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두었던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일은, 그동안 듣지 않고 있던 인터뷰들의 음성을 듣는 것이었다. 질문하는 내 목소리 뒤에 따르는 목소리들. 때론 머뭇거리기도 하는 두 목소리들 사이에서 묘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분명 아주 느릿느릿한 대화임에도 주고 받아지는 강렬한 감정들이 있어서 당시에 내가 느꼈던, 혹은 미처 느끼지 못했던 침묵과 대화의 순간들이 시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제야 내가 했던 질문들의 무게와 부족함이 밀려들어와 짓눌렸다.
사실 대부분의 대화는 그렇게 구성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음이 조금이라도 첨가된 대화들. 다만 당시에는 미처 언어와 감정을 모두 파악하지 못해서 흘러가버리는 대화가 너무도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글을 쓰나. 글은 아주 오래 오래 남을 수 있으니. 모호순을 매주 쓰며 한 주간 축적된 대화들을 떠올린다. 오늘은 어떤 대화를 떠올릴까. 인터뷰가 자꾸만 머리를 멤돈다.
미디어, 그리고 영화는 때때로 무심하고 잔인하다. 지금까지 소수자에게 더욱 그래왔다. 디스클로저는 트랜스젠더가 영화에서 다루어져 왔던 방법들을 되돌아본다.
이 영화가 인상깊었던 건 단지 트랜스젠더가 나왔던 영화들을 짜깁기하고 영화의 폭력을 고발하는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사이사이에 트랜지션 전후의 삶을 살고 있는 영화 관계자들(제작자, 감독, 배우 등)의 인터뷰가 삽입된다. 트랜지션 전, 혹은 트랜지션 후 영화를 보며 겪었던 두려움과 황당함의 일화를 이야기하며 영화가 저지른 폭력과 그로 인해 본인이 느낀 '자리없음'과 편견에 대해 나눈다. 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나도 두려웠다. 나도 미디어를 보며 선택지가 겨우 이것밖에 없나 싶었다. 그 공포는 영화관과 TV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나는 카메라 앞에 섰다. 승리했다. 승리할 수 있다.
이들이 승리하려 노력해야만 하는 세상이 비탄스럽다. 영화는 영화만일 수 없다. 아무리 피가 터지고 누군가를 조롱하더라도 영화 제작자에게는 분명 윤리 의식과 책임이 필요하다. 한 영화는, 한 시퀀스는, 한 씬은, 한 대사는 누군가에게 모든 것이 될 수도 있다.
금주의 음악 앨범
무더운 여름의 레게
by 모호
트랙리스트
1. Legalize It
2. Burial 3. Whatcha Gonna Do 4. No Sympathy
5. Why Must I Cry
6. Igziabeher (Ket Jah Be Praised)
7. Ketchy Shuby
8. Till Your Well Runs Dry
9. Brand New Second Hand
앨범 Legalize It
아티스트 Peter Tosh
발매 1976
길이 39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꾸준히 레게를 좋아해왔다. 매번 듣는 앨범들을 반복하는 것이 전부지만 레게에 대한 애정은 오래도록 식지 않고 이따금씩 생각이 나 듣곤 한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오랜만에 Peter Tosh의 Legalize It을 골라 틀고 1번 트랙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레게에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레게는 다만 신나지만은 않는다. 특유의 그루브가 몸을 움직이게 하지만 어딘가 슬프다. 슬픈 구석이 없는데 나만 슬프다. 그래서 어떨 때는 기분이 울적해지면 레게를 찾기도 했다. 색채 짙은, 녹색과 가까운 슬픔이 있어서 꼭 맞는 슬픔을 찾을 때 틀으면 그보다 아픈 음악이 없다.
아마 레게는 수행적인 음악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음악이 곧 삶의 태도와 같아서 투명하고 영혼이 느껴진다. 영혼의 느껴진다라. 에테르 음악과도 공통점이 있는 셈이다. 사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음악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나에게 중요한 건 '수행'이다. 쉽게 말하면 '진심'. 수행처럼 일하고 수행처럼 작업하는 삶을 항상 꿈꿔왔다. 가닿기 위한 하나의 단계임을 실감하며 행하기. 나는 이를 실천하고 있는 아티스트를 보면 너무도 샘이 난다. 질투로만 끝이 나면 안될텐데, 나도 수행처럼 걸어야 할텐데. 레게 리듬에 고개를 맡기고 생각했다. 이러니 슬퍼지지 않을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