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 때는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이 진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곤 했다. 교양 만화책에서 강아지가 보는 세상과 파리가 보는 세상 사진을 보고 난 이후부터였다. 붉은색은 붉은색이 아니고 파란색은 파란색이 아니고. 연필은 연필의 모습이 아닐수도 있고 물컵은 물컵의 모습이 아닐수도 있고. 그런 의심이 들면 아주 무서워져서 주변의 것들, 앉아 있던 의자의 팔걸이나 필통 같은 것들을 한 번 꼭 쥐고 다시 놓곤 했다. 생명과학을 전공하며 수업 시간에 눈에 상이 맺히고 색이 나게 보이는 이유를 전부 배웠지만, 나는 마치 음모론자처럼 아직도 어렸을 때 하던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자고 일어났을 때 세상이 강아지가 보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당황하지 말자고. 당연한 일이 아닐수도 있다고.
극장에는 스피커도 있고 객석도 있고 영사기도 있지만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 스크린 쪽을 바라보고 있다. 데릭 저먼은 그런 영화를 만드는 영화 감독이었다. 하지만 데릭 저먼은 에이즈 합병증으로 끝내 시력을 거의 잃었다. '블루'는 어렴풋한 파란색 계열의 색 말곤 보이지 않던 데릭 저먼의 마지막 영화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파란색 화면만 나온다. '자연적'인 색이 아닌 이 블루의 쨍한 채도에 화면이 꽉 차고 어둠도 이내 파랗게 된다. 그리고 음악과 목소리들이 나온다. 데릭 저먼과 절친했던 배우들의 보이스 오버는 파랑으로 가득 찬 화면 아래에서 데릭 저먼의 회고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눈을 감은 것만 같은 파랑 속에서 영화의 이야기들을 조립하고 있으면 데릭 저먼의 삶과 그가 보이지 않는 세상 속에서 다시 구축하는 '나'에 대해 상상하게 되기도 하지만, 실은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마음이 놓여서였다. 파랑 속에서도 기어코 존재와 진실을 보는 데릭 저먼의 용기와 사랑 때문에 더 이상 무언가를 꼭 쥐어 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