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했다. 4개월 만이다. 거리가 읽힌다. 간판, 플래카드, 전단지 여기저기 불쑥불쑥 수많은 문자들이 저마다 정보를 발설한다. 원하지 않아도 무의식에서 내 뇌는 쉼 없이 문자 정보 값을 처리하고 있다. 그것이 모국어다. 모국어는 의식과 의도로 벗어날 수 없다.
해외여행의 자유감은 우선 모국어로부터 해방에서 온다. 타국의 문자는 이미지 기표로 인식되고 곧바로 직관적 의미를 전달할 수 없다. 문자가 내포한 심리적 이미지가 머리에 바로 맺히지 않는다. 뜻이 결핍된 반쪽짜리 기호다. 말 그대로 글자, 글씨다. 이것은 “사랑해”와 달리 “I love you, 아이시테루, 워 아이 니, 주똄므”를 읽거나 들었을 때, 마음에 맺히는 정서적 흔들림이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모국어가 주는 그만큼의 모든 자유는 그것을 벗어나고자 할 때 그만큼의 속박이 된다. 그래서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모국어가 가만두질 않는 것이다. 내 한국어는 한글을 글자 이미지로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이 각국의 도시인들이 자연으로 떠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시골 거리엔 문자가 없다. 그 빈자리는 상상과 사유로 제멋대로 채우면 된다. 봄이다. 그곳에 문자 대신 들꽃과 잎이 가득할 것이다.
by 모순
1. 금주의 다큐멘터리
로라 포이트러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by 모순
2. 금주의 음악 앨범
David Bowie <Let's Dance>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소원> by 모호
금주의 다큐멘터리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by 모순
제목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감독 로라 포이트러스
연도 2022
길이 122분
관람 왓챠
낸 골딘은 수술 후 처방받은 약에 중독되고 결국 마약에 빠진다. 이후 그녀는 <P.A.I.N (Prescription Addiction Intervention Now, 처방 중족 증각 개입)>이라는 단체를 설립하고, 중독 위험성을 알고도 약을 판매한 새클러 가문을 고발하는 캠페인을 시작한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새클러 가문의 후원금을 더 이상 받지 않고, 나아가 새클러 가의 이름을 그곳에서 내리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영화는 그 과정을 담는다. 낸 골딘이 직접 제작에 참여했고 출연도 한다. 아마 다큐멘터리는 캠페인 초기부터 상영을 목적으로 기획된 듯 하다.
나는 소파에 누워있다가 제목만(어디서 들어 본 듯한) 보고 클릭해서 봤다. 그 유려한 제목 때문인지 흥미로운 쇼트와 어느 정도 실험적인 무언가를 기대했다. 아니었다. 영화는 낸 골딘 개인사와 <P.A.I.N> 캠페인, 두 서사를 시간순으로 보여준다. 그래야만 했다. ‘무엇이 옳은가’를 다룬다는 의미에서 ‘정치적’ 주장을 펼치는 다큐는 모호하거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 주장에 힘이 빠지고 영화가 길을 잃는다.
흥미롭게 본 내용은 낸 골딘의 개인사에 등장하는 부모님과의 관계다. 영화 후반부에 낸 골딘은 말한다. “엄마 아빠는 부모가 될 준비가 안 됐었죠. 아이를 낳은 건 생겼기 때문이에요. 다른 인간을 키우려 했다기보다요.” 부모는 자신이 어른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옳다고 생각한다. 한 아이로서 극복해야 하는 것은 부모가 물려준 그들의 세계관이다. 시간이 만들어 준 어른이 많다. 시간이 흘러서 그냥 어른이 된 사람들. 아까도 모호와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학창 시절 선생님들을 떠올리며 갑자기 흥분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2022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영화 자체의 성취보다 영화 밖 사회에서 이룬 성취에 더 큰 가치를 둔 것 같다. 다큐멘터리 상위 범주에 픽션/논픽션이 있다는 생각을 또다시 한다.
금주의 음악 앨범
자유와 음악
by 모호
트랙리스트
1. Mordern Love 2. China Girl 3. Let's Dance 4. Without You
5. Ricochet
6. Criminal World
7. Cat People (Putting Out Fire)
8. Shake it
앨범 Let's Dance
아티스트 David Bowie
발매 1983
길이 40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얼마 전, 서울로 돌아온 모순과 술자리를 가졌다. 항상 그랬듯 여러 대화 주제를 거치다 집에 갈 즈음 자유에 대한 논의가 벌어졌다. 다음 생에는 새로 태어나고 싶다던 모순의 소망으로부터였다. 새는 자유롭다고 했다. 저공비행을 하며 날고 싶다고. 나는 자유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자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우리의 논의는 결국 언어의 무력함과 개념 정의의 모호성으로 이어져 끝이 났다. 자유를 말하는 순간 자유는 없다고. 자유를 말하는 건 어쩌면 볼드모트의 이름을 부르는 일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자유는 느끼는 것.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자유에 대해 생각했다.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말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마주친 적이 있다. 자동차의 선루프를 열고 자유를 외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들은 무엇을 느끼고 언어로 발화했을까.
