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정기적 발행 시작은 큰 결심이다. 모르는 누군가에게 개인적 감각이나 인식을 보여주는 일은 요즘 시대에 큰 위험이 될 수도 있다. 하나의 생각엔 수십 가지의 반대가 있기 마련이고 맥락과 별개로 누군가는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보다도 사실은 빵꾸 나는 게 제일 두렵다. 발송 약속을 어기지 않는 것이 연재의 기본이다. 퀄리티는 그다음이다. 비난도 발송이 되고나서야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멈출 수 없었다.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서로의 안목도 높아진다. 무리지어 다니고 싶다.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목적은 결국 ‘같이 좋아합시다, 좋은 것 있으면 좀 나누고’.
모호순은 모호와 모순의 합성어다. 각각 모호라는 단어와 모순이라는 단어를 좋아해서 모호순이라 이름 붙였다. 발행인 두 명의 필명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를 주력 콘텐츠로 삼고 음악과 사진을 덧붙였다. 되도록 합법적으로 시청 가능한 다큐멘터리를 나누고자 하지만 한계에 부딪힐 것 같다. 미리 양해를 구한다. 맛집을 찾는 태도로 뒤지고 도움을 구하면 개인적으로 시청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한국에서는 '뉴스레터'라는 말이 자리 잡아서 나 또한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뉴스레터'라 말하지만, 스스로는 '메일매거진'이라 생각하고 있다. 우선 매거진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바랜 꿈이 있고, 무엇보다 매거진이란 단어에 딸린 심리적 이미지가 훨씬 와닿기 때문이다. '뉴스'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내게 얼른 와닿는 감각들이 내가 발송하려는 하는 내용과 잘 포개지지 않는다.
‘레터'는 다른 이유로 안 내킨다. 그나마 '뉴스'는 이제 한국어 어휘가 돼서 내가 현실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레터'는 아니다. 나는 일상에서 레터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편지라는 한국어 단어를 사용한다. 영어 '레터'의 정확한 뉘앙스를 모르겠으나 한국어 '편지'는 분명 사적이다. 편지는 오직 봉투를 뜯는 한 사람에게 쓴다. 남의 편지를 멋대로 뜯었다가는 큰일난다. 그러니 공개하기 위해 일기를 쓰는 것만큼이나 공개를 위해 편지를 쓴다는 게 영 어색하다. 형용모순이라 느껴진다. 물론 편지글 형식을 빌려 다른 맥락이나 콘셉을 덧붙이는 시도는 나도 그럴 정도로 충분히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글은 편지의 외투를 입은 다른 종류의 글임을 우리 모두 안다. 욕심이 하나 있다면 우리가 발송하는 글들이 구독자 이메일 함에서 현실의 몸을 얻을 때 ‘매거진’까지는 아니어도 '뉴스'나 '레터(편지)'라고 인식되지 않기를 바란다.
1. 금주의 다큐멘터리
아녜스 바르다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by 모순
2. 금주의 음악 앨범
나의머리카락뭉치 <빨간 플러그>by 모호
3. 금주의 사진
암스테르담에서by 모호
금주의 다큐멘터리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by 모순
제목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감독 아녜스 바르다
연도 2000
길이 82분
관람 왓챠
주제는 두텁고 분위기는 경쾌하다. 화자의 첫 등장도 산뜻하다. 감독 아녜스 바르다는 옛 유화를 재현한 듯한 모습으로 이삭을 어깨에 두르고 포즈를 잡은 채 자신을 소개한다. 이삭을 내려놓고 비디오 카메라를 든 그는 다른 손으로 세상을 만져 나간다.
멋진 영화는 시작부터 다르다. 사전과 미술관에서 '줍기'에 대한 역사성을 확보한다. 한 사회와 문화에서 그 행위가 언어로 개념화 돼있고, 미술관에도 걸려있다는 것, '줍기'는 그만큼이나 프랑스에서 뿌리 깊은 행위다. 사전과 미술관에서 나온 바르다는 이제 동시대로 향한다. 우선 흙에 속한 농부부터 만나고 도시 사람들까지 넓혀나간다. 그들은 '줍기'는 현재라 말하기도, 과거라 말하기도 한다.
이제는 직접 확인할 때다. 영화 내내 '아직도' 무언가 줍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줍는 사람들을 따라나서니 프랑스의 '비주류'가 보인다. 영화가 끝에 이르자 길거리에서 사과를 주워 먹는 한 남자는 이민자들에게 무료로 프랑스어를 가르친다. 등장하는 모두가 프랑스하면 얼른 떠오르는 것들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중간에 삽입되는 음악도 랩이다.
