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얼마나 자주 보는지는 모르겠지만 모호순을 계속 써왔다. 새로운 피드백이 올라오면 열기 전에 2~3초쯤 멈춘다. 설렘을 잠시 느껴보기 위해서다. 별일도 아닌데 굳이 그렇게 한다. 새로운 피드백 같은 것이 자주 오는 것도 아니므로, 눈치 보며 꺼내 먹은 초콜릿 한 알처럼 나몰래 달콤하다.
누가 얼마나 봐줄지도 모르면서 모호와 나, 우리의 소개영상을 꽤 공들여 만들었다. 마음에 드는 장면이 나오면 이건 정말이지 멋진 이미지라며 영화에 쓰고 싶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그렇다고 우리의 반응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목소리가 몇 데시벨쯤 높아지는 정도다.
이렇게 만든 소개영상이 과연 우리를 얼마나 잘 소개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호외 한 장 내걸지 않고 웹사이트에 스윽 올려두었으니 아무도 보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본다. 우리가 본다. 어쩌면 며칠 뒤에, 몇 년 뒤 어느 날 생각나서 본다. 그때가 되면 나는 지금의 나와 꽤 다른 사람이니까, 꽤 깨끗한 감상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여 그 녀석이 재미있게 봤다면 그걸로 됐다.
P.S. 모호순 구독자분들에게는 공개해 본다. 호외요 호외!
by 모순
1. 금주의 다큐멘터리
<사상> by 모순
2. 금주의 음악 앨범
<Take The Air> by 모호
3. 금주의 사진
<낮잠> by 모호
금주의 다큐멘터리
사상
by 모순
제목 사상
감독 박배일
공개 2020
길이 2시간 12분
관람 왓챠, 티빙, 웨이브
합의되지 않은 보증금을 받고 집을 버려야 한다. 부산 사상구의 재개발 철거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아버지는 병원에 있다. 평생을 노동으로 스스로를 소진하고 침식해왔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집을 떠날 때까지 기록한다.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말없이 부엌 의자에 앉아 있는 아버지. 반찬 몇 통 소반에 두고 바닥에 앉아 김에 밥을 싸먹는 아버지. 무릎으로 걸으며 마른걸레로 식탁 구석을 닦는 아버지.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조용하다. 투쟁보다는 체념의 과정이다. 위태로운 삶들은 피를 토하며 저항하기엔 쌓아온 습관이 소박해서 조금씩 밀려날 뿐이다. 나름의 분투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대상에게 남루할 뿐이다.
아파트가 준공되고 입주자들을 보고 온 한 중년 남성은 말한다.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다. 원주민 입주율이 높다는 말에, 인사라도 할 겸 가본 그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터덜하다. 사건은 종료되었다. 그러니 너털하게 웃는 수밖에 없다. 그는 새로 마련한 빌라 앞 화단에서 풀들을 매만진다.
금주의 음악 앨범
Take The Air
by 모호
트랙리스트
1. You're Never Gonna Know (Intro)
2. 그때와 같은 공간, 같은 노래가
3. Last Scene
4. 무너져
5. 사라지지 말아요
6. 어떻게도 (Jan '05 demo)
앨범 Take The Air
아티스트 디어 클라우드
발매 2010
길이 23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음악은 몰래 들을 때 더 짜릿하다.
지난 주에 이어 또 2010년의 앨범이다. 디어 클라우드의 첫 ep, Take The Air다.
중고등학교 때는 대놓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물론이고, 아주 어렸을 때에 중이염에 걸려 귀가 약할 것이라는 잔소리 덕분에 집에서도 마음 편히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기가 어려웠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몰래 들었다. 학교에서는 자습 시간에 이어폰을 옷 안에 넣어 숨겼고, 집에선 자기 전에 이어폰을 꽂았다. 실은 몰래 들어 더 짜릿했다. 듣고 싶은 앨범을 잔뜩 다운 받아 휴대전화나 전자사전에 넣고 하나씩 반복재생하는 일이 몇 없는 삶의 낙이었다.
요새는 몰래 듣기는 커녕 따로 시간을 내어 들어야 할 판이다. 작업할 때 틀어놓는 음악과 이동할 때 듣는 음악이 전부. 심지어는 이동할 때 신문 읽기를 하느라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있을 때도 많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는지. 초등학생 때 몰래 먹던 아폴로를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됐지만 이젠 굳이 먹지 않는 것과 같을까. 이렇게 되고 싶지 않아 부단히 노력했는데.
그런 면에서 모호순에 음악 섹션이 있어 다행이다. 가끔은 모호순을 쓰기 위해 예전에 듣던 앨범들을 뒤적거리고 오랜만에 만난 앨범에 흠뻑 빠져 한주를 보낼 때도 있다. 몰래 듣고 싶다. 통제 속에서 자유를 찾고 싶다. 어리석은 생각을 자유로이 하며 디어 클라우드의 풋풋한 '사라지지 말아요'를 들었다.
금주의 사진
낮잠
by 모호
광주에서 카페를 하던 이모는 몇 년 전에 언니, 그러니까 엄마가 있는 대전으로 이사 와 대청호 변에 새로 카페를 열었다. 덕분에 대전에 갈때마다 방앗간처럼 이모의 카페에 들르곤 한다. 드립커피를 얻어 마시고 이모와 근황을 나누다가 이모가 챙겨주는 원두를 받아오는 식이다. 어쩐지 느슨한 안식처 같은 곳이다.
이모가 카페를 연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로스팅 일을 하루 도운 적이 있다. 이모와 단둘이 오래 시간을 보내며 대화를 나눈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내가 여행에 다녀오며 선물한 커피잔 이야기, 회사를 그만두고 학교에 간 이야기, 이모의 커피 이야기가 흘렀다. 이모는 멋진 삶을 살고 있었구나. 그리고 멋진 사람이었구나. 마음껏 해보라는 이모의 말이 그렇게 고마웠었다. 그때에 어수선하던 카페 앞 마당에는 고양이 둘이 있었다. 단짝처럼 붙어다니는 둘은 마당에 드러누워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내 손길을 피하지도 않았다.
친구의 청첩장을 받기 위해 대전에 내려간 지난 주, 어김없이 카페에 들렀다. 한참 가족들과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 고양이가 보고 싶어졌다. 고양이는 어디있어 이모? 이모는 기다렸다는 듯 우리를 카페 한쪽의 큰 창가로 데려갔다. 고양이 둘은 어느덧 이 카페의 가족이 되어서 애착 지정석을 마련한 모양이었다. 여전히 단짝 같은 둘은 늘어져 낮잠을 잤다. 창문을 살짝 열자 가볍게 갸르릉거렸다. 둘의 이름은 말랑과 카우. 퍼즐 같은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