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므라이스를 시켰다. 눈 앞에 널따란 창문 밖 은행나무가 바람에 흔들린다. 두 시간 정도는 멍하니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대학시절 자취방을 구할 때가 생각난다. 당시 나는 빛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무감했다. 한창 자취방을 구하는 중 부동산 중개인은 이 방이 넓이 대비 저렴하다고 했다. 학교와 거리가 멀고 빛이 잘 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 없었다. 들어오는 빛 마저 암막으로 막고 조명하나 키면 그게 좋았다. 통창 밖 은행나무가 계속 흔들리고 있다. 비 온 뒤 선명함과 습기 없는 바람, 조명 없이도 환하게 실내를 비추는 빛. 이제는 이 햇살이 좋다. 넓은 창밖으로 햇살에 흐물대는 초록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는, 그런 공간에서 생활하는 게 꿈이다. 이곳 오므라이스는 참 맛이 없다. 김밥천국이다. 오후 2시 30분 홀로 앉아 나만의 소박한 천국을 그려봤으니 그걸로 됐다.
by 모순
1. 금주의 다큐멘터리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by 모순
2. 금주의 음악 앨범
<Knower Forever>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편안한 의자> by 모호
금주의 다큐멘터리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by 모순
감독 Kirsten Johnson
출연 Dick Johnson, Kirsten Johnson
개봉 2020
길이 89분
관람 넷플릭스
감독 자신과 그녀의 아버지가 출연자다. 감독은 30년 이상 경력을 지닌 프로 다큐멘터리스트로 그녀가 직접 아버지의 죽음을 찍는다. 감독은 아버지의 죽음을 여러가지 상황으로 시뮬레이션한다. 정신과 의사였던 노년의 아버지는 딸의 지시에 따라 죽는 자신을 직접 연기한다. 촬영 현장과 과정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아버지의 죽음은 연출된 상황임을 계속 드러낸다. 현실과 연출사이 감독은 서있다. 아버지의 죽음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다. 80대 노인에게 죽음이란 아무때나 아무렇지 않게 불현듯 올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은 흔한 것이므로.
P.S. ‘다큐픽션’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두 작품을 모호와 함께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보고왔다. 둘 다 매혹된 작품이 있었다. 아마 모호가 다음 주에 쓰지 않을까. 고작 2일이라는 시간만에 감상을 잘 전달하기에 내 사유는 남루하고 글쓰기는 더 초라하기에.
금주의 음악 앨범
타워레코즈
by 모호
트랙리스트
1. Knower Forever
2. I'm the President
3. The Abyss 4. Real Nice Moment
5. It's All Nothing Until It's Everything
6. Nightmare
7. Same Smile, Different Face
8. Do Hot Girls Like Chords?
9. Ride That Dolphin
10. It Will Get Real
11. Crash the Car
앨범 Knower Forever
아티스트 KNOWER
발매 2023
길이 44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문득 랜덤재생된 KNOWER의 곡에 도쿄가 떠올랐다.
도쿄를 2번 가봤다. 그때마다 디스크 유니온과 타워 레코즈를 빠지지 않고 들렀다. 이 매력적인 듀오의 앨범은 타워레코즈에서 흘러나와 알게 되었다.
그 두 곳은 나에게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중에서도 신주쿠 디스크 유니온은 반나절을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도 괜찮을 만큼의 매력적인 가게였다. 대개 중고 음반이 구비된 가게인데, 넓지 않은 공간으로 4~5층 건물을 차지하고 있다. 각층마다 담당하고 있는 음악 장르가 있고, 그에 맞는 음악이 선곡되어 흘러나오고 있으며 장르에 아주 잘 어울리는 종업원이 그곳을 관리하고 있었다. 나에겐 상당히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이토록 세심하고 풍부하게 리스너들이 음악을 즐길 수 있다니. 도저히 음악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정말 반나절을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반가운 앨범들을 만지작거리고, 처음 보는 앨범 중에 관심이 가는 것들을 디깅하며 한동안 굳어있던 나의 음악 풀을 말랑하게 만드는데 여념이 없었다. 앨범 몇 장을 샀던 것 같은데. 어떤 앨범을 샀는지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작업실에 몇 장, 집에 몇 장이 있을 것이다.
아직 음악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 디스크 유니온과 타워레코즈, 그외에도 들렀던 도쿄의 중고 음반 가게들을 떠올리니 가슴이 뛰고 마구 수다를 떨고 싶어지는 것을 보아하니.
금주의 사진
편안한 의자
by 모호
길을 걷다가 의자가 잔뜩 들어차 있는 전시장을 마주쳤다. 어플 '오늘의 집'에서 의자를 가져다놓고 마음껏 앉아볼 수 있게 하는 팝업 같은 공간이었다. 천국이 따로 없는 공간에서 의자들을 맘껏 구경하고 만져보고 앉아봤다. 이 의자는 좀 불편하네, 이 의자는 내 몸에 딱이다. 그동안은 생애주기를 마친 의자들만 사진첩에 가득 채워넣다가 삶이 막 시작된, '앉기'를 위해 그 목적을 마음껏 수행하고 있는 젊은 의자들을 카메라에 담으니 기분이 묘했다. 어느 한 검은 의자가 내 몸에 아주 착 붙었다. 외국 어느 나라에선 첫 월급을 받으면 자신만을 위한 비싼 의자 하나를 스스로에게 선물한다고 했다. 의자 사진을 찍어 모으지 않을 적에 누군가가 나에게 비밀처럼 해주었던 이야기다. 본인도 첫 월급을 받으면 의자를 사겠다고. 잊고 있었다. 그는 의자를 샀을까. 집을 옮기면 나도 나에게 의자를 선물해야지, 저 검은 의자가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