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관계를 맺은 사람과 그룹에 따라 다른모습을드러낸다. 의도한 적 없다. 때로는이런것이혼란스럽기도했다. 고등학생친구와있을때의나, 대학친구와있을때의나, 직장동료와있을때의나, 사회에서만난지인들과있을때의내가다 다르다. 각그룹의한명이대표로 ‘나’에대해묘사하면나는 피카소의 초상화가 될 것이다. 통일된얼굴을그릴수가없다.
결국전부나일 것이다. 깃털 같은 면,진지한면, 차가운면, 따뜻한면, 찌질한면, 수다스러운면, 열정적인 면, 비관적인 면, 면면면. 모두나일 것이다. 극단적으로말하면나는누군가에겐쓰레기이며누군가에겐그럭저럭괜찮은사람이다. 그중에어느면이진짜너냐라고한다면나도모르겠다. ‘아무와도함께하지않고 혼자 있을 때의내가,내게는가장익숙한나다. 그러니당신이만난건모두내가아니다.’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이런모순에때아닌사춘기가삶을침범하기도했다. 이제는어느정도받아들인다. 인간은논리를 필요로 할 뿐, 본질적으로 논리적인 존재는 아니니까.
그런데 어쩌다 한 면이, 그것도 평소엔 숨어 있던 어떤 면이, 강하게독립 행보해서삶을뒤흔든다. 그면은특히나이성과는거리가멀어서난감하다.
동물을 바라보는 사람, 사람을 바라보는 동물. 사람과 동물의 행동 유사성을 카메라는 우리 안과 밖을 넘나들며 촬영한다. 그리고 동물과 인간의 동작은 연속된 시간속에서 서로 반응하는 것처럼 편집된다. 그럴수록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마치 동일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 시작한다. 과연 그럴까. 인간은 무수히 많은 곳 중 동물원을 갔고, 동물은 쇠창살 안의 공간이 전부다. one of them과 only one을 대등한 one의 위치에 두려한다면 그건 정말 ‘인간적’인 시선이다. 반복이 반복될 수록 차이는 두드러지게 마련이다. 동물이 할 수 없는 행위를 인간은 한다.
금주의 음악 앨범
한여름의 사이코빌리
by 모호
트랙리스트
1. Human Fly
2. Way I Walk 3. Domino 4. Surfin' Bird
5. Lonesome Town
6. Garbageman
7. Fever
8. Drug Train
9. Love Me
10. I Can't Hardly Stand It
11. Goo Goo Muck
12. She Said
13. The Crusher
14. Save It
15. New Kind of Kick
16. Uranium Rock
17. Good Taste (Live)
앨범 Off the Bone
아티스트 The Cramps
발매 1989
길이 52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저번 호에 여름의 전자음악을 소개했으니 균형이 맞도록 록 음악을 골랐다. 나는 날씨보다 감정에 좌우되는 리스너라고 스스로를 규정해왔으나 모호순을 쓰며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날이 더워져야만 관성처럼 꺼내드는 앨범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한여름밤, 더운 동네를 휘적휘적 거닐며 들었던 The Cramps의 앨범, Off the Bone이다.
Off the Bone을 즐겨들었던 건 남성역 근방 남성시장 안에 살 때였다. 7호선 남성역은 이수역과 가까웠다. 한창 학교를 다니며 취업 준비 중이던 나는 늦은 저녁 영화가 보고 싶어지면 이수 아트나인까지 걸었다. 모든 날들이 여름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모든 날들이 여름밤이었던 것만 같다. 더위를 어깨에 얹고 20여 분을 걸어 이수 아트나인에 도착하면 건물 앞부터 새어 나오는 찬 공기에 풍경이 단단해졌다.
이수 아트나인에는 주기적으로 감독 회고전 상영을 했다. 오즈 야스지로가 한 달 내내 나오다가, 히치콕이 한 달 내내 나오다가 하는 식이었다. 히치콕의 '새'였던가 짐 자무쉬의 '패터슨'이었던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영화를 보며 시원한 상영관 의자에 몸을 묻고 있다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밖으로 나왔다. 적당히 식은 여름 날씨에 슬리퍼를 끌며 다시 남성 시장으로. 반짝거리는 술집들이 가득한 이수를 지나 영업을 마친 시장의 구역으로 접어들 때 흐르던 5번 트랙 Lonesome Town을 기억한다. 고요한 시장 바닥을 걸으며 집에 도착할 때까지의 한여름밤의 사이코빌리를.
금주의 사진
죽순 팜니다
by 모호
상상하지도 못한 장소에 상상하지도 못한 맞춤법으로 상상하지도 못한 물건을 판다. 죽순, 죽순이라니. 죽순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가 참 많지만 '죽순'과 광성 슈퍼, 광성 슈퍼는 어떤 연유로 죽순을 수중에 넣어 팔게 되었을까 상상하다보면 '광성'이라는 이름은 아들의 이름일까, 혹은 본인의 이름일까. 그리고 그는 '팝니다'를 '팜니다'라고 귀엽게 쓰는 사람. 말하는 발음대로 글을 쓰는 사람. 가끔 길을 지날 때 귀여운 맞춤법 실수를 마주치면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람의 흔적을 보며 사람을 상상하다보면 사람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곤 한다. 흔적은 사람보다 클지도 모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살짝 겹쳐진 교집합의 관계일지도 모른다. 죽순. 안녕하세요, 죽순을 사고 싶은데요, 말을 걸어보고 싶다. 애정어린 눈으로, 귀여워 보이진 않아도 귀여운 사람에게. 내가 귀여워 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에게. '죽순 팜니다'에게 '죽순 삼니다'라고 답하고 싶어진다. 사람을 싫어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