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충무로 작업실 근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건, 예상치 못한 곳에 예상치 못한 물건이 버려지거나, 혹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바닥의 와사비라든지, 자재용 동그란 고리라든지, 독특하게 생긴 의자라든지. 이번에 본 건 칼이었다. 의미심장해 보일 정도로 수상쩍은.
담배를 피우면서 한참이나 칼 주변을 맴돌았다. 탐정이 된 것처럼, 범죄 현장을 보존하려는 경찰처럼, 칼을 주시하며 빙글빙글 돌았다. 칼, 칼, 칼, 칼. 얼마 전 새로 산 내 칼은 너무도 날카롭고 위협적이어서 요리할 때마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데, 이 칼은 어쩐지 엉성하고 무뎌 보여서 일종의 배려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여기에 칼이 있으니 조심하시라. 단, 이 칼을 뽑지는 마시라.
그러다 담배 한 개비가 끝났다.
얼마 뒤, 같은 곳에 다시 갔을 때 칼은 사라지고 없었다. 칼이 있던 흔적만 남은 자리에서 다시 담배를 피웠다. 칼, 칼, 칼, 칼. 쓰이기 위해 다시 자리를 찾았으려나. 아무래도 칼의 역할은 베어내고 썰어내는 것이니. 꽂혀 있는 것이 아니라, 배려하고 경고하려는 것이 아니라. 왠지 섭섭했다. 빈자리를 바라보며 한참 담배를 피우다가, 나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칼, 칼, 칼, 칼 흥얼거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