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가 마무리됐다. 정신없던 학기였지만 여러모로 얻어가는 것이 많았다. 가장 큰 수확은 나를 더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나를 잘 안다고 과신했던 것 같다. 내가 욕망하는 바를 잘 알아서 때론 억누르고 때론 그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나의 욕망은 그리 납작하지 않다. 가끔은 위선적이라서 나조차도 속이기도 한다. 그 탓에 작업 프로세스를 바꿨다. 먼저 나의 욕망을 파악해야만 한다. 난 이 작업을 통해 무엇을 욕망하지. 무엇을 욕망해서 이 작업을 해야만 하지. 그것을 알게 되면 주제를 도출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나는 무엇을 욕망해 모호순을 쓰지. 모호순을 씀으로써 무엇을 욕망하지. '즐거워서'라는 언어 뒤의 감정을 세분화하기. 챗지피티와의 오늘 대화주제는 아마 이것이 될 것 같다.
이 영화는 오시마 나기사가 대구에 살고 있는 한 아이의 사진을 영상으로 엮은 것이다. 사진 속 아이의 이름이 정말 윤복이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감독은 전후 60년대를 살아가는 한 아이의 삶을 포토 몽타주와 나레이션을 통해 표현한다.
부분은 전체보다 클 수 있다. 매번 되뇌이는 문장이다. 이 영화도 그렇다. '윤복이'라는 개인의 미시사는 전후 한국의 거대서사를 대체할 정도로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오히려 더 세세하게. 전후의 한국을 설명하려면 반드시 미시사를 탐구해야만 한다는 생각까지 든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업을 하기에 더욱 그렇다. 책에서는 한줄, 관련 서적에서는 몇 페이지로 끝나는 삶들이 너무나 방대하게 묻혀 있다. 이젠 망각되고 변형된 삶들.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보고서 속 인터뷰를 읽으며 전쟁과 역사를 설명하기에 언어는 너무나 남루하다는 것을 깨닫곤 했다.
그래서 이미지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언어도 필요하지만 사진 한 장, 영상 한 편이 어쩌면 말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지도. 윤복이의 일기가 영상으로 만들어져야만 했던 이유도 그곳에 있다. 사진이 넘어가고, 그 사진과 사진 사이의 간극들에 언어가 붙으며 나는 비로소 윤복이를 온전히 역사이자 삶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언어가 일본어라는 점도.
오시마 나기사의 작품은 언제나 밀려나고 벗어난 존재들을 가르키고 있다. 비록 한글자막이 없지만, 시간이 허락하신다면 씨네스트를 통해 자막을 구해 보시길. 오시마 나기사의 초기 다큐멘터리를 즐겨주시길.
금주의 음악 앨범
밴드부
by 모호
트랙리스트
1. This Empty Room
2. High School Really Sucked 3. Now 4. Fall Down Lost
5.Wheat Jeans
6. I Am Your Friend
7. Alone
8. Old Star
9. Carry On
10. Say Goodbye
앨범 It's Fun to Pretend
아티스트 Speedbuggy
발매 1995
길이 43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밴드를 하고 싶어지게 하는 앨범이 있다. 아마 터무니없는 사랑이 느껴지는 앨범들. Speedbuggy 의 앨범 It's Fun to Pretend는 그런 앨범이다. 하나의 사랑 존재, 음악을 통해 연결되어있음이 느껴지는 앨범.
나의 학창시절 영원한 꿈은 밴드부에 가입하는 것이었다. 청소년기, 매일 혼자 이어폰을 끼고 밴드 음악을 들으며 대학생이 되면 반드시 밴드부에 가입해 이어폰이 아닌 스피커로 음악을 같이 들으리라 다짐하곤 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증명해보이겠다는 마음으로.
대학에 가자마자 밴드부를 알아봤다. 나는 드럼을 칠 줄 알았다. 14살 즈음 배워뒀던 빈약한 실력으로 밴드부의 문을 두드렸다. 그 유명한 '옥슨'이 있던 학교였지만, 차마 그곳은 넘보지 못하고 단과대학 내의 밴드의 오디션을 봤다.
자우림의 음악에 맞춰 드럼을 쳤었다. 자우림을 골랐던 건 순전히 그나마 여유롭게 칠 수 있었던 곡들이기 때문이다 (자우림... 좋아한다). 결국 밴드부에 들어가게 되어 첫 연습실에서 첫 연습을 하던 때가 선하다. 하지만 슬프게도 동료들은 음악을 사랑하진 않았다. 어찌저찌 얼렁뚱땅 밴드부에 들어오게 된 경우가 대다수였고, 기타를 처음 잡아보는 친구도 있었다. 다행히 친구가 하나는 있었다. 베이스를 치던 뿔테 안경을 쓴 친구. 그 친구는 The Strokes도 알았고 Radiohead도 들었다. 그와 음악 이야기를 나누고 드럼을 부서질 듯 두들기며 2년을 보냈다. 공연도 하게 되고 공연 후의 달콤한 뒤풀이도 겪었다.
지금도 가끔 밴드가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연습실에 모여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마음을 모았던 때가 그리워진다. 내 실력이 응한다면 기타였으면 한다. 신발만 보고 연주할 자신(?)이 있다. 무엇보다 내 손에서 박자가 아닌 멜로디가 흐르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 얼렁뚱땅 밴드가 하고 싶으시다면 연락주시길. 나의 끔찍한 기타 실력을 양해해주실 수 있다면 연락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