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호_25.09.26
살면서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음악, 사진 하나씩만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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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어느 한적한 게스트하우스의 주방에 앉아있다. 통창으로 된 주방은 녹음으로 둘러싸여 울퉁불퉁한 원목으로 꾸며져있다. 관리자 할머님이 아침에 꽃병에 꽂아두신 구불구불한 붉은 꽃이 탁자 한 구석에 놓여있다. 창문 너머로 검은 고양이가 서성이다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 일행 말고는 아무도 없어서 풀벌레 우는 소리와 내가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 책장 넘어가는 소리만 들린다.
어제 광주에 도착해 술을 마시고 잠들기 전 모호순을 써야지, 하고 다큐멘터리 꼭지의 글을 만지작거리다가 그만 잠에 들어버렸다. 꿈 없는 잠을 잤다. 아주 약간의 숙취가 있지만. 고요한 곳에 앉아 차분히 시간을 보내며 평소보다는 덜 급한 글을 써야지, 늦더라도 시간 내어 읽을 만한 글을 써야지 다짐했다.
매번 넋두리 같은 글을 쓰는 것 같다. 차라리 개인 블로그였다면 작정하고 넋두리를 늘어놓겠지만 어쩐지 타인의 메일함에 들어가는 글에 그 정도의 마음을 우겨넣어도 괜찮은가 싶어 애매한 넋두리에 그치고 만다. 넋두리를 하지 않으면 될 일이지만 다큐멘터리, 음악, 사진을 주제로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그것밖에 없다. 쓰다보면 나아지겠지,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글을, 너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마음을 담아 보내드려야지. 이런 생각을 하며 토스트를 한입 베어물었다.
by 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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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주의 다큐멘터리
<성스러운 전기> by 모호
2. 금주의 음악 앨범
<Bluedawn>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반복> by 모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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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한 남자의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잘 정돈된 4:3 비율의 화면에 잘 정돈된 죽음이 담긴다. 그 프레임의 근처를 멤도는 남자 둘이 있다. 죽음을 맞이한 이를 가운데에 두고 혈연으로 맺어진 사촌 지간의 두 사람. 교집합을 잃은 둘은 죽음 후에 새로운 교집합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아버지와 아들처럼, 형과 동생처럼 같이 있다.
영화는 스토리보다 그 둘을 담기에 여념이 없다. 한 고물상에서 녹슨 십자가가 든 여행 가방을 발견한 둘은 십자가에 조명을 둘러 네온 십자가를 만든다. 그리고 우연처럼, 또는 목회처럼 네온 십자가를 잔뜩 만들어 팔기로 한다.
그렇게 둘은 낡은 자동차에 십자가를 싣고 도시 외곽을 돌며 방문 판매를 한다. 도시의 외곽에는 도시에서 밀려난 이들이 있다. 트랜스젠더, 집시, 아침잠을 깨워 커피를 파는 여성 등을 만나며 둘은 같이 있기도, 헤어지기도 한다.
영화제에서는 이 영화를 '다큐픽션'으로 범주화했다. 장르라는 것을 구분짓기 일찍이 포기한 나로서는 '다큐픽션'이라는 섹션에 끌렸다기보다 시놉시스에 강하게 매료됐다. 누군가를 잃고, 또 다시 만나는 수행과 같은 여행길에 대한 이야기. 느슨한 연대와 하얀 실끈 같은 사랑은 언제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영화가 상영되는 상영관 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평일 오전,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빈 자리가 대부분인 상영관에서 잘 짜여진, 그리고 대부분 카메라가 고정된 샷들을 보며 안전함을 느꼈다. 그 누구도 해칠 마음이 없는 영화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내 삶도 딱 저만큼만 시끄러웠으면 좋겠다, 하며 한 시간 반만의 꿈에서 깨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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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리스트
1. 집착
2. Body
3. 스무살 4. Paper Doll
5. 시념
6. April
7. 자위
8. 푸른자살
9. 푸른새벽
10. 소년
11. 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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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Bluedawn
아티스트 한희정
발매 2003
길이 36min 55sec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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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의 목소리를 들으며 습관처럼 기억에 기대었다. 과거에 잠시 들렀다 오는 길, 나의 생일과 가까웠던 한겨울의 공연이 떠올라 지하철에서 한창 생각에 빠져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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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 있는 12월이면 항상 연말 공연이 빼곡하다. 아티스트에게도, 또 사람들에게도 공연은 한 해를 잘 녹여 삼키기에 따뜻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는 잘 된 일이다. 그간 보고싶고 놓치고 있던 가수의 공연을 생일 근처로 예약해 스스로에게 선물해주곤 했다. 가장 먼저 기억나는 건 아마 스물 셋의 '끝없는 잔향 속에서 우리는'과 스물 여섯의 '한희정'.