나도 자유를 말한 적이 있다. 레오 까락스의 영화를 볼 때, 그를 좋아한다고 소개할 때 자주 자유를 말했다. 까락스의 영화에는 힘껏 달리는 장면이 등장하곤 한다. 특히 ‘나쁜 피’에서 드니 라방이 밤거리를 전력으로 질주하는 시퀀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달리는 드니 라방과 달리는 카메라. 그 삽입 음악으로 David Bowie의 ‘Modern Love’가 흘러나온다. 바로 오늘 소개하는 앨범의 첫 번째 트랙이다.
그 시퀀스에서 이미지와 결합된 음악의 ‘느낌’은 해방적이고 슬펐으며 격렬했다. 그렇다. 단지 그 ‘느낌’을 표현하기에 형언조차 붙이지 못한다. 그래서 자주 어떤 사물이나 현상으로 은유한다. 마치 와인의 맛을 표현하는 소믈리에처럼. 언어의 무력감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처럼. 보위는 자유를 말했던가. 언어로 도피하지 않았던가. David Bowie는 어쩌면 자유를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의 생과 음악의 ‘느낌’은 까락스의 시퀀스 '느낌'과 같기에. 나는 이제 자유를 위해 자유를 말하지 않기로 했다.
[ Modern Love ]
I know when to go out and when to stay in Get things done I catch a paper boy But things don't really change I'm standing in the wind But I never wave bye-bye But I try I try
There's no sign of life. It's just the power to charm I'm lying in the rain But I never wave bye-bye
But I try I try
Never gonna fall for (modern love) Walks beside me (modern love) Walks on by (modern love) Gets me to the church on time (church on time)
Terrifies me (church on time) Makes me party (church on time) Puts my trust in God and man (God and man)
No confessions (God and man) No religion (God and man) Don't believe in modern love
It's not really work It's just the power to charm I'm still standing in the wind But I never wave bye-bye But I try I try
금주의 사진
소원
by 모호
촬영을 위해 정읍을 다녀왔다. 할머니에게 질문을 해야만 했다. 할머니의 과거와 두려움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의 채 딱지가 생기지 않은, 겨우 헝겊으로 덮어놓은 상처를 들추는 것은 아닐지. 할머니도 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인터뷰에 임하지는 않을지. 다큐멘터리가 되어도 되는지. 장비가 잔뜩 든 가방만큼 마음이 무거웠다. KTX가 아닌 새마을호를 탔다. 정읍에 도착하기 전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그날은 제사가 있는 날이었다. 지난 달력 한 장으로 덮어놓은 소쿠리에 방금 부친 전이 가득했다. 빵을 먹고 출발했다는 나를 가볍게 나무라며 잔뜩 식사를 챙겨주셨다. 나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식사를 준비하는 할머니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안부를 묻고 준비된 식사를 잔뜩 먹었다. 배가 터질 것처럼 불렀지만 할머니는 고봉밥 한 그릇을 더 떠서 내 옆에 놓아주었다. 나는 그 마음이 소중해 억지로 밥을 한 큰 술 더 떠서 밥그릇에 덜었다.
첫날은 아무 질문도 하지 못했다. 오렌지를 까먹으며 할머니의 이웃집 이야기를, 곧 예정된 가족 여행 이야기를 들었다. 혼자 자주 찾아가면 찾아갈수록 할머니는 나에게 더 편하게 많은 이야기를 하신다. 저녁이 되고 제사상이 차려졌다. 외갓집 손자인 나는 음식만 나르고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 있었다. 절 한 번이 끝나고 거실로 다시 나왔다. 할머니는 눈을 꼭 감고, 손을 단단히 모으고, 잔뜩 웅크리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우리 딸, 아들, 손자 다 건강하고, 하는 일 잘 풀리고... 속삭이는 할머니의 소원을 들었다.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할머니의 소원에 할머니는 없었다. 빌어도 괜찮을진 모르지만, 대신 내가 소원을 빌었다. 내 생애 첫 소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