화자는 어떨까. 화자인 감독은 주류에서 멀어져 가는 사람이다. 스스로의 흰머리와 주름진 손을 촬영하며 죽음을 인식하는 그는 노인이며 누벨바그 '출신'이란 단어가 따라붙는다. 그에게 과거가 미래보다 넓고 깊다. 유명한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에서 시작해서, 무명 화가 에드몽의 '폭풍 전 도망치는 이삭줍는 사람들'로 영화가 끝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아, 영화 내에 오른쪽 위에 '하트 감자'가 뜨는데 아녜스 할머니가 어떤 기준으로 넣었는지 상상하며 보는 것도 재미다. 정답은 없다.
금주의 음악 앨범
상상해야만 하는 뮤지션에 대하여
by 모호
트랙리스트
1. 빨간플러그 0:00 2. 잊은 기억 4:43 3. 헛수고 9:06 4. 구름 14:36 5. 새벽 20:02 6. 가식 (GrooBy) 22:52 7. 차가운 새벽 24:41 8. Redplug 27:55 9. 부드러운인생 (cover) 32:54
앨범 빨간 플러그
아티스트 나의머리카락뭉치
발매 2007
길이 38:19
스트리밍 유튜브, 사운드클라우드
모호순의 첫 앨범을 고르며 세 장의 앨범을 떠올렸다. 셋의 공통점은 이제 사라져버린 음악가들의 음악이라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나의머리카락뭉치를 고른 건 그의 모습은 상상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나의머리카락뭉치는 인터넷에 음악을 올리다 돌연 자취를 감추었다. 그에 대한 단서는 2007년 한 이메일 인터뷰 뿐. 그는 20대를 기억하기 위해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30대를 약 11개월 남겨둔 상태의 나는 워드 창을 앞에 두고 그의 음악을 처음 들었던 스무 살 무렵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대학에 갔던 스무 살. 속하려고 애썼던 나는 빨간 플러그를 들으며 서울을 돌아다녔다. 항동 기찻길을 걷던 날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촌스런 단가라 티셔츠를 입고 걷던 나를 어떤 아주머니가 멈춰 세웠다. 왜 그리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냐고. 어디가 아픈 건 아니냐고. 나는 그날 처음 웃었고 순대국밥을 먹으러 갔다. 서울에서 처음으로 먹은 따뜻한 음식이었다.
나는 20대를 기억하려고 음악을 만드는 대신, 사는 책의 맨 앞 장에 나이를 적었다. 이제는 책을 사도 나이를 적지 않지만 가끔 열어보는 옛 소설에 나이가 적혀 있곤 한다. 얼마 전,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열어본 소설엔 스물 다섯이 적혀 있었다. 누군가를 끈질기게 찾으러 나서는 소설이었던 것 같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물으면 나는 아직도 그 소설의 이름을 말한다.
빨간 플러그의 앨범 아트는 영화 ‘릴리슈슈의 모든 것’의 한 장면이다. 스무 살 무렵 봤던 영화. 영화에 좀처럼 얼굴을 비치지 않는 릴리슈슈를 상상했었다. 나는 이제 어림잡아도 백 그릇은 넘는 순대국밥을 먹은 스물 아홉의 서울 사람이 되었지만 아직도 종종 빨간 플러그를 듣는다.
[빨간 플러그]
이젠 어두운 내 모습 보면서 힘들진 않아. 이젠 어두운 내 모습 보면서 힘들진 않아. 이젠 어두운 내 모습 보면서 힘들진 않아. 어두운 방구석에 앉아 작은 앰프 전원을 켜고 빨간 플러그를 꽂아 내 작은 손으로 치며 이젠 어두운 내 모습 보면서 힘들진 않아. 이젠 어두운 내 모습 보면서 힘들진 않아.
금주의 사진
암스테르담에서
by 모호
카메라 젠자브로니카 SQ-A
필름 ILFORD HP 400
열세 시간을 날아 스키폴 공항에 도착했다. 뒤척이며 몇 시간쯤 잤지만 한숨도 잔 것 같지 않았다. 잠들기 전 본 영화들이 꿈에서 섞였다. 장률의 두만강이 대개 그 배경이었다. 암스테르담의 저녁 풍경은 흐릿했다. 안경이 없어 그랬다. 자전거가 아주 빠르게 달렸고 집들은 위로 길쭉했다. 호텔 앞 공원에서 담배를 피웠다. 풍경의 프레임 레이트가 아주 낮았다. 꿈에서 본 영화와 너무도 달라 새 영화가 시작된 것만 같았다.
