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이고 있나. 몇 개월간 운동을 멈춘 탓도 있겠지만, 근육이 무너지고 살이 처지는 느낌이다. 어디로? 아래로. 땅으로. 중력을 실감한다. 마침내 중력은 승리할 것이다. 그러면 내 몸은 땅으로 흡수되겠지. 육체 입장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건 중력과 싸우며 버티다가 결국 승복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근력 키우기는 대체로 중력에 반하는 동작을 반복한다. 몸뚱이의 부피와 질량 대비 얼마나 더 큰 중력을 버텨낼 수 있는가. 그것을 길러내는 게 육체 단련이다. 결국 몸의 밀도와 탄성을 길러서 중력의 지속적 거동 방해를 거스르는 힘을 키우는 행위가 근력 운동이다. 이런 잡생각을 하며 늦은 오전 집앞 단골 카페에서 다리 꼬고 앉아 초코 쿠키에 커피를 곁들여 홀짝대고 있다. 휴식이란 얼마나 달콤한가.
캐나다 퀘벡의 작은 마을 ‘셔브룩’에 다시 축제가 찾아온다. 연례 행사다. 화려한 퍼레이드가 시작되고, 사람들은 거리로 몰려나온다. 가장 큰 볼거리는 단연 눈신 달리기 대회. 마을 사람들은 설피를 신고 눈 위를 거침없이 달린다. 강아지들도 그 뒤를 따른다. 경기가 끝나면 모두가 실내로 모여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춤을 춘다. 그렇게 축제가, 영화가 마무리된다.
카메라와 녹음기는 이 모든 장면을 실시간으로, 야외와 실내를 가리지 않고 바로 눈앞에서 기록했다. 영상과 음성만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자막도, 내레이션도 없다. 전쟁 중에도 영화 장비 개발은 멈추지 않았고, 그 결과 경량화된 장비들이 마침내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현실에 다가가는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이 가능성을 가장 먼저 알아본 이는 프랑스에서 온 장 루슈였다. 그는 감독 미쉘 브로의 촬영 기술에 감탄했고, 함께 작업할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 ‘시네마 베리테’의 시작을 알린 영화, <어떤 여름의 연대기>가 탄생했다. (이 작품은 모호순 13호에 소개된 바 있다.) 이후 미쉘 브로는 프랑스의 촬영감독 피에르 롬에게 영향을 주었고, 피에르 롬은 다시 크리스 마커와 함께 <아름다운 5월>을 만들게 된다.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시대는 유능한 기술자와 그를 알아본 통찰력 있는 연출자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그들이 함께 이끈 리얼리티에 대한 새로운 실험과 접근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위대한 작품은 결코 한 사람의 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작품은 세계다. 세계는 단 하나의 뛰어난 요소만으로는 구축되지 않는다. 연결, 연합, 협력의 중요성 어쩌면 필수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금주의 음악 앨범
펜타포트를 기다리며
by 모호
트랙리스트
1. You Without End 2. Honeycomb 3. Canary Yellow 4. Near
5. Glint
6. Night People
7. Worthless Animal
앨범 Ordinary Corrupt Human Love
아티스트 Deafheaven
발매 2018
길이 61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펜타포트 라인업이 공개되었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기대되고 보고싶던 밴드들이 꼭 하루 하나씩 끼어 있어서 올해는 며칠을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한편, 라인업에는 유독 반가운 이름, Deafheaven이 있었다. 2022년 펜타포트, 빗속에서의 Deafheaven 공연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다.
락 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한 중학생 때부터 나의 버킷리스트는 락 페스티벌에 가는 것이었다. 하루를 오로지 음악과 무대를 위해 보내는 일, 뜨거운 여름 속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장면은 언제 떠올려도 설렜다. 좋아하는 음악에 제멋대로 뛰어도 이상할 일이 없는 열린 공간. 나는 그런 공간을 간절히 원해왔다.
Deafheaven을 오래 좋아했다. 도전하는 밴드에게 나는 마음을 주지 않을 수 없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 그들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일찌감치 무대 앞에 자리를 잡았다. 난 혼자였다.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곧 Primal Scream 티셔츠를 입은 그들이 등장하고 음악이 달려나갔다. 처음에는 많지 않은 사람들이 음악을 들었다. 나는 신이 나 방방 뛰었다. 몇 곡쯤이 지나갔을까. 비가 내리다 말다 했다. 무대의 물대포를 간절히 바라던 모두는 비를 기다렸다. 어느덧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Honeycomb, Brought to The Water을 거쳐 마지막 곡 Dream House에 다다를 무렵 비가 쏟아졌다. 보컬 조지 클라프는 팔을 활짝 벌리고 'Enjoy the rain!'을 외치곤 노래를 시작했다. 빗물이 눈앞을 가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지만 아무 상관없었다. 누구와 있지 않아도, 어떤 표정을 지어도, 어떤 춤을 춰도 괜찮은 상태. 언젠가 모호순에서 자유를 말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 무대만은 예외로 두고 싶다. 나는 분명 그때 자유로웠다.
올해의 펜타포트를 애타게 기다리며, 여름의 자유를 기다리며 Deafheaven의 음악을 듣고 있다.
금주의 사진
하나
by 모호
겨울이 지나니 이제 꽃의 계절들이다. 길을 지나다가, 잠시 앉아서 담배를 피우다가, 꽃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사진을 남긴다. 특히 작업실 바로 앞에 있는 진양 꽃 상가에는 꽃들이 만발했다. 위의 사진은 학교 흡연구역 아스팔트 사이에서 핀 꽃. 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내가 왜 이러는지. 의자 사진과 더불어 꽃 사진이 갤러리에 쌓이고 있다. 이제는 꽃을 모아서 올려볼까.
오늘 보광동 답사에서도 장미를 만났다. 날이 더워 큰 길가를 흐느적 흐느적 걷다가 본 장미, 그리고 재개발로 사람이 모두 떠난 집 담장을 넘어온 장미. 장미를 찍어서 친구를 보여줬다. 뿌듯하게 보여주고 나니 왜 꽃을 찍는지 조금은 내 마음을 알 것도 같다. 같이 보고 싶어서, 오늘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것을 나누고 싶었다. 꽃이라는 건 너무나 명확하게 아름다우니. 아직 꽃의 계절이 많이 남았다. 갤러리를 채워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