스물 여섯은 회사를 다닐 때였다. 회사에 적당히 적응하게 되면서 야근과 비슷한 하루들에 지쳐 있던 겨울, 한희정의 공연 소식을 접했다. 한희정은 내 속만 썩어들어갔던 나의 사춘기를 책임지던 가수 중 하나였다. 더더, 푸른새벽, 그리고 솔로 활동에 이르기까지. 나의 사춘기가 무난히 지나갔다고 말하는 엄마의 말과는 달리 당시 나는 감정적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별일 아닌, 어쩌면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들이었지만 그땐 그랬다.
한희정의 연말 공지에 덧붙여진 문장에 하던 업무를 잠시 멈췄다. '오랜만이자 마지막으로 푸른새벽의 노래를 부릅니다.' 한희정의 다른 활동도 애정했지만 푸른새벽의 음악은 특히 사춘기 중학생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푸른새벽은 일찍이 해체해 더 이상 공연으로 들을 수 없는, 나에게 고전 소설 같은 지위에 올라있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공연을 예매했다.
공연 당일, 무대에 홀로 올라온 한희정 씨는 오랜 마음을 고백하듯 끝없이 푸른새벽의 노래를 불렀다. 나는 안경도 없이, 흐릿하게 보이는 한희정 씨가 노래하는 방향을 보며 마음껏 기억에 들렀다. 들를 곳이 왜 그리도 많던지, 노래는 적당히 느리게 나를 따라와줬다. 기억 속엔 대개 나 혼자 있었다.
공연장 밖은 뼈가 시릴 정도로 추웠다. 현재에 충실하지 않아서 기억에 집착하는가보다, 내년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속으로 다짐했던 것 같다. 놀랍게도 현재에 제법 충실하게 임하는 지금도 기억 집착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달라진 점은 기억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시간이 빠르다는 것. 올해 연말엔 나에게 어떤 공연을 선물해줄지 기분 좋게 기다릴 수 있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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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도 없이 책도 없이 지하철에 서있다. 마음껏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이내 질린다. 사람의 손길만 남은 것들에 눈을 옮겨 여기저기 뜯어본다. 찍을 만한 게 있을까 되뇌인다
네 정거장 지났을 쯤 패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의도는 패턴에 담긴다. 즉 반복. 반대편에 손잡이가 보인다. 초록색. 저 뒤로 빨간색 손잡이도 출렁인다. 왜 빨간색이지. 빨간 손잡이가 바닥과 더 가깝다.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사람을 위한 높이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반대편 칸을 응시한다. 초록색이 즐비하고 다시 빨간색이다. 빨간색이 더 낮다. 우연인가.
다음 정거장, 사람들이 내리자 오른편에 빨간 손잡이가 드러난다. 역시 낮다. 세 번이나 같은 패턴. 의도된 것인가. 세 번이 필요했다. 반복이 세 번되면 의도라 읽힌다. 네 번이 되면 확신으로 마음은 기운다. 의도는 반복에 담긴다. 세 번이 넘어가면 우연과 멀어진다.
내게 일어난 반복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세 번이상 들었던 말, 세 번이상 뱉은 표현, 세 번이상 만난 사람, 세 번이상 마주친 장면. 목적지를 지날 칠 뻔했다. 어제와 오늘 포개진 생각이 무엇이었더라. 10분 뒤면 또다시 나는 새로운 장소에 도착할 것이다. 새로운 장소와 사람, 이번 달만 벌써 세 번이 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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