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호_25.04.25
살면서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음악, 사진 하나씩만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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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한창 졸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톡톡 쳤다. 눈을 떠 보니 중년의 남성이 바닥의 지갑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갑을 떨어뜨리셨다고. 나는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도 못하고, 감사 인사를 제대로건네지도 못하고 지갑을 주웠다. 남자는 살짝 웃으며 내렸다.
자세히 떠올려보면 공공장소에서 누군가의 호의를 경험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지하철에서 앞으로 멘 가방. 문을 잡아주는 손. 몇 번이나 잃어버릴 뻔한 내 휴대전화. 나조차도 비판하고, 또 불평하는데에 익숙해져있다. 해가 따뜻했던 버스 안에서 나를 두드렸던 손을 떠올린다. 세상이 그리 단순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당분간은 곱씹으며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주의 모호순도 그러하길. 모호순이 아니더라도 작은 호의가 일상 속에 멤돌길.
by 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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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주의 다큐멘터리
차재민, <네임리스 신드롬> by 모호
2. 금주의 음악 앨범
Yeule <Softscars>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책상> by 모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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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네임리스 신드롬
감독 차재민
연도 2022
길이 24분
관람 떠오르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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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명이 없는 질병을 앓는 여성들이 있다. 다섯 챕터로 나누어진 영화에서 여성들은 진찰받고, 이미지에 포개어진다. 이미지로 병치된 인물들은 이미지로 이어지고 이미지로 표상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은 표상 아래의 무엇을 채 알지 못한다는 것. 영화는 끈질기게, 다수의 인용구와 이미지로 덮어낸다. 하지만 덮을수록, 여성들의 '몸'이 여과될수록 나는 본질에 가까워진다. 내가 놓치고 있는 바를 계속 의심하고 질문하며.
이 영화를 세 번 봤다. 혼자보고, 수업시간에 보고, 면담 때도 봤다. 마지막으로 본 건 수업 시간. 에세이 필름에 대해 공부하다 하나의 레퍼런스로 네임리스 신드롬이 틀어졌다. 처음 혼자 영화를 봤을 땐 텍스트에 압도됐다. 일정한 톤으로 낭독하는 목소리가 쏟아내는 텍스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마지막이 되어서야 보이지 않던 이미지와 사운드들이 들이쳤다. 의도를 파악하려는 얕은 노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생각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역시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미지의 수직적 깊이. 수평적으로 늘어 놓아지는 이미지 아래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들이 있다. 그것을 파악하기에, 또 담아내기에 역부족일 때가 많다. 촬영을 하다보면 이와 같은 생각을 자주 한다. 작은 화면을 보며, 프레임 안에 사람과 물체를 두고 가만히 바라보며 한구석의 타임코드가 열심히 앞으로 달려가는 REC를 느끼고 있자면 나는 뭘 알고 있나, 저 '몸' 안에는 무엇이 담겨있나, 무엇이 이미지로 담기나 아득해지곤 한다. 아마 나는 전부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또 그렇게 쉽게 전부 알아내어서도 되지 않는다. 몸의 표상 아래, 무언가를 채 알지 못한다는 것. 어쩌면 카메라를 들고, 또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자들의 숙명과도 같은 과제가 아닐지.
