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다큐멘터리를만들때그인물의개성을작품전체에투영하고싶은건감독의 자연스런 욕망일것이다. 이 영화도 그런 시도가 엿보인다. ‘Less, but better’, ‘최소한으로그러나더’. 그런연출이가능할까. 흔적을발견할수는있었다. 타이틀시퀀스에는오직디터람스만오프닝크레디트과함께등장한다. 음악은 거칠게 이어 붙인 듯한 솔로현악기(바이올린아니면비올라?)의 질감을 사용했고, 자료 사진에는흔히쓰이는 디지털줌인Zoom-in, 줌아웃Zoom-out도없다. 그래픽은 흰/검/회무채색에 머문다. 이런 연출 선택은 전반적으로담백한뉘앙스를자아낸다.
디터람스는 1970년대스스로가어마무시한플라스틱을찍어내고있다는사실을깨달았다고한다. 이는 ‘지구에가치를더하는디자인은무엇일까’라는질문으로이어졌고그답으로디자인원칙 10가지가탄생했다. 다큐멘터리는나뭇잎틈으로들어오는빛으로시작해서숲속산책하다벗어나는디터람스의모습으로마무리 된다. 감독은자연과곁을나누는디터람스를보여주고싶었던것일까.
어찌되었건이 영화가 내게 남긴 건디터람스의강렬한눈빛이다. 주름진 얼굴과 대비되는 뚜렷한 눈매. 그눈빛은 여전히 불만 많고 질문이 가득한 청춘의 현역디자이너였다. 눈빛은늙지않는다.
금주의 음악 앨범
짧은 휴가의 시작
by 모호
트랙리스트
1. Zuttomae
2. Baby Blue 3. Slow Days 4. Sunny Blue
5. Night Cruising
6. Shiawasemono
7. Subarashikute Nice Choice
8. Atarasshiihito
앨범 Kuuchuu Camp
아티스트 Fishmans
발매 1996
길이 46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모순과 짧은 휴가를 왔다. 이곳은 경상북도 영양이다. 초가집처럼 생긴 독채의 앞에서 캠핑 의자를 펴놓고 몸을 묻고 맥주를 마시고 있다. 휴가의 첫 앨범을 고르기 위해 애플 뮤직 보관함을 뒤적거리다가 피쉬만즈의 앨범을 골랐다. 녹음에 둘러싸여 듣기에 제격인 앨범.
오랜만의 여름 휴가다. 특히 와이파이조차 되지 않는 휴가는 거의 처음인 것 같다. 이곳에는 아무런 소음이 없다. 작은 풀벌레 소리와 내가 틀어놓은 피쉬만즈의 멜로디가 전부다. 이토록 피로하지 않은 공간이라니. 도시를 좋아하지만 가끔은 피로하다. 원치 않는 음악 소리와 도시의 소음들, 넘쳐나는 컨텐츠들. 그것들이 역류하듯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태초에 인간은 이렇게 살았을 것이다. 녹음 속에서 풍류를 즐기며. 지금의 나처럼 헤세의 '유리알 유희' 같은 소설책이나 펼쳐놓고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며 정직한 노동도 했을 것이다. 도착한지 2시간도 되지 않았지만 도시에서의 삶이 먼 세월 전의 일처럼 느껴진다. 곧 고기를 굽고 영화를 볼 것이다. 내일은 아핏차퐁의 영화 2편을 보기로 했다. 아주 느릿한 영화들을. 시간이 아주 느릿하게 흐르는 영화들을. 어느덧 공중캠프 앨범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나가고 있다. 다음 앨범을 뭘 듣지. 다음 페이지에는 무슨 문장이 나오려나. 걱정과 기대 따위 없는 생각들을 하며 하루가 썰물처럼 흘러가고 있다.
금주의 사진
우연을 가장한 필연
by 모호
휴대전화 갤러리를 뒤적거리다보면 언제 찍혔는지 모를 사진들이 있다. 손가락에 가려져 주머니에서 찍혔거나 길거리에서 잘못 버튼을 누른 사진들이다. 그런 사진들을 지우지 못한다. 예상치 못한 순간과 시간을 기념하기에 이만한 사진이 없다는 것을 이제 안다. 아니, 어쩌면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는 사진들. 조월의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는'을 흥얼거린다.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쓸 때 이런 사진들을 커버로 글을 쓰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혼자 소주를 마시고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던 때를 떠올리곤 하는데, 그때 술에 취해 잘못 찍힌 사진들을 보고 있자면 공들여 찍은 사진보다 깊은 기억들이 부유한다. 떠오르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눈을 반만 뜨고, 아무도 없는 경기도의 어두운 거리를 걷고, 입에 담배를 물고. 이젠 그런 짓을 하지 않지만, 다시 한번 말하듯 나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같은 사진을 보며 생각한다. 역시 이만한 사진이 없다고. 갤러리에 수상한 사진들이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