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호다. 10호의 여는 글을 쓴 날이 아직 선명한데 그 세 배에 이르렀다니. 이 메일을 발송하고 그간 보내왔던 글들을 훑어볼 예정이다. 마음을 다한 글도, 그렇지 못한 글도 많다. 후회가 되진 않는다. 풍부한 한 주를 보낼 때도, 단조롭기 짝이 없는 한 주를 보낼 때도 있는 법이다. 쌓여간다는 사실에 그저 위안을 얻고 싶다. 그만두지 않고 자판을 두드리고는 있구나. 그리고 매주 그 글을 메일함에서 여는 수고를, 때론 답장을 남겨주는 이들이 있구나.
그림과 음악, 목소리. 화려한 컨텐츠의 시대에 보기엔 다소 단조로워 보이는 이 세 가지 재료로 알렝 레네는 영화를 만든다.
게르니카는 세계 2차 대전, 독일군이 스페인 게르니카 지역 일대를 비행기로 폭격하는 참상을 신문으로 보고 피카소가 그린 그림이다. 영화는 그림을 비추며 나레이션으로 사실과 시를 읊는다. 텍스트는 음악, 그리고 그림과 엉겨붙으며 마치 화학 반응처럼 작품을 완성해낸다. 이 세 축의 협업은 마치 게르니카의 참상을 각 작업자의 방식대로 창작해낸 독립적인 작업처럼 느껴지기도, 상호보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며 러닝타임 내내 엎치락 뒤치락한다.
영화의 원초적인 매력을 극대화한 것일지도 모른다. 미술, 음악, 사운드, 각본 등 요소들이 엉키며 '영화'라는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 가장 단순한 구성처럼 보이는 '게르니카'에 그 핵심이 드러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금주의 음악 앨범
Ego Death
by 모호
트랙리스트
1. Get Away
2. Gabby
3. Under Control 4. Go With It
5. Just Sayin/I Tried
6. For the World
7. Girl
8. Special Affair
9. Somthing's Missing
10. Partners in Crime Part Three
11. Penthouse Cloud
12. Palace / Curse
앨범 Ego Death
아티스트 The Internet
발매 2015
길이 57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Ego Death>가 발매되던 해를 정확히 기억한다. 그 해에는 Frank Ocean의 Channel Orange, 위켄드의 Beauty Behind the Madness도 발매되었다. 그리고 나는 고3이었다.
앨범을 들으면 특정 장소가 떠오르는 경우가 있는데, Ego Death의 경우엔 두란노 독서실, 가장 안쪽 자리에 있던 내 지정석이 떠오른다. 대부분의 독서실이 그러하듯 딱 한 칸짜리의 책상, 스탠드와 하얀 커튼이 한 세트인 자리가 닭장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양새의 방이었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독서실로 가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 목적은 (당연히도) 공부를 하기 위함이었는데, 실은 맘처럼 되질 않았다. 수학을 끔찍히 싫어하던 나는 독서실에서만큼은 국어와 영어 공부를 핑계 삼아 지문을 읽곤 했고 귀에는 항상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그땐 귀로 듣는 세상이 가장 넓었다. 음악으로는 영국에도 갔다가, 컴튼에도 갔다가, 애틀란타에도 갈 수 있었다.
Ego Death가 발매되고 내가 탐험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인 웹진들에서 그들은 한동안 가장 핫한 그룹이었다. 싸구려 이어폰으로도 음악에 대한 그들의 스탠드와 레이어를 가늠해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 이상하게도 2015년엔 좋은 앨범들이 참 많이 발매됐다. 아마 아닐 것이다. 2016년에도, 2017년에도 좋은 앨범들은 쏟아져 나왔다. 그래도 나는 아마 평생 '2015년은 기억할만해', 중얼거리며 앨범들을 꺼내어 들을 것이다. 즐거운 일이다.
금주의 사진
우연히
by 모순
우연히 찍혔고 우연히 발견했고 우연히 동그리미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는 진부한 말은 간절함에서 비롯된 염원의 주문일지도 모른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도 시간을 기다릴 수 있다면, 삶이란 총체를 이루는 일상은 어쩌면 많이 달라질 수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