폐적 애착이다. 극단주의자는 합리와 이성에 기반하지 않은 믿음에 집착한다. 이런 상태의 사람과 근거를 기반으로 하는 논증이나 토론은 불가하다. 마지막으로 극단주의자는 타인에게 강요한다. 이렇게 세 축을 모두 갖춘 사람이나 집단만이 극단주의라 칭하지 않으면 너무 많은 대상이 극단주의에 내포된다며 심리학자는 주장한다. 배타적이고 근거없는 신념이나 가치관을 가지고 있더라도 남에게 강요하지 않으면 극단주의는 아니라는 것이다. 주워 읽은 지 얼마 안돼 이런 생각이 뒷머리에 돌아가고 있었나보다. 넷플릭스를 휘적이다가 <비크람: 요가 구루의 두 얼굴>을 발견하고 그가 극단주의자인지 아닌지만 주의깊게 봤다.
미국에서 요가 프랜차이즈를 성공시킨 인도 출신 요기 비크람. 그의 허락이 없으면 프랜차이즈 지점 라이센스를 열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의 그의 요가 강사 9주 프로그램에 몰려드는 이유다.
그는 자신의 요가가 모든 비만, 관절염, 요통, 복통 등 모든 질병을 치료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닉슨 대통령이 자신의 두 번째 제자였고 그의 질병을 치료한 대가로 미국 영주권을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근거는 없다.
그의 수업은 강압적이다. 자신은 신의 위치에 있으며 자신의 방법이 싫으면 떠나라고 한다. 그는 이곳에 와서 강사 수업을 듣는 사람들의 약점을 안다. 여러 치료법을 전전긍긍하다가 마지막 기대로 요가를 배우는 사람들, 요가 강사로 지점을 열어 수입을 꾸려가려는 사람들, 그런 여성들. 그는 그런 여성들에게 자신의 요가뿐만 아니라 잠자리도 강요했다.
그는 실력있었다. 그의 요가는 효과가 있었다. 그는 남성들에게 젠틀했다. 그런 남성은 그를 구원이라 여겼다.
그럼에도 그는 극단주의자가 맞다.
금주의 음악 앨범
Now
by 모호
트랙리스트
1. 햇님
2. 바람
3. 봄 4. 나도 몰래
5. 불어라 봄바람
6. 당신의 꿈
7. 아름다운 강산
8. 고독한 마음
9. 비가 오네
10. 가나다라마바
앨범 Now
아티스트 김정미
발매 1973
길이 40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어떤 목소리는 아무렇지 않게 삶을 말한다.
한 글자로 된 한글 단어는 오묘하다. 괜히 한번 소리내어 발음해보고 그 뜻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곤 한다. 한강 작가는 '숲'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고 했다. 숲, 숩, 수웁. 이 사이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섞인다. 삶은 삶, 살-ㅁ, 삼. '살다'에서 파생됐을 이 단어는 비대칭한듯 네모 박스를 꽉 채우고 약간은 내뱉듯이 발음하게 된다.
다만 한글 가사가 듣고 싶었던 것도 같다. 그렇게 복잡하지 않게 쓰이고 또 말해지는 그런 음악. 그러자니 한국의 오래된 앨범부터 눈으로 주욱 훑었고 그러던 중 김정미의 앨범이 눈에 띄었다. 김정미는 신중현 사단의 가수 중 하나다. '신중현'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역시 수준높은 사이키델릭 사운드로 앨범이 가득 채워져 있다.
물론 곡들 자체만으로도 훌륭하지만, 다른 신중현 사단의 앨범들보다 이 앨범에 유독 마음이 기울었던 건 김정미의 목소리 때문이다. 아주 힘 있지도 않지만 유려한, 그리고 섬세한 목소리는 한글 가사를 꾹꾹 눌러 읊는다. 가사는 삶에 대해 직접적으로, 또 거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저 말한다. '삶', '숲', '새', '집'을 발음하는 것처럼, 여느 특별할 것 없는 단어들을 조합해가며.
금주의 사진
잘못된 사진
by 모순
이 사진은 잘못된 사진이다.
나는 이 사진을 내가 가지고 있는 중형 필름카메라로 찍었다. 필름은 흑백 필름. 아마 4년 전, 중형 필름카메라를 산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신중하게 노출을 맞추고 화면을 정렬하고. 숨을 참고 셔터를 눌러 찰칵.
총 12번의 셔터를 누르고 펴졌던 필름을 다시 돌돌 말아 필름 현상소에 가져가기. 하루를 기다리면 현상소에서 필름의 현상과 스캔까지 마쳐 압축 파일 하나를 메일로 보내준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파일을 확인해보면 꼭 하나씩 잘못된 사진이 있다.
노출이 맞지 않았다. 현상도 잘못된 모양이다. 아니, 스캔이 잘못됐을지도. 다른 곳은 전부 어두운데 마치 핀 조명을 맞은 것처럼 피사체만 동그랗고 밝게 보인다. 잘못된 부분을 하나하나 따져보며 사진을 한참 뜯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