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리콕. ‘리키’라는 애칭을 가진 리콕은 카나리아 제도에서 1921년에 태어났다.”
읽다가 멈췄다. 1921년. 나와 관계 없이 아득해 보이는 년도. 저 숫자에 할아버지가 태어났다. 미국에서 다이렉트 시네마를 주도했던 인물은 할아버지와 동갑이다. 나의 몸에는 할아버지의 흔적이 남아있다. 장기알을 주물던 두 손과 부딪히는 소리. “빨리 일어나 이 자식아!” 아침에 날 깨우는 소리. 욕심 없는 말과 따뜻한 태도. 눈에 선한 할어버지의 방, 소박한 짐들과 옥편. 조금만 차를 끌고 나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감각. 이 모든 실감이 아직 내 몸에 남아있다.
“사망”. 얼마 전 가족관계증명서에서 그 글자를 봤을 때 모든 실감은 분산됐다. 언어는 강력했다. 1921년 1월 20일 출생 그리고 사망. ‘아, 없구나, 죽었구나. 아무리 걸어도 차를 타도 비행기를 타도 만날 수 없구나.’ 와르르 감각이 조각난다. 1921년은 먼 숫자가 아니다. 리키는 먼 사람이 아니다. 할아버지랑 동갑. 이렇게 보면 역사적 인물과 사건의 신비화는 다 걷힌다. 이때부터 나는 겁이 없어진다. 동등해 진다. 대든다. 협의한다. 타협한다.
유리공이 유리를 불어댄다. 브라스 소리. 유리세공 막대를 손가락으로 밀어댄다. 피아노 소리. 볼과 손의 역동적 반복에 맞춰 음악이 연주된다. 바뀌는 음악. 기계의 등장. 미래적 사운드에 기계는 척척척. 그러다 기계의 오작동. 유리가 와장창. 다시 바뀌는 음악. 영화시작부터 끝까지 음악은 멈추지 않는다. 마치 음악이 화면을 연주하듯. 사운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전쟁 전과 전쟁 후 전위적(실험적) 영화는 사운드로 나뉜다.
욕조에서 봤다. 화장실은 공명이 좋아서 의외로 괜찮은 관람장소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가니 개구리 울음이 가득하다. 그래, 어쩌면 이 영화는 초여름 개구리 소리를 닮았다. 듣는 이는 경쾌하지만 개구리는 진지하고 어쩌면 절박하다는 점에서. 한스트라는 유리 제조업자에게 자기 사업체의 기록영화를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제조업자는 그의 스타일과 전혀 다른 내레이션 가득한 작업을 주문한다. 한스트라는 제안한다. 나도 나름대로 하나 더 만들테니 판권을 달라. 또한 완성된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이용하라. 제조업자는 와이낫. 그렇게 한스트라는 이 작품을 완성하고 오스카상을 수상한다.
기계는 오작동 한다. 그것을 모른 채 오류를 생산해낸다. 인간은 실수 한다. 그러나 실수를 자각한다. 오작동도 실수도 인간이 시정한다. 인간은 문제가 없을까. 인간은 서로 싸운다. 인간의 편은 인간, 인간의 적도 인간. 영화에 이런 내용이 담겨있지는 않다. 전후 산업화 시대에 제작된 이 영화에서 인간과 기계의 대조와 협업을 보며, 약 70년이 지난 현재의 나는 다른 행간을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스트라는 자신의 영화를 ‘시네포엠 Cine Poem’이라 불렀다. 시의 단어는 시인의 것이지만 시의 행간은 우리의 것.
금주의 음악 앨범
울음
by 모호
트랙리스트
1. So Sorry 2. I Feel It All 3. My Moon My Man 4. The Park
5. The Water
6. Sealion
7. Past in Present
8. The Limit to Your Love
9. 1234
10. Brandy Alexander
11. Intuition
12. Honey Honey
13. How My Heart Behaves
앨범 The Reminder
아티스트 Feist
발매 2007
길이 48min
스트리밍 모든 플랫폼
슬픔의 음악을 떠올려 본다. 슬픈 음악이 아니라 접어둔 슬픔을 꺼내어 주는 음악. Feist의 음악을 듣고 운 횟수를 따져보면 다섯 번은 될 것이다. 그의 음악은 내게 언제나 필요하고, 내가 숨기지 않아도 되게 도와준다.
