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잤다. 긴 꿈이 끝나고 아쉽다고 느낄 즈음 눈이 번뜩 떠졌다. 머리 맡에는 모호순을 쓰던 창과 꺼진 휴대전화가 놓여있었다. 아. 늦잠이다. 하필이면 오늘은 모순의 촬영을 도와주기로 한 날이었다. 정신없이 옷을 입고 물건을 챙기고 택시를 불렀다. 택시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도착지인 사당역은 43분이 남았다. 어제 쓰다 만 글을 정리하고 답답한 마음에 여는 글이나 다시 쓰고 있다.
오랜만의 늦잠이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꼭 알람을 5개씩 맞추고 배개를 툭툭 두드리며 6시... 6시... 6시...를 외치고 잤는데. 한강을 건너고 있다. 내 맘을 알기나 하는지 푸르른 풍경이 아름답기만 하다. 긴 하루가 될 것 같다.
하라 카즈오 감독의 영화를 두 번째로 소개한다. 전에 소개한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만큼 끈질긴 작품이다. 굉장히 긴 러닝타임의 영화인데,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두 번의 인터미션을 갖고 보았다. 긴 러닝타임에 비해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인상적으로 보았다.
영화는 수은 중독으로 인해 미나마타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그린다. 그들은 거대 권력에 보상을 요구하고, 사과를 요구하지만 권력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정부는 그들을 가짜 환자 취급하다가 결국 의례적인 해결로 마무리하려 했다. 하지만 환자들은 굴하지 않았다. 권력에 맞서 끝까지 병의 원인을 인정받고 사과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저항한다. 영화는 그들의 그러한 과정을 역시 끈질기게 쫓아간다. 너무나 친밀해져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달라붙어 그들의 삶과 그속의 유머, 슬픔까지 모조리 카메라에 담아 낸다. 그 가운데 등장인물들은 단순히 환자가 아닌 하나의 인간이 된다.
하라 카즈오의 작품은 늘 그렇다. 끈질기다. 인간을 집요하게 바라본다. 그러면 욕망이 조각되듯 서서히 드러나서 영화가 끝나고 나면 내가 마치 한 사람을 오래도록 바라본 것처럼 느끼게 한다. 납작한 인물을 만들지 않으려는 카메라. 정답은 없겠지만 집요함이 다큐멘터리에서 결국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의 의무가 아닐까.
금주의 음악 앨범
청소년
by 모호
트랙리스트
1. Rhythm
2. Lean on the Magic Tree 3. The Fallen Star 4. Rosy
5. Jelly
6. Himawari
7. 'Till The Clouds Break
8. Passion (King Wadada Dub)
9. Red Flower
10. Water Blue
11. Renezvous
앨범 11
아티스트 UA
발매 1996
길이 60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청소년기가 떠오르는 앨범들이 있다. 주로 락 음악에 치중되어 있는데 몇몇의 다른 장르의 앨범들도 있다. 특히 그런 앨범들은 특별한 때에 듣고는 했는데, 그래서인지 어떤 기억과 결부되어 오래도록 생각난다.
UA, 릴리슈슈의 모든 것에서 온라인 상에서 에테르를 논할 때 짧게 그 이름이 언급된다. UA도 에테르 음악인가. 영화를 볼 때 그의 이름을 보고 한참을 생각했다. 나의 대답은, 그럴지도.
UA의 음악을 떠올리면 중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그땐 한국의 인디 록을 주로 들었었는데, 가끔은 일본 음악을 섞어들었다. UA는 특히나 야구를 하고 들어와서 즐겨들었다. 나는 당시 야구에 미쳐있었는데, 모든 프로야구 경기를 챙겨듣고 틈만 나면 야구 친구와 글러브를 챙겨들고 캐치볼을 하곤 했다.
야구를 하고 오면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가만히 서서 공을 던지는데 왜 이리 덥던지. 시커멓게 탄 목을 하고 돌아와 당시 쓰던 엠피쓰리 기능이 있는 휴대전화에 이어폰을 연결해 가만히 앉아 노래를 들었다. UA의 음악은 당시의 나에게 아주 독특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땀을 식혔다. 요즘도 UA의 음악을 들으며 손가락을 톡톡 두드린다. 야구를 하고 싶네. 연패 중인 나의 응원 팀을 떠올린다.
금주의 사진
고갈
by 모순
어쩌면 두 사람은 서로를 모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둥실 떠다니는 다른 차원에서는, 이미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이동 중 쏟아지는 졸음에 고개를 떨구면, 바닥 너머로 또 다른 세계가 열린다. 푹푹 찌는 날에도 긴바지에 셔츠, 그리고 마스크를 나눠 쓴 두 사람. 어쩌면 그들은 부부일지도 모른다.
팔뚝의 굵은 힘줄 위로, 왕성했던 청춘의 흔적이 불쑥 솟구친다. 나는 그들을 한참 바라보다, 결국 사진까지 찍어버렸다. 마치 전성기 같은 한 주를 보내고 있다. 이 메일이 도착할 즈음이면 나도 눈을 뜰 것이다. 마침내 금요일. 오늘이 지나면, 나도 어딘가에서 고개를 떨궈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