마지막으로 가벼운 걱정을 늘어놓아야 할 것 같다. 하나, 나는 비평가나 학자가 아니며, 둘, 그럴 능력이 없으며, 셋, 그래서 (특히) 한국 작가의 작품을 다룰 때 이상한 부담이 느껴진다. 좋든 싫든 지나가다가 마주친 적이 있는 분들의 (인사를 한다거나 대화를 나누는 정도의 사적인 관계가 있는 경우는 제로다) 작품으로 메거진의 글을 채운다는게 머쓱하고 괜한 말을 하는 기분. 하지만 나는 끈질기게 한국 다큐멘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 주변에서 어떤 고민과 작업들이 이루어지는지, 평범한 나는 그를 어떻게 감각하는지. 나누고 알리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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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리스트
1. X W X 2. Sulky Baby 3. Softscars 4. 4ui12
5. Ghosts
6. Dazies
7. Fish in the Pool
8. Software Update
9. Inferno
10. Bloodybunny
11. Cyber Meat
12. Aphex Twin Fla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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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Softscars
아티스트 Yeule
발매 2023
길이 40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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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ule은 기꺼이 말하는 아티스트다. 나를 말하고 상처를 말한다. 일종의 '순수'가 음악에 투명하게 드러나서 반짝인다. 그의 전작들이, 또 이 앨범이 그렇다. 언제나 그렇듯 순수한 앨범들은 함부로 지나칠 수 없다. 천천히 오래 곱씹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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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ule은 디지털에 표류하는 미지의 생명체처럼 느껴지곤 한다. 나는 그의 삶을 모르니, 전적으로 음악만 들었을 때 그렇다. 아마 디지털 세대 (어쩐지 이제는 서술하기 어색한 표현이지만)로 태어나 디지털 세계가 익숙한 동료이기 때문일지도. 애니메이션 '시리얼 익스페리먼트 레인'의 주인공이 떠오르기도 한다.
표류하는 그는 매 앨범마다 작은 성취를 이뤄내며 한 단계씩 나아간다. 그중에서도 이 앨범을 고른 건 그의 음악 세계, 디지털 세계에 대한 확신이 들었던 앨범이었기 때문이다. Yeule은 이 앨범에서 자신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가감없이 드러낸다. 사운드와 함께하는 그 작법은 때론 분노에 차있고, 때론 고백적이다.
이 앨범을 들을 때마다 인터넷 친구들이 떠오른다. 우연히 만나 꽤나 오랜 기간 끊어질 듯한 인연을 이어오던 이들. 나는 그들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애정을 가지고 있다. 서로에게 꽤나 솔직했으며 가감없이 공유하고 안부를 물었던 것 같다.
친구들 중 하나는 정기적으로 침묵파티를 열었다. 말 그대로 침묵하는 파티였다. 발화하고 싶다면 오픈 채팅으로. 그 파티에 몇 번 참여했었다. 조용히 갔다가 조용히 나왔다. 그 누구와도 반갑게 인사 나누지 않고. 비즈로 팔찌를 만들어왔다. 투명한 녹색 팔찌였다. 얼마 전, 마지막 파티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곳에 가야할까, 마지막 인사를 나누어야 할까 한참 고민했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대신 구글폼에 응답했다. 같이 듣고 싶은 음악을 묻는 질문에, 에테르가 넘치는 음악이 그리워요, 라는 답변을. 디지털에 표류하던 우리가 나눴던 그때가 그리워요,의 동의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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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zies ]
You like rotting in your bed When was the last time you were fed? Enough love, enough love, but instead You pretend like you are dead Miserably count how many Shadows you see right above me Violently biting off flesh Of your own, of your own body Cry like a baby Screaming and shaky These rotten daisies Look just like Just, just like you
Sweetness, gentle Kinder, mental Black hole, black sky Angel cries, and cries, and cries Flowers around Your body, found Sick mind, sick heart Loveless, apart (just like you)
Sweetness, gentle Kinder, mental (just like you) Black hole, black sky Angel cries, and cries, and cries Sweetness, gentle Kinder, mental Black hole, black sky Sweetness, gentle Kinder, mental Black hole, black sky Angel cries, and cries, and cries
Angel cries, and cries, and cries, mm Oh Sweetness, gentle Kinder, mental Black hole, black sky Angel cries, and cries, and Sweetness, gentle Kinder, mental Black hole, black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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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높은 창문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 가능하면 나무의 높은 초록 잎이 눈앞에 보이면 좋겠다. 그래야 사람이 안 보인다. 레지던시에 도착했을 때 창문에 반했다. 책상은 창문에 달라붙어 있었다. 아무렴 그래야지. 비록 나무는 없었지만 바다가 보였다. 둥글게 만을 둘러싼 눈은 바다의 손톱 같았다. 눈이 많이 오면 손톱은 자라났다.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딴생각을 실컷 했다. 책상에 앉아 고개를 들면 그런 여백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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