영화제의 피드백 세션에 참가했다. 모두가 심각한 표정으로 다큐멘터리에 대해 논했고, 각자가 그리는 영화에 대해 설명했다. 나는 어쩐지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부끄러워졌다. 그들의 조언은 대개 피칭장에서의 소구력에 대한 것이었고, 사실 이 프로그램의 목적 자체도 그와 동일했으므로 불만을 표할 수는 없었다. 나조차도 글로벌 피칭을 위해 대본을 쓰고 트레일러를 만들었으니.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미국의 어느 방송국에서 왔다는 남자는 진지한 얼굴과 목소리로 레퍼런스 영화를 노트에 휘갈겨줬다. 덴마크에서 온 어느 여자는 피곤한 표정으로 상처 줄 생각 없다는 듯 기획안에서 나를 숨기라고 말했다. 일리 있었지만 한국에 돌아온지 한달이 된 지금도 그 노트의 페이지를 펴보지 않았다.
그렇지 않을 때는 영화를 봤다. 걸으면서는 필름을 찍었다. 어느 아침에는 공원을 산책하고 선생님이 만든 영화를 봤고, 영화가 끝난 뒤 극장 한 구석에서 감독이자 선생님의 영화 이야기를 들었다. 도시에는 계속 비가 내리다 말다 했다. 주말에는 작은 축제가 벌어졌고 사람들은 춤을 췄다. 시립 미술관과 국립 미술관에 들렀다. 시립 미술관에 전시된 영상 작업물들이 참 좋았다. 반나절을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페리를 타고 강을 건너 세 장으로 나뉜 세 시간이 넘는 영화를 봤다. 영화에선 몇 번의 하얀 폭발음이 있었고 나는 눈이 부셔 손등으로 눈을 가렸다. 밤의 트램에선 잘 모르겠는 언어들이 들렸다. 트램에서 만난 술에 취한 더치 부자는 내가 궁금했는지 더치 억양이 섞인 영어로 질문을 던졌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아들과 서울 얘기도 암스테르담 얘기도 아닌 도쿄 이야기를 한참 나눴다. 어쩌면 이 순간이 암스테르담을 가장 오래 기억하게 될 순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모호순을 닫으면서 by 모호
조촐한 술자리에서 매거진을 발행해 보지 않겠냐는 ‘모순’ 씨의 말에 냉큼 그래보자고 ‘모호’가 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나는 그 제안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글이 영화보다 강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영화가 더 좋다). 어디서든 쓰고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 이미지가 열려 있다. 다큐멘터리를 중심으로 음악, 사진이라는 매체는 어떠한 실체가 명확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그들에게서 파생된 개인의 자유로운 이미지를 나누기에 글만 한 것이 없다.
비평을 쓰지 않겠다. 그럴 능력도 없다. 그저 감상을 가장해 자유로운 이미지를 나누고자 한다. 정독하지 않으셔도 괜찮다. 스쳐 지나가듯 읽고 하루 중 글 속의 이미지가 문득 떠올라 그 다큐멘터리와 음악, 사진이 궁금해진다면 성공이다.
필명 ‘모호’는 사실 꽤 오래된 이름이다. 시작한 지 어느덧 6년이 된 블로그의 이름으로 지은 것이니. 이름의 유래를 물으면 그냥 좋아서, 라고 답해왔다. 매거진을 시작하기로 했으니 그 이유에 대해 말하는 용기 정도는 내보도록 하겠다.
중학생 때의 일이었다. 지루한 영어 학원의 숙제로 영단어를 외우던 난 ambiguous라는 단어가 지독하게 외워지지 않았다. 방 안 책상에 그 단어를 적었다. 그리고 엎드려서 앰비규어스 앰비규어스 앰비규어스 모호한. 그럼에도 그 문제는 틀렸지만, 책상에 적힌 단어는 내가 스무 살이 되어 본가에 들러 책 정리를 할 때에도 적혀있었다. 이제 나는 그 단어를 알고 있었다. Ambiguous, 모호한. 청소년기와 성인기에 걸쳐 나에게 가장 오래 남는 가치이자 정체성의 표상만 같았다.