나는 어릴 적 울보였다. 가슴 속에 뜨거운 것이 느껴져 목구멍 위로 넘어오려고 하면 망연히 울어버렸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학교에서 자주 울었다. 내가 울면 모두가 난감해했다. 운다는 것은 너무나 즉각적인 감정의 표현이니. 하지만 나로써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울음을 참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6학년 즈음이었다. 같은 반 친구와 작은 다툼이 벌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무실에 가서 담임 선생님을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눴다. 그때 담임 선생님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울면 안되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울면 모두가 힘들어진다고, 눈치보이는 일이라고. 그후로 다시는 학교에서 울지 않았다. 뜨거운 것이 올라오려고 하면 이를 악 물고 도로 삼켜냈다.
이제 나는 울음을 잘 참는 어른이 되었다. 울어도 괜찮을 때를 맞아도 울음을 꾹 참는다. 나만의 울음 참는 방식이 생겼다. 그렇게 꾹꾹 눌러두었던 경단 같던 마음이 한순간에 터져서 걷잡을 수 없이 범람할 때가 있다. 주로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볼 때다. Feist가 그렇다. So Sorry를 듣고 빈 집에서 꺽꺽 소리를 내며 울었었다. 아마 취업을 앞전에 두고 쌓아왔던 자기 혐오와 억울함 때문이었겠지. 내가 포기하고 도망쳐왔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겠지. 누군가와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그는 울어도 해결되지 않는 일에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고. 나는 반박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말했다. 울음은 모두의 것이라고, 해결보다는 해소에 가깝다고. 울음을 잘 참는 어른이 됐다. 동시에 울음을 믿는 어른이 됐다.
금주의 사진
국화
by 모호
작업실 입구 한켠에 화분을 놓아뒀다. 이 화분을 처음 만난 건 작년 가을이었다. 꽃이 잔뜩 피어있는 화분을 선물 받았다. 가을에 피는 꽃. 선물한 사람도 그 꽃의 이름을 몰랐다. 식물의 이름을 몰라도 선물할 수 있구나, 또 받을 수 있구나. 어색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꽃은 예뻤다.
꽃은 오래가지 못했다. 짧은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자 가득했던 꽃이 져버렸다. 얼마 보지도 못했는데. 꽃을 떼어내고 시든 잎을 정리했다. 그렇게 겨울이 왔다. 텅 빈 추위 속에서 식물은 매일 죽어갔다. 다섯 줄기가 모두 죽은 것처럼 시무룩해졌다. 나는 그들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가지를 치고 물을 줬지만 그들을 담고 있는 흙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하지만 나는 화분을 버릴 수가 없었다. 빈 것 같은 화분에 계속 물을 줬다.
봄이 왔다. 그 많던 줄기 중 단 한 줄기가 점점 초록색으로 변해갔다. 해를 보여줘야지. 이제 텅 빈 곳에 화분을 두지 말아야겠다. 멀리가지는 못했다. 작업실 문 앞, 해가 건물에 가려지지 않는 정확한 자리에 화분의 자리를 만들어줬다. 식물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났다. 줄기가 자라나고 잎이 피어났다. 나는 그의 이름을 알고 싶었다. 가을에 피는 꽃, 겨울을 보낼 수 있는 꽃. 사진을 찍어 검색했다. 국화의 잎과 그의 잎이 닮았다. 국화는 가을에 피는 꽃. 세 계절을 같이 보내고 나서야 나는 그의 이름을 알게 됐다.
곧 여름이다. 더 녹색이 빛나고 더 높이 자라날 것이다. 그리고 가을이 오겠지. 꽃을 피워내겠지. 당연한 것 같은 그의 생애가 기다려진다. 나와 함께 몇 번의 꽃을 피워냈으면 한다. 오래 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